윤심덕이 부른 ‘한국 최초 캐럴’…음반 가격, 알면 놀랄 걸 [ESC]

신승근 2022. 12. 2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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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나의 짠내 수집일지]커버스토리 캐럴 앨범 짠내 수집일지
2022년 12월 빌보드 차트 역주행 1~4위 휩쓴 ‘올드 캐럴’ 열풍
캐럴 음반 수집 가치 낮은 편이지만 윤심덕 앨범은 수천만원 호가
트로트풍·창작곡 등 국내곡도 진화, 크리스마스 짠내 수집 캐럴 정보
제주 안덕면 바이나흐튼 크리스마스박물관에 전시된 호두까기 인형.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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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라이어 케리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는 연말이면 빌보드 차트를 거침없이 역주행한다. 1994년 발매한 크리스마스 캐럴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 덕분이다. 발매 이후 20여년 동안 겨울이 시작되는 11월이면 빌보드 핫 100 차트 상위권에 진입했는데, 올해는 정점을 찍었다. 지난 12월17일 발표한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 등극한 것이다. 머라이어 케리뿐이 아니다. 빌보드 핫 100 차트 4위까지 모두 캐럴이 휩쓸었다. 2위는 브렌다 리의 ‘록킹 어라운드 더 크리스마스 트리’(1964), 3위 보비 헬름스의 ‘징글벨 록’(1957), 4위 벌 아이브스의 ‘홀리 졸리 크리스마스’(1965)로 집계돼 이미 고전 반열에 오른 50~70년 전 발표한 캐럴이 빌보드 최상위권을 점령했다. 캐럴이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차지한 건 1958년과 2019년 두 차례뿐이었다고 하니, 2022년 크리스마스엔 확실히 캐럴 열풍이 불고 있는 것 같다.

2022, 크리스마스 캐럴의 빌보드 역주행

1990년대 최고의 리듬앤드블루스(아르앤비) 싱어송라이터였던 머라이어 케리도 이젠 한물간 옛날 가수다. 하지만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는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크리스마스 시즌 최애곡으로 자리 잡았다. 머라이어 케리는 해마다 이 노래 한 곡으로 6억원 이상 저작권료를 받아, 지금까지 6천만달러(약 770억원)가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고 하니 모두가 부러워할 명실상부 ‘캐럴 연금’이다. 짠내 수집가인 나도 그 열풍에서 열외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장식장을 뒤져보았다. 그 노래는 <머라이어 케리 그레이티스트 히츠> 시디의 15번 트랙이었다. 필립스 시디-디브이디(CD-DVD) 겸용 플레이어에 재생했다. 빠른 템포, 기계적인 음향, 반복되는 후렴구에 몸이 들썩이며 즐거운 성탄절을 맞을 것 같은 기운이 충만해졌다.

크리스마스 시즌 때마다 소환되는 국내 가수들도 있다. 아이유가 대표적이다. 아이유가 만 17살 때인 2010년 발매한 미니 3집 <리얼 아이유>(REAL IU)에 수록된 ‘미리 메리크리스마스’ 때문이다. 이 앨범엔 ‘이게 아닌데’, ‘좋은 날’ 등 아이유 성공 신화를 쓴 명곡들이 담겨 있다. 그런데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이 앨범 6번 트랙에 실린 ‘미리 메리크리스마스’가 역주행하면서 몇몇 음원 사이트에선 ‘좋은 날’을 넘어서기도 한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는/ 기다리는 그날만큼은/ 네 곁에 있을래 하루 종일/ 미리미리 약속해/ 사랑할 수밖에 없어서’라고 읊조리는 아이유의 노래를 들으면 크리스마스엔 뭔가 그럴듯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대가 솟아난다. 2012년 박효신과 성시경, 이석훈 등이 발매한 프로젝트 앨범 <젤리 크리스마스 2012 하트 프로젝트>에 담긴 ‘크리스마스니까’도 연말이면 빠지지 않고 소환되는 창작 캐럴의 대표곡이다.

“본래는 비단 종교에 한정되지 않고, 야외 축제 등에서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부르는 음악의 총칭이었다. (중략) 현대의 종교적 색을 띠는 크리스마스 캐럴은 1534년 영국에서 최초의 캐럴집이 발간된 이후, 여러 나라에서 크리스마스 전용 캐럴이 등장하면서 원래 캐럴의 의미가 축소·와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는 그저 크리스마스나 겨울 전용 비지엠(BGM, 영상이나 이미지 화면 배경으로 삽입되는 음악),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하는 노래 정도로 인식되는 듯하다.” 나무위키에서 설명하는 캐럴이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루돌프 사슴코’뿐 아니라 이젠 연말 즈음에 아티스트들이 성탄절이나 겨울, 눈 등을 소재로 제작해 발표하는 음원까지 총칭하는 것으로 캐럴의 개념이 확장됐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소환되는 국내외 캐럴 앨범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금지곡이 된 심형래의 ‘코믹캐롤’

캐럴은 짠내 수집에선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다. 캐럴이 담긴 엘피나 시디, 카세트테이프 등을 수집해도 연말에만 잠깐 들을 뿐이다. 음반사들이 별다른 홍보 없이 연말 매출을 올리기 위해 인기 가수, 개그맨, 아역 배우 등을 앞세워 캐럴 음반을 찍어내는 게 비일비재해 대부분 음악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탓에 수집 가치도 별로 없다. 1980년대 발매한 <똑순이 캐롤>, <뽀식이 씨리즈 3탄―이용식 캐롤 특집>, <쓰리랑 부부―메리 크리스마스> 등이 대표적인데, 이런 엘피는 지금도 1만원 안팎의 저렴한 값으로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수집 가치를 떠나 이런 부류의 캐럴 음반 가운데 대중음악사에 나름 족적을 남긴 것도 있다. ‘영구 캐롤’이 대표적이다. 코미디언 심형래씨가 1984년 예음사에서 낸 <심형래 코믹캐롤>은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릴까 말까, 달릴까 말까. 상쾌도 하다. 종이 울려서, 울릴까 말까, 울릴까 말까”(징글벨) “산타 할아지는 우리 마을을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다녀가시는지 나는 잘 모르겠는데요?”(산타할아버지 우리 마을에 오시네) 등 기존 캐럴을 조금 우스꽝스럽게 개사했는데,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공식 집계된 음반 판매량만 50만장에 이른다. 하지만 당시 방송 등에선 들을 수 없는 금지곡이었다. 심형래씨는 2015년 <시비에스>(CBS) ‘김현정의 뉴스쇼’와 한 인터뷰에서 “매니저가 캐럴을 만들자고 해 녹음실에 갔더니 크리스마스 캐럴을 그대로 부르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하면 안 하겠다. ‘달릴까 말까’ 이렇게 하겠다고 했더니, 난리가 났다”며 자신이 편곡하는 사람들과 볼펜을 집어던지며 싸움을 해 녹음했지만, 결국 “예수님을 모독했다고 금지곡이 되고 그랬다”고 밝힌 바 있다.

1970년 지구레코드공사에서 낸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홍현걸 작품집>도 가격을 떠나 주목할 만한 엘피다. 홍현걸이 편곡한 이 음반 재킷엔 다섯살짜리 박혜령을 배치했다. 지구레코드공사는 박혜령이 번안곡 ‘검은 고양이 네로’로 국민 스타가 되자 그해 11월 그를 앞세우고, 펄시터즈·트윈폴리오·조영남·장미리 등 당대 유명 가수들의 대표곡을 묶은 편집 음반 <검은 고양이 네로, 홍현걸 작품집>을 냈다. 그에 이어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해 캐럴 음반까지 발매한 것이다. 모두 12곡의 캐럴이 담긴 <메리 크리스마스 홍현걸 작품집> 앞면과 뒷면 1, 2번 트랙엔 박혜령이 부르는 캐럴 4곡(‘징글벨’, ‘북 치는 소년’, ‘고요한 밤’, 빨간 코의 꽃사슴’)을 배치했다. 나머지 캐럴 8곡은 펄시스터즈·조영남·트윈폴리오·최경희 등이 불렀다. 당대 정상급 가수들이 어린아이 박혜령의 들러리를 선 셈인데, 이 두 장의 엘피는 가요계의 전설이 된 그 시절 톱 가수의 노래와 캐럴을 들을 기회를 준다. 펄시스터즈가 부른 ‘산타할아버지 오시네’는 가사도 재미있다. 요즘 캐럴은 대부분 ‘울면 안 돼 ,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로 부른다. 하지만 펄시스터즈는 ‘울지를 말고 기다려요 창밖을 내다보세요’라며 산타 할아버지가 ‘착한 아이에게는 좋은 선물 주고/ 짜증 내는 아이에겐 나쁜 선물 주셔요’라고 노래한다. 박혜령이 부른 ‘빨간 코의 꽃사슴’ 노랫말 역시 ‘너의 코가 광이 나서 밤길 가기 좋으니/ 오늘 밤엔 내 썰매가 쉬지 않고 달린다/ 산타 할아버지가 칭찬 한번 했더니/ 빨간 코가 달리네 신이 나서 달리네’로 우리에게 익숙한 노랫말과는 완전히 다르다. 짠내 수집 과정에서 두 장의 <홍현걸 작품집> 엘피를 동묘 노점상에서 구했다. 재킷은 한 장인데 음반 두 장이 모두 들어 있었으니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 캐럴에 트로트풍 더한 50년대

캐럴 음반이 다 헐값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처음 녹음한 가수는 번안곡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으로 알려져 있다. 윤심덕은 1926년 10월 일동축음기주식회사에서 <파우스트 노엘/ 푸른 갈릴리> <싼타크로스/ 싼타루치아> 등 두 장의 앨범을 냈는데, 이것이 최초의 국내 캐럴 음반으로 평가받는다. 윤심덕의 음반은 수천만원을 호가하는데 수집가는 물론 음반 발굴 연구자도 탐내는 초특급 희귀 아이템이다.

한국에서는 미군정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미군 방송을 통해 어빙 벌린이 작곡한 ‘화이트 크리스마스’ 등 창작 캐럴 명곡이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한복남·하기송·전오승 등이 창작 캐럴을 만들었다고 한다. 1950년대 정상급 가수인 송민도가 창작 캐롤 ‘추억의 크리스마스’를 녹음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런 국내 창작 캐럴은 외국 캐럴 리듬을 그대로 가져와 트로트풍 노래를 덧입힌 것이라 음악성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이런 음반 역시 현재 남아 있는 게 많지 않다 보니 수집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가격도 세 짠내 수집가인 내겐 언감생심이다.

그나마 손에 넣을 수 있는 양질의 캐럴 음반은 트윈폴리오(송창식, 윤형주), 양희은 등 통기타 가수와 패티김, 펄시스터즈 등 당시 인기 있는 가수들이 앞다퉈 캐럴 음반을 녹음한 1970년대 엘피다. 나는 <고요한 밤에―찬송가와 캐롤/ 양희은 노래 모음>(서라벌레코드사·1977), <패티김 크리스마스, 편곡 길옥윤> (힛트레코드사·1978) 등 1970년대 대표적인 캐럴 엘피를 서울 황학동 한 전파상에서 구했다. 한 장당 7천원을 주었다. 하지만 귀는 그 이상의 호강을 한다. 양희은 캐럴 엘피의 진정한 가치는 뒷면(SIDE2) ‘고요한밤 거룩한 밤’, ‘실버벨’ 등 익숙한 캐럴 번안곡보다 앞면(SIDE1)의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주여 이제는 그곳에’ 등에 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는 당시 유신정권에 고통받던 이들에게 큰 위안을 준 찬송가였고, 1973년 시인 김지하의 연극 <금관의 예수>를 위해 김민기가 창작한 ‘주여 이제는 그곳에’는 유신 치하 민중의 고달픈 현실을 꼬집는 저항의 노래였다. 재킷 뒷면엔 양희은의 젊은 날의 초상 같은, 클로즈업한 웃는 얼굴이 실려 있는데, 이 또한 눈길이 간다.

길옥윤이 편곡한 패티김 캐럴은 ‘징글벨’, ‘북 치는 소년’ 등 익숙한 캐럴을 패티김 특유의 음색으로 불러내 차분하고 장엄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드는 데 맞춤하다.

아이유의 ‘미리 메리크리스마스’도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은 ‘올드 캐럴’의 대열에 올랐다.

80년대 말부터 완성도 높은 창작곡 등장

코미디언이 캐럴 음반을 내는 게 유행하던 1980년대엔 이선희의 <겨울날의 이야기>(서울음반·1988)가 나름 들을 만하다. 청아한 음색의 가수 이선희가 ‘징글벨, 루돌프 사슴코’, ‘산타할아버지 우리 마을에 오시네, 북 치는 소년’ ‘실버벨,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등 2곡의 캐럴을 한 곡으로 묶은 캐럴을 부른 게 특기할 만하다.

이선희 캐럴 이후엔 익숙한 크리스마스 캐럴을 담은 음반은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대신 크리스마스와 겨울, 눈 등의 열쇳말로 아련한 추억, 풋풋한 사랑의 기억을 담아낸 창작 캐럴 명곡들이 주목받았다. 이승환의 <b·c 603="">(서라벌레코오드사·1989)에 담긴 ‘크리스마스에는’, 조관우의 2집 앨범 <메모리>(Memory)(도레미레코드사·1995)에 실린 ‘겨울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꽃밭에서’ ‘님은 먼 곳에’ 등 리메이크곡이 주로 담긴 조관우 2집 앨범에는 신곡이 2곡 실렸는데, 그중 하나가 ‘겨울 이야기’다. ‘내겐 잊혀지지 않는 겨울 얘기가 있어/ 그 얘기 속엔 두 여인이 나오고’로 시작해 ‘모두 들떠 있던 축제의 그날/ 그녀가 날 이끈 그곳엔/ 아주 작고 어린 소녀가 날 보며/ 메리 크리스마스 웃고 있었네’로 고조되는 이 노래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추천곡으로 빠지지 않는 창작 캐럴 명곡의 반열에 올랐다. 음반이 처음 발매됐을 때 명동 음반 가게에서 시디(CD)를 사서 듣고 들었는데, 이젠 내용물은 사라지고 빈 재킷만 덩그렇게 남아 있다.

2000년도에 나온 창작 캐럴 가운데는 여성 트리오 바버렛츠의 <바버렛츠 캐롤―훈훈 크리스마스>(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 코리아·2014)를 손에 꼽을 만하다. 1950~60년대 분위기를 살리려 일부러 촌스럽게 복고풍으로 노래를 부른 게 이 음반에 담긴 4곡의 캐럴이 갖는 묘한 매력이다. 이미 알려진 ‘징글벨’과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편곡도 뛰어나지만 멤버인 안신애가 직접 작사·작곡·편곡한 ‘훈훈 크리스마스’와 ‘겨울나기 윈터 원더랜드(Winter Wonderland)’는 그야말로 크리스마스를 훈훈하게,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힘을 준다. 물론 우리 집을 찾는 이들 가운데 몇몇은 내가 서울 회현동 지하상가 엘피 전문점에서 찾아낸 10인치 옛 엘피 <메리 크리스마스 송>, <오스트리안 크리스마스 캐럴>이 더 그윽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말하기도 한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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