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 디아스포라 작가에겐 두렵지만 매력적"

진달래 2022. 12. 23.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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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권 주목받는 영문학 작가 허주은 인터뷰
장편소설 '사라진 소녀들의 숲' 한국어판 출간
조선시대 공녀제 얽힌 범죄, 두 자매의 추리극
출간작 3편 공통점 '조선·소녀 주인공·미스터리'
소설 '사라진 소녀들의 숲'의 허주은 작가가 2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한국 독자를 만날 수 있다는 건 벅차오르게 감사한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작가가 영어로 쓴 원작과 번역가 유혜인이 옮긴 한국어판을 동시에 들고 서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많은 디아스포라문학(이산문학) 작가들은 한국 역사에 대해 쓰는 걸 두려워하죠. 한국에서 비평받을 일을 생각하면요. 그럼에도 계속 쓰고 싶어요. 한국 역사는 비극적이지만 놀랍도록 매력적이니까요."

한국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북미권에서 인기다. '파친코' '작은 땅의 야수들'이 대표적이다. 최근 한국어판이 출간된 허주은(33) 작가의 '사라진 소녀들의 숲'은 그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한국어판은 유혜인 번역가가 옮겼다. 조선 초기 제주의 한 마을에서 벌어진 공녀(貢女) 제도에 얽힌 비극을 다룬 이 소설은, 올해 캐나다 최대 규모 독서 프로그램인 '독서의 숲'과 미국 대표 미스터리 문학상 '에드거 앨런 포 어워드' 등에 각각 최종 후보로 오르며 주목받았다. 작가가 자신의 책을 "한국 역사에 바치는 러브레터"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이 녹아든 작품이 국경의 벽을 허문 것이다.

두 살 때 캐나다로 이민 간 허 작가는 자신만의 '악센트'(어조)가 있다고 믿는다. 21일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그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 작가보다 한국 역사를 모를 수 있지만, 한걸음 떨어져서 보는 디아스포라문학 작가로서 나만의 '악센트'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소년기 정체성 혼란을 겪고 치열한 고민 끝에 얻은 신념이다. 특히 선배 작가인 '파친코' 이민진의 성공은 그런 믿음을 확신으로 바꿔 줬다.

미스터리 추리물을 집필해 온 허주은 작가가 2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작가로 미국계 아일랜드 작가인 타나 프렌치를 꼽았다. 그는 "추리물을 결말부터 읽은 후 어떻게 실마리를 풀어가는지를 보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김영원 인턴기자

처음부터 한국 역사 소설을 썼던 것은 아니다. 주로 영국 문학을 읽고 자란 그는 영국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썼다. "출판사나 에이전트(중개자)에 100번도 넘게 퇴짜를 맞았어요. 낙담했을 때 만난 게 한국 역사였죠." 몰랐던 모국의 역사에 그는 빨려 들었다. 한편으로 한국 역사를 정확히 전달하고 싶다는 책임감도 느꼈다. 조선시대 서한 등을 모은 '에피스톨러리 코리아'와 같은 자료를 읽고 또 읽었다. 그 결과물이 첫 책 '뼈의 침묵'(2020), '사라진 소녀들의 숲'(2021), '붉은 궁'(2022) 등 조선을 배경으로 한 3편의 소설이다.

허주은 작품의 또 다른 공통점은 10대 소녀 주인공과 미스터리 추리 서사다. '사라진 소녀들의 숲'의 경우, 두 자매가 수사관이었던 아버지의 실종사건을 추리하면서 전개된다. 영국 역사 소설을 쓸 당시부터 작가가 줄곧 천착한 주제는 하나다. '역사가 어떻게 한 여성의 삶을 뒤흔들 수 있는가.' 그는 "여성이 어떻게 그 장벽을 넘어서서 범죄를 해결해내는가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가부장적 문화가 강했던 조선 시대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억압을 헤쳐 나가는 당찬 소녀들의 활극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고 봤다. 고려 학자 이곡이 원나라 황제에게 쓴 공녀 제도 폐지 청원 서한을 읽고 구상한 소설임에도 조선 초기를 배경으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선 초기까지도 명나라에 공녀를 보냈다.)

사라진 소녀들의 숲·허주은 지음·유혜인 옮김·미디어창비 발행·432쪽·1만7,000원

대장금, 동이, 킹덤 등 한국 사극 드라마도 작가에겐 귀한 선생님이었다. 그는 "조선 시대를 시각적으로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됐고, 플롯을 짤 때도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미권에선 "훌륭한 스토리텔링은 K드라마에서 볼 수 있다고들 말한다"고 전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신간엔 영상을 떠오르게 하는 힘이 담겼다. 실제 한국어판 출간 이후 국내에서 영상화 판권 구입 제의를 받아 논의가 진행 중이다. 작가는 영상화가 성사된다면 "소설 속에 나오는 부녀간 자매간 사랑이 아름답든 뒤틀렸든 여러 모습 그대로 표현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출발선에 선 젊은 작가의 방향은 어딜까. "서양권 독자에게는 한국 역사의 가교 역할을 하는 작가, 동시에 한국 독자에게는 한국 역사에 대한 신선한 관점을 보여주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차기작 '늑대 사이의 학(A crane among wolves·어 크레인 어몽 울브스)' 역시 전작을 닮은 역사 소설이다. 연산군 시대 헤어진 자매를 찾기 위해 군에 합류하는 소녀들의 이야기로 2024년 출간 계획이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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