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퇴조하는 크리스마스

김태훈 논설위원 2022. 12. 23.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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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한 세대 전, 가수 이연실이 부른 ‘조용한 여자’에서 젊은 여성은 외로움을 토로하며 ‘그 흔한 크리스마스 파티 한번 구경 못 했지요’라고 한다. 모두가 크리스마스를 즐기던 시절의 분위기를 반어적으로 표현했다. 당시 서울 명동은 크리스마스 축제 1번지였다. 기자의 현장 스케치엔 ‘발 디딜 틈 없다’는 문장이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크리스마스를 3일 앞둔 22일 오후 찾아간 명동은 한산했다. 명동 입구에서 명동예술극장까지 걷는 동안 눈에 들어온 크리스마스 장식도 ‘메리 크리스마스’라 적힌 플래카드 두 개와 트리 하나 정도였다.

▶파티와 인파만 사라진 게 아니다. 겨울이면 12월 내내 전국 거리에 울리던 캐럴도 좀처럼 듣기 어렵다. 엄격해진 저작권 영향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 관련 당국이 2019년부터 무료로 틀 수 있는 캐럴을 공급하는데도 캐럴 붐이 일지 않는다. 이미자·남진·나훈아·조용필 등 인기 가수가 캐럴을 부르고, 심형래·최양락 등 개그맨까지 가세했던 시절은 옛날이 됐다. 캐럴 퇴조가 우리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에서 소매상을 대상으로 겨울에 가장 듣기 싫은 노래가 뭐냐고 물었더니 왬의 ‘라스트 크리스마스’와 머라이어 케리의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를 꼽았다. 신곡은 안 나오고, 1980~90년대 곡만 트니 지겹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퇴조 현상은 사회의 구조적 변화라는 분석도 있다. 저출산으로 산타클로스 할 일이 크게 줄었고, 젊은이는 핼러윈을 선호한다. 서양에선 특정 종교를 타인에게 강요하지말라는 PC(정치적 올바름) 운동도 있다.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크리스마스나 석탄일이 아니라 제헌절, 국군의날, 어버이날이 휴일이 돼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명동 노점상들이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전체 휴업에 들어간다. 31일에도 단축 운영한다.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이태원 참사와 코로나도 고려했다고 한다. 올해 크리스마스가 일요일인 것을 두고도 설이나 추석처럼 대체 휴일 대상에 포함하자는 의견과 이제 특정 종교 축일은 휴일에서 빼자는 주장이 맞선다.

▶크리스마스 열기가 전만 못하다 해서 예수 탄생의 의미까지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말 구유에서 탄생한 예수는 가난하고 상처받은 이들과 함께하며 구원을 설파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비탄에 우는 이들에게도, 오랜 불황의 터널에 갇혀 시름에 겨운 이들에게도 크리스마스에 담긴 예수의 사랑이 온전히 전해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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