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온 천지에 카메라

김태훈 논설위원 2022. 12. 22.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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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상훈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나오는 감시 괴물 아르고스는 눈이 100개 달렸다. 잘 때는 눈 두 개씩 번갈아 감고 나머지 98개로 불침번을 선다. 여신 유노는 그런 아르고스를 시켜 남편 유피테르가 바람을 피우지 못하게 감시했다. 1980년대 팝송 ‘아이 인 더 스카이(Eye In the Sky)’ 제목은 손님의 부정행위를 적발하려고 천장에 매단 도박장 카메라에서 따 왔다. 그 능력을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하늘의 눈이야/ 널 보고 있지/ 네 마음을 읽을 수 있어/ 나는 규칙을 만들고/ 바보들을 갖고 놀아.’

▶넷플릭스 영화 ‘마이 네임 이즈 벤데타’ 주인공은 살인을 저지른 뒤 숨어 살지만 딸이 아빠 얼굴을 휴대전화로 찍어 SNS에 올리는 바람에 은신처가 들통난다. 평생 숨어 살려고 세밀하게 짠 계획을 스마트폰 카메라가 망쳤다. 스마트폰만이 아니다. 거리의 CCTV부터 노트북과 테블릿, 자동차 블랙박스, 스마트 TV 등에 달린 카메라 렌즈가 사람의 말과 행동을 다 기록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재택근무와 화상회의 등이 보편화되며 카메라는 일상 깊이 들어왔다. 그 때문에 전에 없던 갈등도 벌어진다. 미국 대학에선 온라인으로 시험 볼 때 PC 카메라와 연계해 부정행위를 감시하는 프록터(proctor)라는 프로그램이 사생활 침해 논란을 빚고 있다. 한 대학은 부정행위를 방지한다며 방 내부를 PC 카메라로 보여달라고 요구했다가 학생에게 소송을 당했다.

▶요즘 새로 짓는 아파트엔 출입문 개폐와 난방, 환기 등을 전자식으로 관리하는 월 패드가 설치돼 있다. 카메라도 장착해 방문자를 확인하거나 이웃과 영상 통화할 때 쓴다. 월 패드를 해킹해 집 안을 엿보고 영상을 녹화한 사람이 검거됐다. 무려 40만 가구를 들여다봤다. 내 집에서 속옷 차림으로 TV를 보거나 목욕하려고 옷을 벗을 때도 누가 나를 보는 건 아닌지 불안한 세상이 됐다. 그렇게 유출된 사생활이 다크웹을 통해 까발려진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르고스의 눈 100개 감시망을 깬 이는 유피테르의 아들 메르쿠리우스다. 피리 연주로 아르고스를 잠들게 한 뒤 목숨을 빼앗았다. 그러나 오늘날 아르고스의 눈을 파괴할 메르쿠리우스 피리는 없다. 보안 전문가들은 웹 캠 프로그램을 자주 업데이트하고,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설정하거나 렌즈에 테이프를 붙이면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옛 선비들은 방에 혼자 있을 때도 남이 나를 보듯 몸가짐을 삼갔다. 신독(愼獨)이라 한다. 카메라 때문에 망신당할까 봐 신독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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