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의 ‘꽃’, 그녀의 ‘우주’[인터뷰]

이다원 기자 2022. 12. 21. 13:5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는 20일부터 서울 용산구 뉴스프링 프로젝트에서 첫번째 순수 사진전 ‘姬(희): 나는 우주다’를 여는 사진작가 조선희. 사진제공|본인제공



스타 사진작가 조선희가 꽃으로 우주를 그린다. 메말라가는 꽃에게 새로운 숨을 불어넣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프레임 안에 담아내 32점의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서울 용산구 뉴스프링 프로젝트에서 내년 1월5일까지 개최되는 조선희 작가 첫 순수사진전 ‘희(姬): 나는 우주다’에서 꽃과 인생, 그리고 그의 우주를 만나볼 수 있다.

“신기해요. 꽃인데 사람들은 이 작품들 안에서 인간을 보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발레리나를, 혹은 삐에로를, 또 어떤 이는 소녀를 찾아내죠. 아마도 제가 30년간 사람들의 포트레이트(초상 사진)를 찍어와서 그런지, 무의식적으로 저 역시 꽃을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었나봐요. 그런 의미에서 작가로서 절 되돌아보는 작업이기도 했어요. 그간 커머셜 사진을 찍어오면서는 늘 아쉬움이 있었는데, 순수 사진에 대한 갈증으로 이번 작업을 마쳤을 땐 사진초년생처럼 뿌듯하기도 했고 설레기도 했죠. 처음으로 ‘조선희 잘했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하하.”

조선희 작가는 최근 ‘스포츠경향’과 인터뷰에서 인물이 아닌 꽃으로 눈을 돌린 이유와 사진전을 준해온 과정, 그리고 ‘조선희’란 우주를 채우고 있는 인생 얘기들을 솔직하게 들려줬다.

오는 20일부터 서울 용산구 뉴스프링 프로젝트에서 첫번째 순수 사진전 ‘姬(희): 나는 우주다’를 여는 사진작가 조선희. 사진제공|본인제공



■꽃이 지는 게 싫어 꽃에게 새로운 순간을 부여하다

이번 사진전의 주인공인 ‘꽃’은 남다른 자태를 지니고 있다. 그는 가장 화려하게 만개한 시기를 지난, 시들어가는 오브제들에 집중했다. 땅 위에서 꼿꼿하게 늙어가는 꽃들에게 장례 의식 중 하나인 ‘염(殮)’에 준한 과정을 거쳐 지금의 형태로 완성했다.

“평소 꽃을 선물로 받는 걸 안 좋아했어요. 꽃이 내게 오면 활짝 피었다가 다시 죽고, 결국엔 그걸 버려야 하잖아요. 그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싫더라고요. 그래서 꽃이 오면 물에 담그지 않고 꼿꼿하게 세워놨죠. 그렇게 20년 전부터 해오다보니 꽃들에 수분이 날아가고 본질만 남게 되더라고요. 그 형태감이 중력의 영향과 수분의 증발로 인간이 늙는 것과 비슷하게 보이거든요. 그런 꽃잎의 질감에 관심이 가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죠. 그러던 중 예전 제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염했던 사진을 우연히 발견하게 됐는데, 곱게 화장을 한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어요. 그렇다면 ‘나의 꽃들도 메이크업해서 아름답게 부활시켜야겠다’란 생각을 하게 됐고요.”

오는 20일부터 서울 용산구 뉴스프링 프로젝트에서 진행되는 사진작가 조선희 첫번째 순수 사진전 ‘姬(희): 나는 우주다’ 한 작품. 사진제공|본인제공



꽃잎 한장이라도 떨어질까 심혈을 기울여 아이 돌보듯 작업했다고 지난날을 돌아봤다. 그 꽃에는 또 다른 의미도 투영돼 있었다. 14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향한 복잡한 감정이었다.

“겨울이었어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차가운 땅에 묻힌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다’고 규정된 순간이었죠. 그래서 그런지 이후로도 꽃이 시들면 아빠를 잃은 것처럼 내게 온전한 사랑을 표현한 매개체가 사라지는 것 같아 선물받기가 싫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었나봐요. 연약한 인간을 대하는 마음으로 소중하게 작업했고요.”

오는 20일부터 서울 용산구 뉴스프링 프로젝트에서 진행되는 사진작가 조선희 첫번째 순수 사진전 ‘姬(희): 나는 우주다’ 한 작품. 사진제공|본인제공



그러면서도 사진전 제목엔 ‘꽃’을 연상케 하는 단어가 없다. 이유를 물었다.

“절 오랫동안 알아왔던 아트디렉터 한 분이 이번 사진들을 보더니 ‘30년간 널 봐왔는데 너의 우주를 본 건 처음이야’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마음에 확 와닿았죠. 그리고 누군가 사진전에 제 이름 중 한 글자인 ‘희’를 써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는데, 그 이름이 아빠가 지어준 거였거든요. 착할 선(善), 계집 희(姬)를 쓰는데, 저를 대변하는 글자 같았어요. 사람들은 절 독설가로 보기도 하지만 제 안엔 여린 마음도 가득하거든요. 그래서 ‘여성성이 나의 우주다’란 뜻으로 사진전 제목을 지었어요.”

오는 20일부터 서울 용산구 뉴스프링 프로젝트에서 첫번째 순수 사진전 ‘姬(희): 나는 우주다’를 여는 사진작가 조선희. 사진제공|본인제공



■정직한, 조선희의 우주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다. 연세대학교 의생활학과를 졸업한 뒤 학부시절 다큐멘터리 사진 동아리에서 처음 사진을 시작했다. 그는 정통이 아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확신했다.

“1990년 3월26일 처음 사진을 찍은 날이에요. 당시엔 멋도 모르고 찍어서 그런가, 제가 찍고 싶은 피사체만 보이더라고요. 그 피사체가 프레임 안에서 어떤 크기로 자리잡는지를 모르는 채로요. 그 때 사수 선배가 ‘피사체에 과감하게 한발자국 더 다가가서 찍으라고’라며 소리쳤는데 그 말이 늘 뇌리에 남아있었어요. 그러다보니 나만의 색으로 클로즈업을 정말 과감하게 찍는 사람이 되었더라고요. 그렇게 오늘 한발자국, 내일 두발자국씩 피사체에 다가가다보니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사진을 전공하지 않아서 그런지 어떤 고정관념도 없었고, 그렇게 제 마음대로 찍다보니 그걸 새롭게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 생기기 시작한 거죠.”

풍족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과 사진에 대한 뜨거운 꿈이 뒤섞여 그의 토대가 되었다.

오는 20일부터 서울 용산구 뉴스프링 프로젝트에서 진행되는 사진작가 조선희 첫번째 순수 사진전 ‘姬(희): 나는 우주다’ 한 작품. 사진제공|본인제공



“전 5남매였고 집에 돈도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사진가가 되고 싶었을 때에도 제 최저 생계비 월 60만원만 벌 수 있다면 해볼 수 있다고 뛰어들었고요. 사진을 찍으면서 먹고만 살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았거든요. 그 땐 인터넷이나 자료도 많지 않을 시절이라 서점에 가서 책도 찾아보면서 틈틈이 개인 포트폴리오 작업을 하면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어요.”

늘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며 즐거움을 맛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비결을 물으니 단순하지만 당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두 가지가 병행되어야 해요. 첫번째는 끊임없는 공부, 그건 선학들의 생각을 배울 수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해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거든요. 그리고 그들에게서 배운 걸 자신 안에 쌓아놓고, 꺼내보면서 머리 안에서 사라지지 않게끔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이 두 가지가 선순환된다면 충분히 오랫동안 영감을 얻을 수 있죠.”

여전히 달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조선희에게 ‘꽃’과 공통점을 물었다. ‘신선한 질문이다’며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푹 터뜨렸다.

“꽃들이라고 해서 다 똑같진 않잖아요. 활짝 피기 전에 아름다운 꽃이 있고, 말린 후에 아름다운 꽃도 있죠. 사람들도 다 저마다의 아름다울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전 주위에서 나이 들 수록 예뻐지는 인간이라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제게 찍힌 꽃들이 그러하듯, 저 역시 지금 이 순간 가장 아름다울 거로 생각합니다.”

이다원 기자 edaone@kyunghyang.com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