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규’석기 시대! 반도체판 ‘왕좌의 게임’ 재밌게 보려면

김우현 매경닷컴 기자(rightside@mk.co.kr) 2022. 12. 2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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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장 직원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매경DB]
#지난 3분기 삼성전자는 대만 기업 TSMC에 처음으로 ‘반도체 매출 1위’ 자리를 넘겨줬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매출이 작년 동기 대비 약 12.8% 줄어드는 동안 TSMC는 47.9%가량 늘어난 것이다. 양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희비를 갈랐다. 삼성전자는 시장 상황에 영향을 받는 메모리반도체를 설계?생산하는 반면 TSMC는 파운드리(위탁 생산)에만 집중한다. 앞서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13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반도체 기업들의 3분기 실적 발표가 마무리되자 이 같은 내용의 뉴스가 쏟아졌습니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하던 삼성전자가 왕좌를 내줬으니 단연 큰 뉴스거리였죠. 동시에 반도체 시장에서 파운드리 사업의 중요성과 TSMC의 영향력을 재확인하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반도체 산업이 성장할수록 우리와 반도체 사이의 거리도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컴퓨터, 스마트폰, 태블릿 등 전자기기 사양을 비교할 때는 장치의 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반도체의 제조사를 확인하고, 반도체 기업의 주식을 살 때는 반도체 종류와 시장 상황을 면밀히 파악해야 하죠.

하지만 녹록지 않습니다. 반도체는 첨단 기술의 산물인 만큼 당장 위 기사에 등장하는 용어와 내용을 오롯이 이해하는 데도 많은 공부가 필요하죠. 이번에는 삼성전자와 TSMC의 반도체판 왕좌의 게임을 시청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살펴보겠습니다.

반도체는 물질...‘반도체 소자’가 정확한 표현
반도체와 관련된 신조어 중 ‘규석기 시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반도체 성질을 가진 규소(실리콘?원소기호 Si)와 구석기 시대를 섞어 만든 용어로, 구석기 시대에 돌이 문명의 근간이었던 것처럼 현재는 반도체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반도체에 문외한인 사람은 규소를 유리의 주원료 혹은 모래를 구성하는 물질로 알고 있을 겁니다. 이 흔한 물질이 어떻게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와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USB메모리를 구성하는 반도체가 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먼저 반도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기판에 나열된 반도체 칩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전기가 잘 통하는 물질을 도체, 통하지 않는 물질은 부도체라고 합니다. 반도체는 전기를 도체와 부도체의 중간 성격을 갖는 물질로, 평상시에는 전기가 통하지 않지만, 열을 가하거나 특정 물질을 섞어(도핑) 전기가 흐르는 정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규소, 게르마늄(원소기호 Ge)이 대표적인 반도체죠.

우리가 알고 있는 칩 형태의 반도체는 사실 ‘반도체 소자’라고 불러야 정확합니다. 혹은 ‘반도체로 만든 전자 소자’ 정도로 풀어 쓸 수 있습니다. 소자는 특정 임무를 수행하는 전자 부품인데 반도체 소자를 역할에 따라 분류하면 CPU나 AP처럼 정보를 처리하는 시스템반도체, D램과 SSD처럼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반도체로 분류할 수 있죠.

이런 반도체 소자는 수백에서 수백억 개의 단위 소자를 하나의 칩에 모아(집적해) 만들어지는데 이 단위 소자를 만들 때 반도체가 쓰입니다. 전류가 흐르고, 흐르지 않는 두 개의 상황은 곧 디지털 신호에 쓰이는 두 숫자 0과 1로 바뀌고 이런 신호의 조합을 통해 정보를 저장하거나 연산하는 작업이 이뤄집니다.

TSMC가 막강한 이유...파운드리가 뭐길래
이후부터는 편의상 반도체 소자를 반도체로 표현하겠습니다.

주력 제품 외에 반도체 기업을 구분하는 또 다른 기준이 있습니다. 바로 설계와 생산 여부입니다. 둘 중 하나만 하는지 아니면 둘 다 하는지에 따라 총 3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컨대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판매하는 기업을 ‘종합 반도체 회사( 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IDM)’라고 합니다. 국내 기업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여기에 해당하며 해외 기업으로는 마이크론과 인텔이 있습니다.

‘팹리스(Fabless)’는 반도체 생산 공장인 팹(Fab)을 보유하지 않고 설계와 판매만 하는 기업으로, 퀄컴이 대표적입니다. 반대로 파운드리는 설계는 하지 않고, 이미 설계된 반도체를 위탁 생산합니다. TSMC와 한국 기업인 DB하이텍이 있죠. 자연스럽게 팹리스와 파운드리는 서로 의존하는 관계입니다.

대만 파운드리 업체 TSMC CI. [사진 출처 = TSMC]
반도체, 반도체 기업의 종류에 따라 각자의 특징이 있습니다. 예컨대 반도체 시장에서 시스템반도체는 메모리반도체보다 비중이 크고, 제4차 산업인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등 수요에 힘입어 규모가 점점 더 커지는 추세입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작년 기준 반도체 시장 규모는 5950억달러로, 이중 시스템반도체는 70%, 메모리반도체는 30%를 차지합니다.

또한 시스템반도체는 요즘 같은 불황에 영향을 덜 받는 편입니다. 수요자의 요구에 맞춰 제품이 생산되는 주문형 방식이어서 수요와 공급 불일치에 따른 급격한 시황 변화가 없고, 특정 산업의 불황 여부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죠. 반면 메모리반도체는 생산 후 판매하는 방식으로, 수요가 줄면 재고가 쌓이고, 시장 원리에 따라 가격이 줄어들죠. 지난 11월 기준 D램 가격은 1년 전보다 무려 40%가량 줄었습니다.

TSMC가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작년 기준 1000억달러에 가깝습니다. 시스템반도체와 마찬가지로 꾸준히 성장하는 ‘우상향 사업’입니다. 5세대이동통신(5G),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데다 고객과 장기계약을 맺기 때문이죠. 경기가 불황일수록 반도체 시장 패권이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 시장에서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내년 하반기 반도체 왕좌의 게임 시작
지금 같은 반도체 시장 불황기에 TSMC가 오히려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오직 파운드리에만 집중한 TSMC는 애플, 퀄컴 등 수요가 탄탄한 업계 큰손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데 최근 출시한 애플의 아이폰14 시리즈의 AP인 A16 프로세서도 독점해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지난 3분기 기준 전 세계 파운드리 상위 5개 업체 가운데 매출이 전 분기 대비 두 자릿수 이상 증가한 곳은 TSMC가 유일합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성장률은 -0.1%로 오히려 역성장해 격차가 더 벌어졌죠.

파운드리 사업의 중요성을 체감한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 투자를 유지하는 한편 기술력을 앞세워 TSMC를 추격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지난 6월 TSMC보다 먼저, 그리고 세계 최초로 파운드리 3nm(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양산을 시작하면서 고객 확보에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22년 3분기 기업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순위. [자료 출처 = 트렌드포스]
3nm 공정은 반도체 회로 선폭을 3nm 굵기로 새긴다는 뜻인데 선폭이 미세화될수록 소비전력이 감소하고 처리 속도가 향상되는데 이전까지는 4nm가 최선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오는 2025년에는 2nm, 2027년 1.7nm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삼고 있죠. 파운드리 생산 능력 역시 오는 2027년까지 현재의 3배 수준으로 늘리겠다고도 했습니다.

증권가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 여파로 인한 반도체 시장 불황이 내년 하반기 이후에나 회복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불황에 격차를 벌리고 있는 TSMC와 추격의 불씨를 키우고 있는 삼성전자. 여기에 정부의 지원을 받은 중국 반도체 기업이 신흥 세력으로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내년에 펼쳐질 반도체 왕좌의 게임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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