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아내에게 밥 해주는 남편…드라마가 되고 노래가 되다

서정민 2022. 12. 1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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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 시리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연출 이호재 감독·OST 가수 정밀아 인터뷰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스틸컷. 왓챠 제공

아내가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아내는 이혼 직전까지 간 남편에게 연락한다. “당신이 와서 밥을 해줬으면 좋겠어.” 부엌일에 젬병인 남편은 인터넷을 보고 음식을 하나씩 만든다. 그러면서 레시피를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에 일기처럼 적는다. 그것들이 모여 책이 됐다. 그리고 드라마가 됐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왓챠는 12부작 시리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를 지난 1일부터 매주 목요일 2화씩 순차 공개하고 있다. 강창래 작가의 동명 에세이를 바탕으로 이호재 감독이 각색·연출했다. 영화 <작전>(2009), <로봇, 소리>(2016)를 만든 그의 첫 드라마다. 배우 한석규가 남편을, 김서형이 아내를 연기했다.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스틸컷. 왓챠 제공

책은 평양냉면처럼 슴슴하고 담백하다. 종종 행간에 마른 눈물이 배어 있다. 드라마도 그렇다. 그리고 노래도 그렇다. 3화 ‘굴비하세요!’에서 남편이 집 앞을 터덜터덜 걷고, 아내는 거실에서 비 오는 밖을 내다보고, 아들은 비 맞으며 낙담한 여자친구에게 갈 때 노래가 흐른다. “섬처럼 혼자 있는 밤/ 별이 보이지 않는 밤/ 마음을 읽어가는 밤/ 한참 어려운 밤/ 그대라는 섬으로/ 배를 띄워보는 밤/ 비가 내리는 밤/ 한참을 그런 밤”(정밀아 ‘그런 밤들’)

정밀아는 포크 싱어송라이터다. 3집 <청파소나타>로 지난해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 등 3관왕에 올랐다. 그는 이번 드라마 오에스티(OST) 4곡을 혼자 도맡았다. 우주 음악감독의 오리지널 스코어(연주곡) 외에 다른 가수 노래는 이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는다. 흔치 않은 사례다. 어떻게 이런 작업이 이뤄졌을까? 최근 마주한 이 감독과 정밀아에게서 그 과정을 들었다.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를 각색·연출한 이호재 감독. 이호재 감독 제공

“2019년 정밀아님을 처음 알게 된 뒤로 열혈 팬이 됐어요. 드라마 각본 작업 때 제 감성을 끌어올려줄 노동요로 정밀아님 노래를 들었어요. ‘감정의 가습기’ 역할을 한 거죠. 그러다 드라마에 정밀아님 노래를 넣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대본 쓸 때부터 노래가 들어갈 자리를 염두에 뒀죠.”(이호재)

“지난봄 제안을 받고 흥미가 생겼어요. 제 기존 노래를 드라마나 영화에 쓴 적은 있었지만, 창작곡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은 처음이었거든요. 수락하고는 원작 책과 시나리오를 봤어요. 슬픈 이야기인데도 담백하게 썼더라고요. 그 정서를 어떻게든 흡수하고 싶었죠.”(정밀아)

3화의 ‘그런 밤들’과 5화의 ‘햇살로 가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할 때 흘러나오는 노래다. 주로 자기 얘기로 노래를 만들어온 정밀아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노랫말 쓰는 게 쉽지 않았다”고 했다. 이미 촬영한 장면에 가사 있는 노래가 들어가야 하니 인물의 대사와 부딪치지 않게 구성하는 것도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노래가 ‘나 여기 있소’ 하고 존재감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드라마와 인물들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흡수돼야 한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죠.”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오에스티(OST)를 만들고 부른 가수 정밀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원작에 나왔듯 드라마는 바꿀 수 없는 결말을 향해 간다. ‘먼 곳’은 그 후반부에 등장하는 노래다. “저기, 저기까지/ 높이 올라가네/ 나는 작아지고/ 구름 날리다 사라지네” 담담한 읊조림으로 시작한 노래는 5분이 넘어갈 즈음 전조(조바꿈)가 이뤄지면서 “안녕”이란 가사를 몇번이고 되풀이한다. 지독하게 먹먹해지는 순간이다. “이 노래 쓸 때 ‘내가 그 사람만큼 슬플 순 없을 텐데, 거기까지 못 다다를 텐데…’ 하며 무척 괴로워했어요. ‘안녕’이란 말도 너무 관념적 표현 같아서 안 쓰려고 했고요. 그러다 노트북에 한번 ‘안녕’이라 써봤어요. 그걸 보는 순간 눈물이 펑펑 터지는 거예요. 한참을 울고는 ‘아, 이 정도 울어야 글 한 자가 써지나’ 하며 혼자 울다 웃다 했네요.”

드라마 전체 엔딩곡 ‘우리들의 이별’은 애초 계획에 없었다. 이 감독이 마지막 장면 촬영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이 노래를 떠올렸다고 한다. 이는 정밀아 1집 <그리움도 병>(2014) 수록곡이다. 정밀아에게 원곡을 쓰고 싶다고 요청하니 “2022년 감성으로 새로 녹음하고 싶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밀아는 “지금 들어보면 1집 녹음 때는 너무 어렸다”며 “이젠 좀 더 숙성된 감정으로 이별을 노래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다시 녹음했다”고 말했다. 비교해 들어보니 새 버전에서 더 묵직하고 깊은 맛이 난다.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스틸컷. 왓챠 제공

드라마는 지난 15일 6화까지 공개하며 반환점을 돌았다. 이 감독은 “6화까진 시청자들이 각 인물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담담한 톤을 유지했다”며 “끝이 정해진 길로 가는 이야기인 만큼 후반으로 갈수록 슬플 것”이라고 귀띔했다. “제가 꼽는 클라이맥스는 8화입니다. 무항생제 대패삼겹살 얘기인데요, 배우들도 이 에피소드를 가장 많이 명장면으로 꼽더군요. 제가 감정적으로 공을 제일 많이 들였거든요.”

오에스티 앨범 <먼 곳>은 이미 음원사이트에 공개됐다. 정밀아는 “내 노래의 색다른 쓰임을 고민하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 애써본 것이 창작자로서 도움·확장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몇달간 작업하다 보니 이 사람들이 내 안에서 살다 간 기분이에요. 이제 그들을 다 보내고 내 안이 텅 비었으니 다시 저를 넣어야죠.”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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