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사랑해, 병원비 좀”…달콤한 사기 ‘로맨스 스캠’ 기승
■ "SNS로 알게 된 지 3일 만에 사랑에 빠졌다?"…생면부지 사기꾼들의 '가짜 구애'
"얼굴도 제가 좋아하는 타입이었고, 외국인 특유의 달콤한 화법에 빠져서 직접 만나보려고도 했었어요. 그 나이지리아 남자랑 대화한 일주일 동안 즐거웠는데…. 저도 애정이 생기려던 차에, '병원비 내달라'는 말에 눈이 확 뜨였지요."
"물론 도용당한 것이겠지만, 사진 속 여성의 얼굴은 정말 제 스타일이었습니다. SNS로 연락이 와서 7일간 대화했는데, 본인을 시리아에 파병 간 미 육군 군인으로 소개하더라고요. 그런데 알게 된 지 3일 만에 갑자기 장문의 글을 보내며 저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는 걸 보고 나니, 그때서야 '사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로맨스 스캠' 의심 일화 글 재구성
SNS(사회 관계망 서비스)로 얼마간 연락을 주고받은 생면부지 외국인의 '직진 구애(求愛)'.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지만 어딘가 모르게 수상한 그 사람…. 여러분도 혹시 비슷한 경험, 있으신가요?
원격 소통으로 상대방의 환심을 산 뒤 금전을 받아내면 잠적하는 고약한 범죄, 일명 '로맨스 스캠(Romance Scam)'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 이후 전 세계적으로 '비대면 문화'가 보편화됨에 따라, 사랑을 빙자한 '편취(騙取·남을 속여 재물 등을 빼앗음) 수법'도 고도화하고 있는데요. 다양해진 로맨스 스캠의 사기 유형과 예방법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 '수려한 용모' 사진 도용, '군인·사업가'부터 'NASA 우주인'까지…영악한 '신분 위조'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지난 9월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체 '온라인 사기' 가운데 '로맨스 스캠' 등 기타 유형으로 분류되는 사기는 2017년(1만 7,073건)부터 작년(4만 7,087건)까지 근 5년간 매년 증가했습니다. 국가정보원 111 콜센터 접수 기준, 로맨스 스캠으로 인한 피해 규모도 2020년 3억 7,000만 원에서 작년 20억 7,000만 원으로 대폭 늘었는데요.
논문 「팬데믹 시대 증가하는 로맨스 스캠과 몸캠 피싱: 국내외 동향 및 대응 방안」(정태진 평택대 교수, 『한국경찰연구』 2021년 겨울호)에 의하면, 로맨스 스캠을 계획하는 사기꾼은 자신의 신분을 ▲외교관 ▲해외 주둔 군인 ▲국제 의료 봉사 요원 등 '신뢰받는 직업'으로 위장, 주로 SNS·이메일 메시지를 보내 피해자에게 접근합니다. 사교 또는 구애로 상대방과 어느 정도 친분이 쌓였다고 판단되면, '만남을 위한 이동 경비, 응급 병원비' '결혼·이주 약속 및 금괴·생활비 제공' 등을 명목으로 선금(先金)을 요구하는 식입니다.
지난달 경북경찰청이 검거한 이집트 국적의 로맨스 스캠 일당은 '한국에서 보석 가게를 열기 위해 준비 중인 영국 사업가', '우주 정거장에 체류 중인 나사(NASA·미국 항공 우주국) 우주인(우주 비행을 위해 특수 훈련을 받은 비행사)' 등을 사칭, 피해자 12명으로부터 총 6억 5,000여 만 원을 가로채기도 했습니다. 이 사기단은 통관비, 산소 구입비, 여권 갱신비 조로 금전을 요구해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외모나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다른 이의 사진을 도용하는 사례는 부지기수입니다. 실제 로맨스 스캠에 도용된 사진을 모아 놓은 한 SNS 계정을 보면, 주로 '20~30대로 추정되는 수려한 용모를 지닌 내외국인 남녀 사진'이 타깃이었습니다.
이영필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수사기획계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로맨스 스캠 사기단은 주로 외모가 멋진 백인 남녀 사진을 도용해 군인·변호사 등을 가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대부분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국가의 남성들이다"라며 "금전 편취 경로는 보이스 피싱과 비슷하다. 피해자가 ‘국내 인출책’ 쪽으로 송금을 하면, 인출책이 다시 ‘본국 총책’에게 입금하는 구조"라고 설명했습니다.
■ '가상화폐'에 '딥페이크'까지…디지털 기술과 함께 발전하는 '교묘한 편취 수법'
과거 로맨스 스캠 사기단은 피해자가 실체를 의심해 음성·영상 통화 등 직접적인 연락을 요청하면, 핑계를 대고 미루거나 완곡히 거절하는 식으로 발각을 모면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낌새가 이상하다는 점을 인지, 연락을 끊거나 신고를 하는 등 나름대로 대처할 수 있었는데요.
국정원 설명에 따르면, 요즘에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사기 수법이 더욱 교묘해졌다고 합니다. 가령 피해자가 영상 통화를 요청하면, 사진 속 인물의 얼굴 등을 합성해 영상을 편집하는 이른바 '딥페이크(Deepfake)' 기술로 속여넘기는 식입니다.
특히 값비싼 혜택을 제공한다는 미명 하에 선금을 요구하는 '고전적 수법'에서 나아가, '가상화폐 수익 정보를 알려주겠다'며 투자를 유도하는 등 편취 방식도 지능화하고 있습니다. 실제 작년 9월 싱가포르의 한 재력가를 사칭한 사기단은 국내 피해자에게 자신의 호화 생활을 보여주며 '허위 가상화폐 투자'를 유도, 수억여 원의 피해를 입히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도 피해자로 하여금 '가짜 은행 사이트'에 접속하게 만든 후 '네트워크 오류가 났다'며 '특정 물품 대금을 대신 납입해달라'고 요청하는 수법, '사이버 머니를 대리로 환전해달라'며 유인한 뒤 수수료 등 명목으로 돈을 가로채는 수법 등이 생겨났습니다.
■ "전문가도 속아 넘어갈 수 있는 '로맨스 스캠'…계정·사진 철저 확인하고 금전 요구 시 의심·신고해야"
근래 경찰·국정원 등 관계 기관은 주로 외국에 본거지가 있는 로맨스 스캠 사기단을 소탕하기 위해 '사이버범죄수사대' '국제범죄정보센터' 등 전문 조직을 중심으로, '국제 사법 공조'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적색 수배' 같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집중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금전 피해 방지를 위해 사건 발생 초기부터 금융기관에 지급 정지를 요청하고, 추적 및 환수 작업도 진행하고 있는데요.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로맨스 스캠, 마음에 상처 입고 금전적 피해까지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관계 기관에서는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SNS상 개인정보 노출을 최소화'하며, '의심이 들 경우 포털사이트 검색 등의 방법으로 상대방의 온라인 계정, 사진, 각종 증명서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권장합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한편에서는 '그런 단순한 사기에 어떻게 속아 넘어갈 수 있냐'고 지적하기도 하는데, 이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도 당할 수 있는 교묘한 범죄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일상에서 만나기 어려운 계층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호감을 나눈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높아져 '금전 요구'에도 방심할 수 있다"며 "로맨스 스캠을 비롯해 어떤 사기든지 먼저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그다음 상대방을 기만해 금전을 편취하는 식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접근해온 상대가 매력적으로 보이더라도 일단 '본인이 금전을 지출해야 하는 경우'라면 반드시 의심을 하고 신속히 신고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취재 지원: 최민주 리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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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민 기자 (ssm0716@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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