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생명의 갯벌서 죽음의 갯벌(?)된 고창군 만돌마을

이경민 2022. 12. 1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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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군vs부안군 해상경계선 분쟁 피해 만돌마을 어민들 덮쳐
특정 세력, 주민들 대대손손 조업해온 공동어장에 쇠기둥 점유

고창군 만돌마을 앞 바닷물이 빠진 갯벌에는 조개를 채취하는 어민들은 없고 적막감만 감돌았다. /고창=이경민 기자

[더팩트 | 고창=이경민 기자]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과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전북 고창군 심원마을 앞 청정 갯벌에 최근 쇠말뚝이 박히면서 어민들의 생계가 끊겼다고 한다. 고창군과 부안군이 해상경계선을 놓고 벌인 관할 분쟁의 피해가 어민들을 덮쳤다고 했다. 조상 대대로 갯벌을 지키며 맨손어업을 해오던 어민들이 갈고리를 내려놓고 공사판에서 시멘트 냄새를 맡고 있다. /편집자 주
지난 13일 오전 고창군 심원면 만돌마을에 가까워지자 해무가 꼈다. /고창=이경민 기자

전북 곳곳에 한파가 닥친 지난 13일 오전.

<더팩트> 취재진이 고창군 심원면 초입에 들어서자 옅은 해무가 흩날렸다. 심원이라는 지역명은 마음 심(心) 자 그리고 으뜸 원(元) 자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유래했다고 한다. 서해안 20㎞의 해안선을 따라 마음 심자의 3개의 점처럼 바다와 맞닿아 있는 마을은 만돌리, 월산리, 하전리이다. 이 마을 가운데 으뜸은 만돌마을이다.

해무가 점점 더 짙어질 때쯤 만돌마을에 도착했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이곳은 장차 굴뚝이 만 개가 솟을 것이라는 예언이 있는 지역이다. 하지만 예언이 무색하게 100여 개의 지붕만 눈에 들어왔다. 어느 어촌 마을과 다른 것은 집들이 바닷가 앞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밀려드는 파도를 막기 위해 2m 높이의 제방이 마을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다. 어느 집에서 봐도 바다가 아닌 회색 콘크리트 제방만 보였다.

만돌마을 집들은 바다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바닷가 앞에 조성된 것이 아니라, 선조 때부터 조개를 빨리 채취하러 가기 위해서 조성됐다고 했다. 이 집들에 붙어있는 바닷가에서 서쪽 해상 1~2㎞ 아래가 조개를 채취하던 마을 공동 어장이 있다고 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고창 갯벌의 대표 해산물인 백합과 동죽(참조개)은 만돌마을이 자연 서식지이다. 동죽은 사람에게 이롭기 때문에 한자로는 합리(蛤蜊)라고 불렸다. 동죽은 조상 대대로 만돌마을의 주 수입원이었다. 만돌마을 주민들은 이 조개들에 운명을 맡긴 채 삶을 이어왔다. 이 조개들은 유네스코 청정 갯벌의 생태계를 유지시켜주는 미생물뿐만 아니라, 만돌마을 주민들의 생명권도 품고 있다. 동죽과 백합의 소멸은 자연 생태계는 물론 마을 소멸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취재진을 태운 경운기가 심하게 요동쳤고, 바닷바람이 칼날처럼 파고들어 장갑을 안 낀것이 후회됐다. /고창=이경민 기자

바닷물이 빠지면서 검은 갯벌이 드러나자, 마을 주민 김영주(58) 씨가 경운기에 시동을 걸었다.

<더팩트> 취재진이 경운기 화물칸에 올라타자 김 씨의 경운기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갯벌에 들어섰다. 경운기 속도는 느린데 겨울 칼바람은 빠르고 날카롭게 얼굴로 날아들었다. 날이 선 겨울바람이 눈을 자극해 자꾸 눈물이 흘러나왔다. 경운기를 몰던 김 씨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있었다.

갯벌 중간 중간에는 세계적인 멸종위기종 저어새가 주걱처럼 생긴 부리를 갯벌에 파묻고 좌우로 흔들며 조개를 캐먹고 있었다. 요동치는 경운기를 타고 7분 정도 지나자, 파르스름한 쇠기둥이 눈에 들어왔다. 이 쇠기둥들은 20㏊ 면적에 1m 간격으로 빼곡히 청정 갯벌에 박혀 있었다.

김 씨는 "쇠말뚝이 수북하게 박힌 곳이 우리 마을 사람들이 벌어먹던 구역이다. 태어나 보니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곳에서 밥벌이를 했고, 그 뒤를 이어 나도 이곳에서 생성되는 조개로 집안 살림을 꾸려왔다"면서 "하지만 이제 우리는 저곳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 세력이 부안에 있던 어업권을 고창으로 옮기면서,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조개를 채취하던 이곳에 허가를 냈고, 고창군은 마을 사람들의 생계 터전인 것을 알면서도 승인해 줬다"면서 "이 광활한 갯벌에 다른 곳도 많은데 왜 이곳에 허가를 내줬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쇠기둥 안에는 두 달째 채취를 못한 동죽과 백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갯벌에는 새들이 까먹고 남은 조개껍질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흡사 돌멩이 같았다.

만돌의 지역명인 ‘일만 만(萬) 자 갑자기 돌(突) 자’처럼 동죽과 백합이 솟아나는 것처럼 보였다.

고창군 심원면 만돌마을 주민들이 대대손손 맨손 어업을 해왔다던 20ha 크기의 갯벌에는 쇠기둥이 빼곡히 박혀 있다. /고창=이경민 기자

"우리에겐 지금이 일제강점기다. 일제가 한반도 정기를 끊기 위해 쇠말뚝을 박은 것처럼, 특정세력이 박은 쇠말뚝 때문에 우리 생계가 끊겼다."

김 씨는 한숨을 내쉬며 이같이 말했다.

김 씨는 또 "(특정 세력이) 동죽과 백합만 생성되는 어장에 새꼬막 종패(조개 종자)를 대량 살포해 양식을 하려 한다"면서 "백합은 갯벌 깊은 곳에서, 동죽은 얕은 곳에서 공존해 왔다. 새꼬막 살포 자체가 생태계 교란"이라고 주장했다.

김 씨의 주장대로 생태계 교란이 일어난다면 만돌마을에 동죽과 백합이 자취를 감출 수도 있다.

김 씨는 더 이상 조개 채취를 못해서, 생계를 위해 막노동을 뛰고 있다고 했다. 경운기를 타고 다시 뭍으로 되돌아왔다. 이번에는 일감이 없어 주민들이 인근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창군 심원면 만돌마을 주민들과 함께 30여년 조개를 채취해온 김현우(54)씨는 지난 10월 7일 이후로 맨손 어업이 중단됐다고 했다. /고창=이경민 기자

술집에 들어서자 밥 대신 막걸리를 마시는 김현우(54) 씨가 앉아 있었다.

만돌마을에서 고령의 어민들을 보살피며, 30여 년째 이들과 함께 조개를 채취해온 김 씨. 그는 십여 년째 일기 대신 조업 기록을 작은 다이어리에 기록해왔다. 만돌마을 갯벌의 자연환경 연구 자료로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조개를 채취한 기록이 꼼꼼히 적혀있다.

갯벌 개흙이 묻은 김 씨의 다이어리를 펼치자 마을 사람들 이름도 적혀있었다. 종이에 적힌 ‘숙모, 순님, 점순, 길수, 오여사, 영춘 등의 이름은 만나 보지 않아도 나이를 짐작하게 한다. 김 씨의 다이어리를 넘기면서 무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이 종이에 더 이상 기록되지 않는 것은 만돌마을에서 볼 수 없어서다. 마을주민 이름도 그랬다. 이런 김 씨의 다이어리가 만돌마을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그의 다이어리가 10월 7일 자로 기록이 멈췄기 때문이다.

맨손 어업을 중단한지 두 달이 지난 김 씨는 건설 일용직 일을 알아보고 있다. 하지만 농어촌 지자체인 고창에서 일감을 구하긴 쉽지 않다고 한다. 더구나 건설 현장이 동절기를 앞두고 있어, 내년 봄까지 생계가 막막해졌다.

같은 테이블에서 막걸리를 마시던 박 모(58) 씨도 한 달째 타 지역으로 건설일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조개 채취를 더 이상 못 한다면 마을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한 둘씩 떠난다면 300여 명의 주민들로 구성된 만돌마을은 소멸될 것으로 보인다.

고창군 심원면 만돌마을에서 30여년 맨손 어업을 해온 김현우(54)씨가 조개채취 기록을 적은 다이어리. /고창=이경민 기자

◆ 고창군 "서류상 전혀 문제 없어"

고창군은 특정 세력에 대한 허가가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고창군 관계자는 "전북도에 이설 승인 계획을 세워서 진행했고, 협의체를 거쳐 주변 어장의 동의를 받는 조건으로 진행했다"며 "주변 어장의 동의는 물론 만돌 어촌계 직인이 찍힌 동의서도 접수됐다. 절차상 전혀 문제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일부 주민들이 ‘맨손 어업권자들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그러면 이설하기 위해 전국의 맨손 어업자들의 동의를 다 받아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하며 "맨손 어업자들(만돌마을 주민)은 법률적 지위에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의사에 반한다고 해서 이설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는 판례도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주민들이 조개를 채취해온 공유수면은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맨손 어업 신고만 하면 조개를 채취할 수 있는 구역이고, 이곳에 이설을 해준 것은 어장을 개발하는 것은 양식목적인데 여러가지를 고려해서 생산성이 좋은 이곳을 선택한 것이다"고 덧붙였다.

고창군이 대대손손 조개를 채취해온 공유수면에 대해 법적 지위가 없다고 지목한 만돌마을 주민들은 전날(12일) 해양수산부가 주최·주관한 ‘2022 바다 가꿈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주민들은 해수부가 평가한 최근 2년 동안 140여 톤의 쓰레기를 수거했고, 동죽과 백합 등이 계속 생산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점에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고창군 심원면 만돌마을 주민들이 바닷가 인근에서 환경 정화작업을 하고 있다. /만돌마을 주민 제공

<더팩트> 취재진이 만난 만돌마을 어민들은 한목소리로 "특정 세력에 대해 우리가 밥벌이를 하던 공동어장으로 이설해준다는 동의를 해준 적이 없다. 마을과 어촌계에선 이와 관련한 회의도 단 한 차례 해본 적 없다. 그런데 고창군은 자꾸 우리가 동의를 해줬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scoop@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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