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힐링물 '일당백집사', 시청률보다 높게 평가받아야하는 이유

박생강 칼럼니스트 2022. 12. 1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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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백집사’, 힐링드라마의 매력과 한계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MBC 수목드라마 <일당백집사>는 몇 년 사이 꾸준히 방영된 힐링드라마의 계보를 잇는다. 예를 들어 2019년 JTBC의 <초콜릿>은 전형적인 힐링 드라마의 포맷을 지니고 있다. 냉철한 의사와 다혈질 쉐프가 완도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나 환자들과 함께 지내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줄거리다. 이처럼 힐링 드라마는 호스피스 병동처럼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배경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 안에서 시청자와 함께 울고 웃으며 공감하고 치유하는 드라마다. 하지만 이런 힐링드라마는 시청자를 사로잡기가 그렇게 쉽지가 않다. 언제 웃기고 언제 울리고 언제 위로해야 할지 그 지점이 되게 미묘해서다. 또 자칫하면 낡은 신파처럼 느껴질 위험도 크다.

일단 <초콜릿> 역시 로맨스와 코미디, 힐링물의 경계에서 삐걱대다가 결국에는 그저 그런 이야기로 흘러갔다. 이후 2021년 JTBC가 내놓은 <한사람만> 역시 호스피스 병동을 한 세 여성의 우정과 흥미로운 일탈을 그린 힐링물이었다. 하지만 시청률은 좋지 못했다. 2022년 KBS에서 방영된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 역시 호스피스 병동 배경으로 따스한 이야기를 잔잔하게 다뤘지만 그것만으로 화제가 되지는 못했다.

그런 면에서 <일당백집사>는 성공한 힐링드라마로 보기에 충분하다. <일당백집사>는 힐링드라마에 로맨스와 판타지, 약간의 미스터리까지 곁들여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힐링드라마를 다양한 맛으로 버무렸다. 그러면서도 그 설정들이 겉돌지 않도록 애쓴 흔적들도 엿보인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각자의 서사를 가지고 하나로 모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청자는 장례지도사 백동주(이혜리)를 통해 죽은 사람과 대화하는 힐링 판타지, 백동주와 김집사(이준영)의 로맨스까지 아무런 이질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특히 <일당백집사>는 힐링 판타지와 로맨스가 자연스럽게 맞물리도록 만들어졌다. 다만 그렇다 보니 죽은 자들의 사연이나 로맨스 구도에 파격적인 점은 없다. 뭔가 익숙한 사연이나 뭔가 보아온 로맨스다. 하지만 죽은 자들의 사연은 익숙하지만 성실하게 이야기를 쌓아가며 결국 죽은 이의 소원이 해결되는 순간에는 보는 이의 마음을 먹먹하게 울린다.

특히 4회차에서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온 서강, 원효 부부의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백미다.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버팀목이던 부부다. 그런데 출산을 사흘 앞둔 아내 서강이 죽고 만다. 사망한 아내는 장례식장에서 백동주에게 말을 건다. 남편 원효가 자신을 따라 자살할 것 같으니 제발 막아달라고. 백동주는 김집사의 도움으로 원효의 죽음을 막고, 원효는 아내 서강이 라디오에 보낸 사연, 다시 태어나도 서강이 되어 원효 곁에 있겠다는 내용까지 들을 수 있게 된다. 원효는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장례식장으로 돌아와 무사히 상주 역할을 한다.

한편 <일당백집사>는 위로는 되지만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힐링드라마의 무게를 솜사탕 같은 로맨스로 적절하게 가볍게 만들어준다. 게다가 <일당백집사>에서 두 사람의 로맨스는 전형적인 달콤한 공식을 밟는다. 오해가 싹트고, 그러다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는 계기가 있고, 사랑에 빠지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다. 이 과정이 뜬금없지 않고 적절한 수준으로 단계를 밟아가서 힐링 판타지 못지않게 로맨스 서사 역시 계속 보고픈 마음이 들게 한다.

여기에 중반부에 이르면 백동주가 처음 만난 죽은 아이의 영혼이 결국 김집사의 동생이라는 연결고리까지 만들어진다. 극 초반에 나타난 미스터리가 로맨스가 이어진 뒤에 또 다른 스토리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처럼 <일당백집사>는 힐링드라마의 정서 안에서 적절하게 흥미로운 서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다만 <일당백집사> 역시 꾸준한 마니아층은 있지만 크게 히트하지는 못했다. 몇 년 사이 <불편한 편의점>,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같은 힐링소설 계열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과는 차이가 크다. 아마도 힐링의 속도가 기본적으로 빠를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은 손으로 페이지를 넘기며 이야기의 속도를 자신에 맞게 조절할 수 있지만, 드라마는 그럴 수가 없다. 당연히 기본적으로 속도감이 느린 힐링 드라마가 많은 대중의 구미를 사로잡기란 쉽지가 않은 것이다. <일당백집사>가 실제 체감 시청률보다 오히려 인터넷 요약본이 더 사랑받는 느낌이 드는 것도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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