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침체사회’서 자란 MZ … ‘공정’ ‘젠더’에 민감해지다

박동미 기자 2022. 12. 9. 09: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 밀레니얼의 마음 │ 강덕구 지음 │ 민음사

밀레니얼이 10 ~ 20대 보냈던

2010년대 사회 전반 ‘대침체’

세계 금융위기·장기침체 영향

불안정·무기력 ‘심성’ 갖게 돼

‘공정성 논란’ 정치불신서 촉발

‘정의 담론’은 각자도생의 방증

젠더갈등 원인 된 남성성 위기

힙합속 ‘자기혐오 정서’로 설명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삶과 무관한 바보 같은 이유로 울고 웃었는지도 모른다.…밀레니얼은 밀레니얼이 사는 세계의 ‘이방인’이다.”

‘밀레니얼’을 말하며 ‘우리’라 일컫는다. 저자는 1992년생. 책은 밀레니얼이 직접 들여다보고, 발견하고 그려낸, 밀레니얼의 초상이다. 규정당하지 않고 차라리 규정하겠다며, 우리가 본 ‘우리’, 우리가 보는 ‘당신’을 분석하려는 젊고 도발적인 비평가들이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또 한 명의 사회평론가가 명함을 내민 것이다. 저자는 그중에서도 새롭고, 또 다르다. 그동안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사회 비평은 주로 기성세대 비판이나 한국 사회 분석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애초 독자를 동시대 MZ세대로 설정한 책은, “밀레니얼도 밀레니얼을 모른다”고 선언하고, 스스로 ‘이방인’이 돼 이야기를 시작한다. 밀레니얼에게, 밀레니얼이 만들어진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정말로 실체가 있는지, 그렇다면 그 정체성의 근원은 무엇인지. 저자는 미디어와 기성세대가 본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호출한 ‘상상의 밀레니얼’을 밀어낸 후, 밀레니얼의 진짜 표정을 읽으려 시도한다. ‘우리’가 울고 웃는, 우리 삶과 유관한 진짜 이유를 찾기 위해 말이다. 어쩌다, 우리는, MZ가 됐는가.

MZ의 탄생을 논하기 위해, 책은 2010년대를 되짚는다. 저자에 따르면, 2010년대를 관통하며 생겨난 가장 주요한 키워드가 바로 MZ이다. 이 시기는 지금의 밀레니얼, 즉 20대 후반∼40대 초반이 10∼20대를 보낸 때다. 그때 이들은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돼 세계에 등장했다. 따라서, 2010년대를 이해하는 것이 곧 밀레니얼 이해의 출발이라는 것. 이 지점에서 ‘밀레니얼의 마음’은 세대론을 펼쳐온 기존 책들과 차별화한다. 책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시대론’ 속에 있다.

2010년대는 어떤 시대였나. 2008년 세계는 금융위기를 겪고, 장기 침체가 시작된다. 소비는 위축되고, 노동 시장은 불안정해졌다. 불안의 심리가 사람들을 잠식했고, 이는 정치, 경제뿐 아니라 문화 전반에도 반영된다. 한마디로, 2010년대는 모든 것의 침체, 즉 스태그네이션의 시대였던 것이다. 저자는 과거의 것을 그리워하는 레트로 열풍 등을 언급하며, “성장이 멈춘 시대, 미래에 대한 기대를 상실한 시대, 과거가 현재를 압도하는 시대”였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따라서, 풍요롭게 자라서 고생을 모르는 철없는 애들로 여겨지고, 공정성에 민감하고 자기 몫에 당당한 청년의 이미지를 지닌 밀레니얼 세대가 한편으로는 취업과 결혼, 출산 등 많은 것을 ‘포기’하며, 불안정과 무기력의 표상이 돼 온 것은 자연스럽다. 스태그네이션은 밀레니얼의 심성(mentality)을 가장 강력하게 좌우한 요소다.

‘대침체 사회’를 2010년대의 가장 큰 특성이자, 밀레니얼의 ‘아픈 마음’의 근원으로 보는 책은, 여기에 음모론과 포퓰리즘으로 대표되는 당시 한국 정치의 붕괴, ‘미투(Me Too)’ 이전부터 그 자양분이 만들어지고 있던 젠더 갈등, 그리고 SNS의 등장으로 가속화된 ‘나’의 분열과 관계 맺기의 변화 등을 도구로 해, 보다 좁고 깊게 밀레니얼 세대의 심성 구조를 추론한다. 예컨대, ‘공정성’과 ‘능력주의’라는 지금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하는 키워드이자 삶을 규정하는 강력한 정신은 2010년대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촉발한 담론들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당시 등장한 ‘외고 폐지’나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 등이 자기 경영이라는 가치를 주입했다고 분석한다. 한편에선,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회자됐으나 이는 오히려 ‘각자도생’의 인식이 급속하게 퍼지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과 2015년 ‘페미니즘이 싫다’며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합류한 ‘김 군’의 실종 등을 중심으로, 책은 2010년대 더욱 첨예해진 젠더 갈등도 반추한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를 여기서 또 한 번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한국적 남성성’의 위기를 젠더 갈등의 씨앗으로 보고, 이를 그동안 ‘남성성’의 이미지가 강했던 힙합이라는 대중문화를 통해 설명한다는 것이다. 비주류 장르였던 힙합이 음악 산업 한가운데에, 그러니까 주류로 올려가게 된 계기는 2012년 시작된 힙합 경연 방송 ‘쇼미더머니’다. 저자는 한국 문화의 남성성을 쥐고 있는 “남자라서” “남자이기 때문에”라는 ‘심리적 고아 의식’이 한국 힙합 신으로 침투해, 뿌리 깊은 세대 논쟁으로 반복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힙합 가사에 등장하는 남성 우울증의 가사들이 밀레니얼 세대 남성이 경험하는 그것을 정확히 보여준다고, 2010년대를 통과한 남성성을 “여린 소년성에서 패배주의적이고 폭력적인 자기혐오로 가닿는 여정”이라고 꼬집는다.

책에는 저자가 만든 2010년대 연표가 있다. 이는 밀레니얼 세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놀라고 경악하고 감격하고, 또 증오하고 사랑하며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게 한다. 2008년 유튜브의 한국 공식 진출로 시작해 리먼브러더스 사태, 동일본 대지진,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세월호 참사, 강남역 살인사건을 지나, 2020년 코로나19 세계보건기구(WHO) 팬데믹 선언으로 끝이 난다. 여기에, ‘쇼미더머니’ ‘프로듀스 101’ ‘꽃보다 할배’ 등의 방송 시작일도 연표에 넣은 저자는 시대의 담론이 어떻게 문화적으로 표출되는지를 잘 포착해 낸다. 확실히 저자의 접근 방식은 예사롭지 않고, 이것은 읽는 이에 따라 만만치 않은 ‘도전’이 될 수도 있다.

끝으로 책의 또 다른 특징. 4개의 장으로 나뉜 책은, 각 장을 저자의 창작 풍자 소설로 시작한다. 그것은 교양소설이었다가, 독신소설이었다가, 환상소설이었다가, 공상과학소설이 되는데, 저자가 밀레니얼의 특징으로 꼽는 분열된 자아, 여러 개의 ‘나’처럼, 복잡다단한 구성을 보인다. 그것은 산만함과는 다르다. 길고 풍부한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하이퍼링크를 타고 다니는, ‘나무위키’나 ‘위키피디아’를 보는 것처럼, 움직이는 않는 활자들이 어느새 인터넷상의 정보들처럼 연결되고 있는 착시현상이 일어날 때, 아, 이 책의 저자가 바로 그것에 능한 MZ세대였지 하고 다시 한 번 깨닫는다. 476쪽, 2만 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