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재선충 농약 항공살포…“애먼 곤충만 죽였다”

김양진 기자 2022. 12. 8.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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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1400만 그루 베고 8천억원 쏟았지만 농약에 의존한 방식은 효과 없고 생태계 피해 키워…재선충 방제 30년, 바뀐 건 QR코드 도입뿐
경남 하동군 금성면의 솔숲 소나무들이 재선충병 피해로 말라 죽어 있다.

죽은 나무 반, 살아 있는 나무 반이었다.

2022년 11월22일 오후 경남 하동군 하동읍 섬진강 남쪽의 한 골짜기, 산비탈에 벌채된 소나무 훈증 더미 20여 개가 검은 비닐에 덮여 있었다. 훈증은 나무를 토막 내어 더미를 만들어놓고 농약(메탐소듐)을 넣은 뒤 비닐을 씌우는 해충 방제 방식이다. 비닐 안에서 나무를 갉아먹는 재선충과 재선충을 옮기는 솔수염하늘소, 북방수염하늘소 등 ‘매개충’ 애벌레가 죽는다. 아직 서 있는 나무 가운데 일부에 하얀색 띠가 둘러져 있었다. 띠에는 ‘로트 밴드’(LOT BAND)라는 초록색 글자와 일련번호, 정보무늬(QR코드)가 인쇄됐다. 이 하얀 띠는 ‘곧 베어낼 나무’라는, 일종의 사망 선고다.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소나무재선충병이 확인된 이래 재선충 잡는다고 30여 년 한결같이 농약만 뿌리고 있습니다. 바뀐 건 이력관리 한다고 2020년 도입한 큐아르(QR)코드, 그거 하나뿐입니다. 매년 돈만 쏟아붓고 병은 못 잡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지침에 따르기 때문에 농약 쓰는 것 말고는 다른 방식도 불가합니다.” 함께 현장을 찾은 산림기술사 ㄱ씨의 말이다. 산림기술사는 ‘산림기술 진흥 및 관리에 관한 법률’상 최고등급(특급)의 기술자로, ㄱ씨는 20년 넘게 경상도 지역에서 재선충병 방제 계획을 설계하고 있다.

2022년 11월22일 경남 하동군 하동읍의 산비탈에 재선충병 방제를 위해 베어진 소나무 토막이 비닐에 덮여 있다. 비닐 안에 고독성 농약(메탐소듐)이 주입돼 있다. ㄱ산림기술사 제공

소나무재선충 재유행… 2023년 2배 급증 전망

<한겨레21>은 ㄱ씨와 다른 산림기술자 ㄴ씨와 함께 4시간가량 경남 하동군 일대 산림을 둘러봤다. 하얗게 타들어간 모양으로 죽은 재선충병 피해 나무와 주변 ‘비닐 무덤’을 곳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1헥타르(㏊)에 어느 정도 발병했는지를 보면 발생 규모를 예측할 수 있는데 이 정도면 보수적으로 잡아도 2만~3만 그루 감염된 겁니다. 그런데 지금 하동군이 산림청에 보고한 건 8천 그루 수준입니다. 방제도 엉터리, 예찰도 엉터리입니다. 어떤 지자체는 ‘1만 그루 이하로 설계해달라’고 대놓고 주문합니다. 전년도에 방제 효과가 있었다는 걸 억지로 입증하려 애쓰는 겁니다. 산림청이 2023년 감염목을 78만 그루로 추정했던데, 현장 기술자들은 ‘너무 적게 잡았다’ ‘2014년 (재선충) 대발생 때의 200만 그루를 넘어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ㄱ씨)

국회 윤미향 의원실(무소속)에서 받은 산림청 자료를 보면, 재선충병 피해 나무(소나무·잣나무 등 소나무류)는 2014년 218만3천 그루로 최대치를 찍은 뒤 꾸준히 감소해 2022년 37만8천 그루로 줄었다(매년 4월 기준). 하지만 2023년엔 78만 그루로 2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상도 중심이던 발생 지역도 2002년 전남 목포, 2004년 제주, 2005년 강원도 강릉 등으로 확대됐다. 2022년 11월 최북단 지역인 강원도 철원까지 번져, 현재 전국의 절반 이상(59.8%)인 시·군·구 137곳이 재선충 피해를 본 것으로 확인됐다(표1 참조). 산림청은 2023년 829억원(지방비 별도)의 예산을 편성했다. 역대 최대 예산편성액(2018년 814억원)을 뛰어넘었다.

‘재선충 재유행’에 대해 산림청은 2021~2022년 겨울 고온건조한 기후를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한다. 고온으로 매개충이 많아진데다 건조한 기후로 매개충의 활동 기간이 길어지고 활동 범위가 넓어졌다는 설명이다. 2021년 12월~2022년 2월 강수량은 13.3㎜로, 1973년 기상관측 이래 가장 적었다.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작업 중인 노동자들이 벌목한 피해 소나무를 토막 내 약재 처리 뒤 비닐을 덮고 있다. ㄱ산림기술사 제공

매개충 특성 모르고 농약 총동원한 결과

재선충 방제 예산은 대부분 농약을 써서 재선충과 매개충을 죽이는 데 쓰인다. ‘나무(材)에 사는 선충’이란 뜻의 재선충은 이름에 ‘충’(蟲)이 들어가지만 곤충(절지동물류)이 아니다. 사람·동물 몸속의 ‘회충’, 땅속의 ‘선충’ 등과 같은 선형동물류다. 가늘고 긴 형태로 크기는 1㎜ 미만이다.

산림청과 국립산림과학원의 설명에 따르면, 재선충병 방제는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표2 참조) △벌채 뒤 훈증·파쇄·소각을 중심으로 △나무주사를 놓거나 △항공·지상 농약을 살포한다. 각 매개충의 생활주기에 맞춰 방제가 진행된다. ①4월 번데기 상태인 매개충의 배 쪽 숨구멍에 재선충 1만 마리가량이 모여드는 것이 시작이다. ②5월 매개충이 어른벌레(성충)가 되면 새로운 가지를 갉아먹는다. ③이때 재선충이 소나무류로 침투해 물질이동 통로를 막고 해당 소나무류는 석 달 만에 완전히 말라 죽는다. ④10월 매개충이 이렇게 죽은 고사목 속에 알을 까고 애벌레 상태로 겨울을 난다.

방제는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북방수염하늘소가 알·애벌레·번데기 상태로 나무 속에 머무는 겨울에 집중된다.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감염목과 그 주변 나무들을 베어낸다. 베어낸 나무의 절반 이상은 훈증 처리된다.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나무에 구멍을 뚫어 주사를 놓는 나무주사 방제가 이뤄진다. 사용된 농약(아바멕틴 등)의 약효가 2년 넘게 소나무에 잔류하는데, 봄에 어른벌레가 된 매개충이 새로운 가지를 먹고 죽기도 한다. 또 5~8월 땅과 하늘에서 농약(티아클로프리드 등)을 뿌린다. 나무주사 농약은 재선충의 신경을 둔하게 해서, 뿌리는 농약은 재선충의 신경을 예민하게 해서 죽이는 방식이다.

2005년 소나무재선충병 방제특별법이 제정된 이래 정부는 매년 이렇게 여러 종류의 농약을 총동원해 대응했지만, 그 결과는 ‘한마디로 대실패’라는 평가가 나온다. 2015년엔 ‘2017년 소나무재선충 완전 박멸’을 목표로 밝혔으나, 당시에도 재선충의 특성을 간과한 목표라는 지적이 나왔다. 재선충은 한 세대 간격이 짧아, 단 한 마리만 살아남아도 20일이 지나면 20만 마리로 증식된다. 재선충은 결국 우리나라 최북단까지 북상했다. 2017~2022년 피해면적(반출 금지 지역)은 277만3천㏊에서 368만3천㏊로, 피해 시·군·구는 115곳에서 137곳으로 늘었다. 2022년엔 아예 방제 목표를 ‘2030년 재선충병 피해목 10만 그루 이하로 관리’로 수정했다.

우리가 베낀 일본은 선별 방제로 전환

2023년 ‘재선충 재유행’ 조짐까지 보인다. 34년간 국비 7821억여원을 투입하고, 소나무·잣나무 1392만4319그루를 베어낸 결과다. 최근엔 소나무재선충 방제에 쓰인 농약이 꿀벌 같은 곤충이나 곤충을 잡아먹는 조류를 비롯한 다른 동식물, 토양, 하천 등 생태계 전반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약을 공중에서 뿌리면 솔수염하늘소 말고도 모든 곤충, 그리고 다른 ‘비표적 생물’에게 영향을 줍니다. 나무주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지 끝으로 올라간 농약을 (솔수염)하늘소만 먹는다는 법은 없어요. 그게 생태계에서 어떻게 돌아다니는지, 어떤 부정적 영향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산림청도 예산이 많지 않다보니 (생태계 영향) 연구가 되지 않고 있어요.”

정종국 강원대 교수(산림환경보호학)의 설명이다. 그는 “실험해보니 (지상·항공 살포) 살충제를 맞는 매개충은 죽긴 하지만 농약 잔류량에 따라 서서히 중독돼 죽고, 그 기간 재선충을 감염시킨다”며 “나무주사도 재선충이 들어오면 증식을 못하게 하는 게 목적인데, 그러려면 2년마다 주사를 놓아야 한다. 비용도 문제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또 나무주사라는 게 (구멍을 뚫어 주사를 놓다보니) 상처가 완전히 낫는 게 아니고 맞은 부위는 죽은 조직이 된다. 반복적으로 하면 나무한테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제주도 등 전국에서 나무주사를 놓은 소나무 조직이 괴사하는 현상이 관찰됐다. 제주도 관계자는 “그런 문제 때문에 목재로 사용할 소나무에는 나무주사를 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교적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진 ‘훈증 방제’ 역시 인근 지역 재선충병 발병률을 높이는 이른바 ‘풍선효과’를 불러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산림과학원 연구진이 참여해 2010년 국외 학술지()에 실린 ‘예방적 산림통제를 통한 소나무재선충 관리’ 논문을 보면 2002년 전남 목포에서 훈증 처리한 이후 피해목이 895그루에서 이듬해 372그루로 줄었지만, 비슷한 시기 똑같이 훈증 처리한 전남 신안의 피해목은 오히려 늘어났다. 산림기술자 ㄴ씨는 “훈증 처리에서 감염목을 모두 수거해서 밀봉하는 것이 핵심인데, 작업 여건상 잔가지를 100% 수거하는 건 불가능하다. 또 자갈 지대 등 지형에 따라 완벽한 밀봉이 힘든 경우도 있다. 산짐승 등이 비닐을 훼손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나라 재선충병 방제 기술이 ‘방제에 실패한’ 일본에서 도입됐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사단법인 한국산림기술사협회가 2017년 펴낸 ‘일본의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기술’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1972년 재선충을 처음 확인한 일본도 100% 방제를 목표로 1977년 소나무재선충 특별조치법을 만들었고 △훈증 △나무주사 △약재 살포 등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이런 농약 의존 방제는 일본에서도 20년 만에 실패로 끝났다. 일본은 1997년 이 법을 폐지하고 보존 가치가 있는 유적지 등의 중요 소나무류만 방제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천연림에 반복·주기적 농약 살포, 한국뿐

재선충병 방제 현장을 모니터링하는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산림청이 30여 년간 재선충, 매개충에 대한 제대로 된 기초 데이터조차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며 “일본 방제법 베끼기에만 치중했다. 재선충병 확산이 어떻게 하다가 이 지경이 됐는지, 그동안 산림청은 어떤 연구를 했는지 등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방제를 할지 말지부터 다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지상·항공 방제에 사용되는 네오니코티노이드 계통 농약(티아클로프리드 등)의 누적 사용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네오니코티노이드는 꿀벌 등 수분 매개 동물에게 치명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확인돼 유럽·미국 등은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21~2022년 겨울 꿀벌 80억 마리(전국 양봉 농가 꿀벌의 15%)가 떼죽음당한 사실이 확인된 데 이어, 2022년 11월 전북 부안 등에서 꿀벌 집단 폐사 조짐이 관측된다. 산림청 자료를 보면 지난 5년 동안 산림청이 티아클로프리드를 뿌린 숲 면적은 376.98㎢로 서울 면적(605.24㎢)의 62.3%에 이른다.

이 때문에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2023년 산림청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도 무차별 농약 항공 살포가 논란이 됐다. 윤미향 의원은 산림청 예산소위에서 산림청장에게 “공중에서 무분별하게 살포하는 항공방제를 중단하고, 항공방제 금지 계획을 세울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산림청은 “티아클로프리드는 농촌진흥청에 등록돼 농경지에서도 사용되는 저독성 농약”이라며 2023년에도 항공방제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농촌진흥청은 “꿀벌 폐사는 농약이 아닌 기후변화 탓”이라고 밝힌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연구기관의 연구원 ㄷ씨는 “산림청 입장에선 전체 산림의 24%가량 되는 소나무 16억 그루를 살리려면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농약을 농경지에 사용하는 건 생태계 영향이 제한적이지만 숲, 특히 천연림에까지 사용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며 “천연림에 농약을 반복적·주기적으로 뿌리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는 거로 안다”고 말했다. 제주에서 농업회사 법인을 운영하는 이종우 대표(생물학 박사)는 2013년 10월 독일 브라운슈바이크에서 열린 재선충병 콘퍼런스에 참여한 경험을 들려줬다. “자유토론 때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쓰이는 항공방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더니, 중국·일본·포르투갈 등 국외 연구자들이 ‘화학약품 항공방제는 생태계 파괴 문제 때문에 (자기 나라에선) 고려하지 않는 옵션이라고 말해 당황했다.”

산림청 “친환경 방제법 전면 도입 어려워”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전문위원은 “재선충병 방제를 위해 뿌린 엄청난 양의 살충제가 그간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산림청은 무지하고 무책임하다. 네오니코티노이드 살충제는 특히 영유아와 어린이 등 사람의 건강에도 심각한 위협을 준다는 주장이 최근 국제학술지에 발표됐다”고 말했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는 재선충병 방제 행정을 “악순환의 연속”이라며 “소나무재선충을 죽인다면서 사실은 재선충은 못 잡고 애먼 다른 곤충들만 죽였다. 결국 숲의 시스템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림청이 1998년부터 매년 실시하는 ‘숲 가꾸기 사업’이 재선충 확산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꼽았다. “숲이 온도가 낮은 건 나무가 증산작용으로 잎에서 수분을 증발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숲을 가꾼다면서 가지치기하고 솎아베기하면서 잎을 줄이고 길을 낸다. 숲의 온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바람도 잘 통하게 된다. 솔수염하늘소와 북방수염하늘소는 바람을 타고 더 멀리 날아간다. 산림청이 한쪽에선 재선충병 막는다고 하고, 다른 쪽에선 재선충병이 퍼지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있다.”

이현주 산림청 산림병해충방제과장은 “그간 산림과학원에서도 친환경방제법을 연구했지만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확인돼 전면 도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화학적 방제에 일부 모니터링은 하고 있지만 조금 더 세밀한 생태계 영향성 연구 추진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산림기술사 ㄱ씨는 “농약은 나중에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 위험한 방법이다. 페로몬 트랩이든 천적 이용이든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동=글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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