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의기술](91) “왕릉뷰 아파트, 문화재 경관 해치지 않아”… 현장 검증으로 건설사 승소 이끈 법무법인 광장

홍다영 기자 2022. 12. 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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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보호 vs 재산권 둘러싼 소송
문화재청 “건설사가 심의 절차 어겨”
건설사 “아파트 철거하면 피해 막심”

경기 김포 장릉(章陵)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유적지다. 조선 선조의 다섯째 아들이자 인조의 아버지인 추존왕 원종(1580~1619)의 무덤으로 파주의 인조 장릉(長陵), 계양산과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경관이 특징이다.

지난해 7월, 장릉은 뜻밖의 이유로 유명세를 얻게 됐다. 인근에 위치한 인천 서구 검단 신도시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며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문화재청은 봉분에서 바라보는 계양산 경관을 고층 아파트가 가릴 수 있다며 공사 중지를 명령하는 한편 건설사들과 서구청을 고발했다. 건설사들이 미리 심의를 받지 않아 문화재보호법을 위반했다는 게 문화재청의 주장이었다.

반면 건설사들은 아파트가 철거되면 수분양자들의 입주가 불가능해지고 건설사가 분양금 및 손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하는 등 피해가 생길 수 있다며, 문화재청을 상대로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문화재 보호와 입주민 재산권을 둘러싼 초유의 소송에서 재판부는 건설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아파트를 철거해서 얻을 이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건설사들은 어떻게 재판부를 설득했을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김포 장릉’능침구역에서 바라본 전경. 탁 트여야 할 전망 대신 공사 중인 고층 아파트 단지가 삐죽 솟아 있다. /조선DB

◇ 왕릉뷰 아파트 둘러싼 건설사 vs 문화재청 소송, 1심서 건설사 승소

문화재보호법 35조는 국가 지정 문화재의 경관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건축물을 설치하는 등 문화재 보존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려면 미리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2017년 개정된 시행령에 따르면, 문화재 보존 지역 반경 500m 안에 높이 20m 이상의 건축물을 짓기 위해선 문화재청의 개별 심의를 거쳐야 한다.

문화재청이 작년 7월 건설사들에 ‘왕릉뷰’ 아파트 공사 중지를 명령했던 근거도 문화재보호법이었다. 건설사들이 김포 장릉 반경 500m 안 인접 지역에 높이 20m 이상의 아파트를 지으면서 사전 심의를 받지 않아 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대광이엔씨와 제이에스글로벌은 이에 불복해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는 한편 공사 중지 명령 처분 취소 소송도 냈다. 건설사들은 아파트 용지를 자신들에게 매각한 인천도시공사가 이미 2014년 김포시로부터 택지 개발을 위한 문화재 현상 변경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문화재 현상 변경 허가는 건설 공사 등이 문화재의 현재 상태를 변경하는 경우 문화재청이나 지자체로부터 받는 허가를 말한다.

올해 7월, 1심 재판부(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는 건설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왕릉뷰 아파트가 문화재의 경관을 중대하게 해쳤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아파트를 철거하더라도 다른 아파트들이 여전히 계양산을 가린다는 점에 주목했다. 선릉, 정릉 등 다른 왕릉들을 둘러싼 경관도 고층 아파트에 가려져 있다는 점 역시 재판부의 결정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아파트가 위치한 지역이 역사 문화 환경 보존 지역에 포함되거나 (사전 심의) 의무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파트 골조가 완성된 상태에서 (공사 중지 명령) 처분이 있었다”며 “철거로 인한 이익은 거의 없고 침해는 막대해, 비례 원칙에 비춰 사건 처분은 재량권 남용”이라고 판단했다. 비례의 원칙은 공익을 위해 개인의 기본권을 어쩔 수 없이 제한하더라도 적절한 방법으로 최소한의 부분만 침해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아파트 건설에 함께 참여한 대방건설도 문화재청을 상대로 같은 소송을 제기했고, 올해 8월 1심에서 승소했다. 이에 문화재청 측은 항소했으며, 사건은 2심으로 넘어간 상태다. 문화재청은 아파트가 문화재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다는 부분에 대해 상급심의 판단을 다시 받을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왼쪽부터) 유재성·윤성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광장

◇ “아파트 철거하더라도 경관에 별 영향 못 미쳐” 현장 검증으로 밝혀내

이번 사건의 쟁점 중 하나는 문화재보호법이 정한 ‘역사 문화 환경 보존 지역’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였다. 문화재보호법 35조와 시행령 등은 문화재 보존 지역 반경 500m 안에 높이 20m 이상의 건축물을 지으려면 사전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며, 문화재청이 내세운 근거 역시 이 조항이었다.

그러나 1심 재판에서 대광이엔씨를 대리한 법무법인 광장의 정영훈(사법연수원 20기)·이인형(20기)·유재성(37기)·윤성휘(39기)·전소영(변호사시험 9회) 변호사는 문화재보호법 13조에 주목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지자체는 문화재청과 협의해 역사 문화 환경 보존 지역을 조례로 정할 수 있다. 장릉이 위치한 경기도의 문화재 보호 조례 5조는 주거·상업·공업 지역 안에서 국가 지정 문화재나 세계 유산 외곽 경계로부터 200m 이내에 있는 곳을 역사 문화 환경 보존 지역으로 정의한다.

법무법인 광장은 해당 아파트가 김포 장릉 외곽 경계에서 450m 떨어진 곳에 있으므로 경기도 문화재 보호 조례에 따라 역사 문화 환경 보존 지역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문화재청을 대리한 쪽에서는 장릉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맞섰으나, 1심 재판부는 대광이엔씨의 아파트가 역사 문화 환경 보존 지역에 들어간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광장 변호인단은 지난 5월 재판부·문화재청 관계자 등과 함께 현장 검증에도 나섰다. 김포 장릉과 아파트 옥상 등에 올라가본 뒤, 아파트를 철거하더라도 계양산 경관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점을 입증해낸 것이다. 아파트가 경관에 미칠 영향보다는 철거로 인해 입주민과 건설사가 입게 될 피해가 더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 변호사는 “문화재 보호와 사유 재산권의 조화가 중요했다”며 “해당 아파트를 철거하더라도 뒤에 고층 건물이 있기 때문에 계양산 경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재판부에 설명했다”고 했다.

윤 변호사는 “이미 상당 부분 올라온 아파트를 철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더러, 사유 재산권 행사에 피해가 예상됐다”며 “건설사가 입주자에게 분양금과 손해 배상금 등을 지급해야 하며 철거 비용까지 감안하면 피해가 막대하다는 의견을 재판부에 냈다”고 설명했다.

유 변호사는 “시공사와 많은 주민들이 무사히 입주한 것으로 보이는 게 이번 1심 승소의 가장 큰 소득”이라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문화재 보호와 지역 주민, 토지주의 이해 관계가 잘 조성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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