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조 기업이 ‘가업’?…시대 역행에 자가당착
가업상속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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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들어 첫 세제개편 방안인 올해 세법개정안이 법정 심사 기한을 넘겼다. 세법개정안은 정부의 다음해 수입을 결정하는 예산안 부수 법안이라 국회 상임위원회(기획재정위원회) 심사를 11월30일까지 마치고 본회의에 부의하도록 국회법에 정해져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과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기재위 조세소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두고 오랫동안 대치를 벌인 탓에 일정이 늦어졌다. 상임위 심사 기한을 9일 앞둔 11월21일에야 첫 회의를 열었을 정도다. 여야가 심사 기한을 지키지 못한 데 따라 김진표 국회의장은 법인세법·소득세법 등 정부 제출 세법개정안 등 25건을 본회의에 부의하고 교섭단체 간 협의를 이어가도록 했다. 올해 세법개정안은 세제의 골격을 크게 바꾸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여야 간 합의를 이루기 쉽지 않아 보인다.
시대 역주행하는 ‘부자 감세’
여야 협의 과정에서 마찰음을 일으킨 쟁점 법안 중 하나는 정부의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다. 가업상속공제 대상 기업의 연 매출 기준을 현행 4천억원에서 1조원으로 대폭 높이는 내용을 뼈대로 삼고 있다. 금융투자소득세 부과를 미루고(소득세법), 다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중과를 폐지하며(종합부동산세법),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내리는(법인세법) 개정안과 함께 이른바 ‘부자 감세’로 꼽히며 윤석열 정부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내용이다.
가업상속공제 대상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은 특히 단순한 부자 감세를 넘어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데다 자가당착이라 할 수밖에 없다. 작은 소기업에나 어울릴 법한 ‘가업’이란 개념을 대기업급 중견기업에 해당하는 매출 1조원 업체에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합당하지 않다. 또 우리 사회 내 불평등 확대의 주요인으로 꼽히는 자산 격차를 더 벌리는 방향이라는 문제점도 작지 않다. 올해 재계 인사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나고 있는 ‘부와 자리의 대물림’을 조장할 내용이다. 더욱이 개정안은 공제 혜택을 받는 조건으로 내거는 고용 유지 기간을 7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가업을 물려받아 대대손손 이어가며 가문의 비법과 일자리를 이어가도록 한다는 취지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게 턱없이 짧은 기간이라 자기모순적이라는 비판을 피해 가기 어렵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을 지낸 김유찬 홍익대 교수에 따르면,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독일에서 먼저 도입됐다. 그게 1997년의 일이었다. 한국도 독일을 따라 그해에 도입했다. 중소기업의 가업승계에 따른 세 부담을 줄여 가업을 쉽게 승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는 취지를 담았다. 현행 기준에선 피상속인(물려주는 사람)이 지분 50%(상장 30%)를 10년 이상 계속 보유하고 일정 기간 대표이사로 재직하는 따위의 요건을 채우면 혜택을 받는다.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도입 뒤 20년 남짓 흐르는 동안 대상과 혜택을 줄곧 늘리는 쪽으로 변했다. 애초엔 중소기업에만 적용하던 것을 2011년부터는 연 매출 1500억원 이하 중견기업으로 대상을 넓혔고, 매출액 기준은 2013년 2천억원, 2014년 3천억원, 2022년 4천억원으로 높아졌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는 현행 개정안대로라면 한해 만에 2.5배로 확대되는 셈이다. 세법 개정 역사에 비춰 이례적으로 빠른 걸음이다.
김유찬 교수는 “가업상속공제는 매우 예외적인 제도로, 보편적이지 않으며 독일, 일본 같은 일부 나라들에서 도입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가족 단위로 영위하는 소규모 기업의 고용 유지를 뒷받침한다는 사회적 필요성을 고려해 조세 공평성이라는 보편적 원칙을 훼손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업을 이어가는 전통이 강한 곳은 독일, 일본 정도다. 특히 일본에선 양조장 같은 직종을 한 집안에서 몇백년씩 이어가는 사례가 흔하다. 우리와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선 가업 상속을 잘 안 하려고 하는 분위기 아니냐.” 김 교수는 “기업 규모가 커지면 이해관계자가 많아지고 경영에서 전문성이 필요해 가족 위주의 가업으로 이어갈 수 없게 된다”며 매출 기준을 오히려 줄여가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쪽은 정부의 개정안에 대한 당론을 정하지는 않은 상태이나 지나친 확대라며 부정적인 뜻을 비치고 있다. 정부가 내년으로 예고해놓은 상속·증여세법 대폭 개편 때까지 미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가업상속공제 제도에 대해 독일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 또한 이 제도가 매우 예외적임을 보여준다. 독일 헌재는 2014년 12월 기존의 가업상속공제 제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이 판정의 취지에 따라 독일 정부는 2016년 새로운 법안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기업이 가진 자산 중 임대 부동산, 유가증권 등 비사업용 자산은 공제 대상에서 모두 제외한 게 여기서 비롯됐다.
상속·증여세 피하는 수단으로
국내 제도에선 이런 구분이 없는 터에 공제 폭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여기서 더 넓히는 쪽으로 방향을 맞추고 있는 것은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 움직임이랄 수밖에 없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에 따르면, 중소·중견기업주가 가업에 해당하는 기업을 물려주면 상속 재산 액수에서 최대 500억원을 공제하게 돼 있다. 1천억원 가치의 기업을 상속하면 최대 500억원을 공제한 나머지 500억원에 대해서만 상속세를 매긴다는 뜻이다. 정부는 이 공제 폭마저 부족하다며 두배 수준인 1천억원으로 높이는 내용을 이번 세법개정안에 담아놓았다. 공제 한도는 2007년까지 최대 1억원에 지나지 않았던 터였다.
정부의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에는 이보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들어 있다. 사후관리 기간을 현행 7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내용으로, 이거야말로 가업상속공제의 취지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여기서 사후관리는 세제 혜택을 주는 대신 고용을 일정 기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감시하는 장치다. 지금은 ‘7년 통산 정규직 근로자 수 100% 이상 또는 총급여액 100% 이상’으로 돼 있는데 이를 ‘5년 통산 90%’로 바꾸겠다는 게 정부 방안이다. ‘매년 정규직 근로자 수 80% 이상 또는 총급여액 80% 이상’ 기준은 아예 삭제하게 돼 있다. ‘수십년 쌓은 경영 비법을 이어가기 위해 원활한 가업승계가 필요하다’는 식의 논리가 무색하다. 사후관리 5년과, 대를 잇는 가업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 ‘가업은 사라지고 공제만 남는다’고 할 정도다. 가업상속공제 확대는 결국 겉으로 내건 명분과 달리 상속·증여세를 피해 가는 샛길을 내려는 속셈인 것 같다.
경제산업부 선임기자 kimyb@hani.co.kr
경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친 뒤 산업 현장 취재를 맡고 있다. <민스키의 눈으로 본 금융위기의 기원> <휴버먼의 자본론> <무엇이 우리를 무능하게 만드는가> <관료제 유토피아> 등을 번역해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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