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헤비니스 사운드의 궁극, 도그 라스트 페이지 'Drunken Dream'[김성대의 음악노트]

2022. 12. 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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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도 장르도 안중에 없이 그저 "러프한 헤비니스 사운드"를 추구하는 도그 라스트 페이지(DLP)의 정규작은 2015년 미니 앨범과 지난해 싱글로 선보인 곡들을 거의 다 포함해 세상에 공개됐다. 그러니 신곡만으론 또 하나의 미니 앨범에 가까운 모양새였겠지만 더 조이고 다진 기존 곡들의 퀄리티를 감안하면 'Drunken Dream'을 온전한 정규작으로 인정하지 못할 이유도 딱히 없어 보인다.

기본적으로 장르 구분을 지양하는 팀이긴 해도 7년 전 이들은 자신들 음악을 "서던&그런지 메탈"이라 느슨하게 규정한 바 있다. 실제 이 밴드의 음악엔 하드코어, 그런지, 슬러지 메탈 성향이 고루 녹아 있는데 이는 멜빈스와 사운드가든, 매드볼과 바이오해저드, 크로우바와 다운(Down), 그리고 얼큰한 블랙 라벨 소사이어티를 한 앨범에서 들을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러니까 DLP는 블랙 사바스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들과 더불어 자신들도 그런 존재임을 사운드와 스타일로 낱낱이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밴드가 특이한 건 보컬리스트가 두 명(양권모, 한영규)이란 점이다. 록 밴드에서 트윈 기타 시스템은 흔하지만 트윈 보컬 시스템은 드물기에 DLP는 그것만으로도 주목받을 명분을 띤다. 보컬이 두 명이라는 건 무슨 얘긴가. 그건 음악만큼 메시지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뜻이고, 밴드에서 보컬이 갖는 비중과 중요성을 늘 인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주고 받거나 함께 내지르는 스크리밍과 그로울링의 조화를 보라. 곡의 서사에 입체감을 더하고 텍스트의 서사가 소리의 음압을 야무지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그것은 슬레이어의 속도감을 응용한 1분 34초짜리 트랙 '4758'에서 금세 확인된다.

물론 그럼에도 DLP 음악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홍성훈의 기타다. 잘게 쪼개는 솔로보단 덩이진 리프/리듬을 지향하는 그의 연주는 일단 군더더기가 없다. 무슨 말이냐면 헤비니스 음악을 즐길 때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사람들이 헤비 뮤직을 왜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홍성훈의 기타는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루브다. 가령 'Sentence to a Monster (7Monster)'나 판테라의 'The Great Southern Trendkill'처럼 쳐들어오는 'Metal Is Dead'에서 이 팀의 음악적 본론은 똑같이 홍성훈의 기타를 앞세운 들썩이고 덜컹이는 메탈 그루브, 그루브 메탈이라는 얘기다.

수록된 12곡이 모두 그렇다. 취한 꿈과 부서진 꿈은 다르다고 말하는 'Drunken Dream'은 그런 느리고 헤비한 이 앨범의 전반적인 정서를 앞서 전하는 역할을 하는데, 특히 이 곡의 마지막 템포 체인지는 작품의 어느 트랙에서든 예기치 못한 '한 방'이 있으리라는 걸 암시하고 있다. 그 한 방을 대표하는 'We Are Alive'는 1분 28초부터 메탈리카 풍 리프를 꺼내들며 대체로 전투적이고 풍자적인 앨범 전체의 성향을 담보한다. 모든 록 밴드가 사회와 정치를 다룰 필요는 없지만 이 밴드 만큼은 둘 다를 어우르는 셈이다. 이를 위해 가사에는 직설도 있고 은유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 본질은 분노와 행동이다. 영화 '스타워즈'의 유명한 대사를 제목에 쓴 'Do or Do Not There is No Try(하느냐 마느냐만 있을 뿐, 해보는 건 없다)'는 때문에 어떤 면에서 DLP의 음악적 강령처럼도 느껴진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Dog Day Afternoon'은 그 강령의 핵심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꿈틀거리는 근육질 메인 리프가 그 자체 미로로 펼쳐지는 이 곡은 스탠리 큐브릭이 좋아했고 봉준호가 리메이크 하고 싶다 밝힌 시드니 루멧의 걸작 '뜨거운 오후'를 다룬 것으로, 시종 혼란과 절망으로 무장한 가사는 에누리 없이 알 파치노가 열연한 주인공 소니의 불안한 심리에 다가가 있다. 해당 영화를 아는 이들에겐 더 구체적인 감정(감동)을 불러일으킬 트랙이다.

리더 홍성훈의 말에 따르면 이번 앨범은 술기운을 빌려 작업한 것이라고 한다. 즉 그가 리프로 판을 깔면 보컬 두 명이 말(lyrics)로써 칼춤을 추고, 정가현(베이스)과 김홍기(드럼)는 저 세 명의 흐드러진 합이 매듭을 풀지 않도록 든든하고 튼튼한 플레이를 펼치는 식이다. 역시 과음은 음악이 길을 잃게 만들지만 적당한 취기는 이렇듯 음악에 흥을 더하는 터라 나는 밴드의 녹음 전 음주가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8분 가까이 처절하게 자멸하는 마지막 곡 'Falling Down'을 들어보라. 'Killing Machine'과 'Face Yourself' 같은 트랙도 물론이다.

'Drunken Dream'은 DLP가 등장한 2015년에 'Irreversible'을 발표한 블랙 메디신 이후 가장 잘 뽑아낸 국내 슬러지(Sludge Metal) 계열의 헤비 유전자다.

*이 글은 본사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마이데일리 고정필진
웹진 음악취향y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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