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탈세계화 韓 악재⋯무역장벽 넘으려면 기술력 키워야”

김우영 기자 2022. 12. 1.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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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조선] 탈세계화 시대,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이효영 국립외교원 경제통상개발연구부 부교수 인터뷰

지난 몇년간 ‘탈세계화(deglobalization)’는 국제사회가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 이슈 중 하나였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강도 높은 방역 조치 때문에 자유로운 이동에 제약이 생겼다. 전례 없는 공급망 혼란이 채 회복되기도 전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물류난까지 겹쳤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이 패권 경쟁을 계속하면서 세계는 갈수록 파편화되는 양상이다.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된 이후 세계는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탈세계화는 새로운 시대의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기준)로 자리잡을까. [편집자 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11일 14일(현지시각)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전 세계 경제가 긴밀하게 연결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때부터였다. 관세가 인하되고 각종 비관세 장벽이 사라지면서 국가 간 교역과 투자가 급성장했다. 다국적 기업들이 생산 비용이 저렴한 중국과 동남아에 공장을 지으면서 글로벌 가치사슬(GVC)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 같은 글로벌 공급망의 확산이 세계화를 주도했다는 게 통상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세계화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평균 7~8%였던 세계 무역 성장률은 금융위기 이후 2~3%대로 추락했고, 세계 경제까지 휘청이면서 보호무역주의가 전 세계에 확산했다. 탈세계화의 씨앗이 심어진 것이다.

국제 통상 전문가인 이효영 국립외교원 부교수<<b>사진>는 최근 인터뷰에서 미·중 패권 경쟁이 세계 경제의 진영화·블록화 현상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탈세계화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대외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악재”라며 “한국이 기술 경쟁력을 키워 각국의 높아지는 무역 장벽을 뛰어넘어야 탈세계화 흐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미국이 ‘경제 안보’를 꺼내 들며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다. 그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나.

“미국의 경제 안보 개념은 보호무역주의적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명분이라고 본다. 2018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가 안보전략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경제 안보는 국가안보다’라는 문구를 처음으로 넣었다. 이는 미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패권 지위가 중국의 부상으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다자 무역 체제 아래에서는 중국을 견제하기가 충분치 않다고 미국이 판단한 것 같다. 이에 새로운 정책 수단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미국이 경제 안보라는 정책적 명분으로 추진하는 세계 경제의 진영화·블록화다. 이것이 탈세계화를 가속화하면서 전 세계의 보호무역주의 기류가 강화될 수 있다. 세계 경제의 연계가 느슨해지면 더 이상 세계 무역의 성장을 통한 경제 성장이 보장되지 않는다.”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동안 다자 무역 체제의 혜택을 본 한국에는 부정적인 요인이 더 많다. 한국은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아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 유럽, 중국 시장의 진입 장벽이 높아지면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은 우방국에 대해서는 투자 유치를 환영하고 있지만, 외국산 수입에 대해서는 보호 무역 장벽을 세우고 있다. 유럽도 역내 공급망 진입 기준을 높이며 보호주의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중국 역시 미·중 갈등으로 내수시장에 대한 진입 장벽을 더욱 높이고 생산 자립화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은 시장 규모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작기 때문에 국가 간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다. 물론 높아진 시장의 진입장벽을 뛰어넘을 수만 있다면 다른 나라의 경쟁 기업을 제치고 수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기준을 충족하려면 기업들의 선제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 또 미국 시장의 경우 현지 투자로 진출 통로를 확보할 수 있지만, 국내 고용 창출로 이어지지 않아 자칫 국내 산업의 공동화 현상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세계 경제의 진영화·블록화 현상은 계속될까.

“그렇다. 미국과 중국 간의 구조적 갈등이 앞으로 더 격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분야 외에도 인공지능(AI) 및 슈퍼컴퓨터, 바이오기술, 철강 분야에서 중국을 공급망에서 완전히 배제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만이나, 중국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의 맞대응도 격화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국과 완전히 다른 길로 가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상태다. 미국과 중국 간 경제 블록화도 심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미국은 한국의 전략적 동맹국이다. 미국이 중국을 ‘유일한 전략적 경쟁자’로 지목했다는 것은 한국에 중국도 경쟁자라는 뜻이다.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국제 정세를 고려할 때, 한국이 유유자적하게 어디를 선택할지 고민할 단계는 이미 지났다.”

―한국이 미국을 따라 탈중국을 하게 되면, 과거 ‘사드 보복’ 때와 같은 후폭풍을 맞지 않을까.

“과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 때와 양상이 다르다.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은 한국 혼자 하는 게 아니다. (한국이 참여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를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다른 국가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주도하거나 추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독자적 보복 조치를 중국이 취하기엔 명분이 없는 상황이다.”

중국 네이멍구의 희토류 광산.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이 희토류와 같은 전략물자의 수출을 통제한다면.

“IPEF 참여국을 대상으로 중국이 희토류와 같은 전략 자원의 수출 통제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있다. 다만 이러한 핵심 광물의 수출 통제 조치는 오히려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핵심 광물 공급망 재편을 더욱 가속화시킬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이럴 경우 경제적 피해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실제 희토류 수출 통제에 나서는 게 고민스러울 것이다.”

―탈세계화에서 세계화로 회귀 될 가능성도 있나.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세계화로 회귀한다는 것은 결국 세계 경제의 연계가 다시 강화된다는 의미인데, 기존 세계 공급망의 허브 국가였던 중국과의 디커플링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세계화의 회귀는 어렵다고 본다. 만약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국가가 나타나 글로벌 공급망 허브 역할을 하며 세계무역 성장을 견인한다면 세계화로 복귀할 수도 있지만, 가능성이 매우 낮다. 결국 세계는 중국·러시아 진영과 서방·아시아 동맹국 진영으로 나뉘어 블록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탈세계화 흐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협상 레버지리(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게 기술 경쟁력을 더 키울 필요가 있다. 정부 차원에서 주요국의 경쟁적인 산업 육성과 지원 정책에 밀리지 않도록 대응해야 한다. 지금은 산업 보조금 규제에 대한 국제 규범의 구속력과 규제가 약해진 상황이다. 한국이 첨단 기술 및 미래 산업 분야를 적극적으로 육성할 기회다. 여기에 일본, 호주 등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한국처럼 악영향을 받는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기업들은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 여건’ 조성을 위해 도입하고 있는 환경 및 노동 기준을 준수할 수 있도록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비용 증가로 한동안 진통의 시간을 겪을 수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으로 인식해야 한다.”

더 많은 기사는 이코노미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

Part 1. 세계화의 종말인가

①탈세계화의 시대가 도래하는가

[Infographic] 탈세계화 기로에 선 지구촌

Part 2. 탈세계화 시대,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②[Interview]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교수

③[Interview] 애덤 포즌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소장

④[Interview] 제프리 프랑켈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

⑤[Interview] 이효영 국립외교원 경제통상개발연구부 부교수

⑥[Interview]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⑦치 로 BNP파리바자산운용 수석 시장 전략가… ‘2022 글로벌 경제·투자포럼’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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