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랑의 노래 교체, '검열로 느낀다'가 아니라 검열 그 자체"

정민경 기자 2022. 11. 29.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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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43주년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식 총연출 강상우 감독
치열한 기획 아래 섭외된 이랑 공연…"부마항쟁 현재 의미 짚으려"
교체될 수 있는 순서 아닌, 이랑 '늑대가 나타났다'여야만 했던 이유
"부마 재단, 재단 존립 의미 스스로 상실한 것 아닌가"

[미디어오늘 정민경 기자]

지난 10월16일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국가기념식'에서 가수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가 공연될 예정이었으나 행정안전부의 '노래 교체' 지시가 있었다. 결국 이랑의 노래는 다른 노래로 교체됐다. 11월21일 JTBC 단독 보도(링크)로 이 사실이 알려지며 국가의 '검열'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누군가는 기념식 공연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혹은 왜 꼭 이랑의 노래여야만 했느냐고 다른 노래로 조율할 수 있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왜 이 노래가 부마항쟁 기념식에 섭외된 것일까. 미디어오늘은 28일 부마항쟁 기념식 총연출을 맡은 강상우 감독의 생각을 들었다. 그와 나눈 이메일과 전화 인터뷰를 정리했다.

치열한 기획 아래 섭외된 공연…“부마항쟁 현재 의미 짚으려”

“사실 '국가 기념식'이라는 포맷 장르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지난 6월30일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으로부터 10월에 열리는 기념식의 총연출직을 제안 받았다. 처음에는 국가기념식이라는 포맷에 대해 잘 알지 못해 못할 것 같다고 고사했다. 그런데 재단 측에서 정부 측, 행안부에서 내용적 지시는 없을 것이라고 재고해달라고 해서 7월4일 총연출직을 승낙했다. 내용적인 부분은 총연출자에게 자유권을 보장한다고 해주셔서 승낙한 것이었다. 이후로는 기념식 연출에 집중했다.

보통 기존 기념식들은 기성세대를 관객으로 한 취향을 반영한 기념식이었다면 이번에는 항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를 주 관객층으로 정했다. 부마항쟁 의미를 동시대적인 방식으로 전달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초기에 재단에서도 굉장히 적극적으로 호응해줬다.

부마항쟁에 대해 공부하면서 지금까지 접하지 못한 항쟁 기록물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1979년 YH무역의 여성 노동자들이 투쟁을 하다가 21세 김경숙씨가 사망한 것이 부마항쟁을 촉발했다. 김경숙씨 일기장이 민주화 운동 사업에 아카이빙돼있기도 했기에 그 당시 어린 여성 노동자가 느꼈던 감정을 일기장을 통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부마항쟁은 항상 '독재 타도' 등 거대한 단어들로만 설명돼왔는데 김경숙씨 일기장 속 세세하면서 소소한 감정, 일상의 순간들도 함께 전달되면 항쟁의 의미가 잘 와닿을 것 같았다.

그 외에도 당시 동일방직 투쟁 참여 후 '삼화 고무' 공장에서 일했던 추송례씨 일기장도 발견했다. 올해 처음 부마민주항쟁재단에 기증된 당시 부산대 1학년 재학생의 일기장도 있었다. 이 자료들을 모아 '교환 일기'라는 꼭지를 짰다. 일기들을 추송례씨 따님, 즉 항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낭독하고 그 타이밍에 가수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 공연이 시작되는 거였다. 구상 이후 가수 이랑을 8월 초 섭외하면서 이 내용을 전달했다. 서로 기획에 대해 협의해나가고 가안 영상을 만들고 피드백까지 주고 받으면서 진행해나갔다.”

▲가수 이랑의 '늑대가 나타났다' 앨범 커버.

'늑대가 나타났다' 여야만 했던 이유

가수 이랑은 지난 11월25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늑대가 나타났다'가 어떤 노래인지 설명했다. 누군가는 '늑대'가 대통령이나 특정 정치인을 비유한 것 아니냐고 오해하지만 '늑대'는 항쟁에 참여한 시민들을 두고 '폭도'라고 부르는 현상을 비유한 것이었다.

이랑은 “이 노래 가사는 일하고 배고프고 예의 바른 시민들이 분노가 차올라 갑자기 집결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람들이 배고프다고 외치는데 그 말을 들은 성 안쪽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늑대가 나타났다'고 이야기한다”고 설명한다.
[관련 기사: MBC 시선집중: 가수 이랑 “부마항쟁기념식 곡 변경 요청, 명백한 검열. 이유도 듣지 못했다”]

강 감독 역시 이런 의미를 담은 노랫말 때문에 이랑 노래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 기획 속에서 이랑님 역시 단순히 행사의 '초대 가수'가 아니라 10대 여성 노동자의 일기장 내용을 파악하고 공연을 준비했다. 젊은 세대들이 부마항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이 노래 말고는 적절한 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2000년 이전에야 서태지나 패닉처럼 대중적이며 저항적인, 항쟁 맥락을 살릴 수 있는 노래가 있었지만 최근 발매된 노래 중에선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2안이 없었다.

이 노래는 당시에 YH무역 노동자들의 상황을 대변해주고, 부마항쟁 당시 경제적 불평등 속에 살았던 시민들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이에 더해 수십년 동안 '폭도'와 같은 낙인들로 고통받은 상황까지 포함한다. 다양한 시대가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979년과 현재 상황까지 담을 수 있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강 감독은 이 노래가 '상록수'나 '아침이슬'과 같은 노래로 대체될 수 없다고 했다. 재단과 계속해서 기념식의 방향을 상의한 이유다.

“'상록수'가 저항가요로 불렸다고 하지만 나한테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민주화 운동 기념식 등에서 자주 부르는 노래들이 나한테는 과거 회고적이었고 특정 세대를 위한 행사라는 느낌을 들게 했다. 이번 기념식에선 특정 세대가 아닌 다양한 관객들을, 특히 젊은 관객들도 이 항쟁 의미를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재단에 초반부터 방향성에 대한 동의를 받으려고 했던 것이다.”

“'검열로 느낀다'가 아닌, '검열 그 자체'” 주장하는 배경은

“9월22일까지만해도 재단에서 '늑대가 나타났다' 공연을 확정했다. 당시에도 '행안부에서 푸쉬(외압)가 있었지만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달받았다. 그런데 공연을 3주 앞두고 노래를 교체하라는 것이다. 노래를 왜 교체하라는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누가 그 요청을 했는지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노래를 교체하라고 한 사람과 소통하고 싶다고, 전화라도 하고 싶다고 했는데 연결되지 않았다. 절차적 단계도 없었고 명령 방식이었다. 부마 재단 분들의 직접 발언에 의하면 '재단의 존립을 위협받는다'고 말씀을 해주셨기 때문에, 나는 이 사건에 대해 '검열로 느낀다'가 아니라 법적으로 검열의 정의 그 자체를 따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강 감독은 이번 사건 후 과거 '예술인 블랙리스트' 사건 변호사 등 관련 사안 전문가 여러 명에게 자문을 받았다.

“여러 명에게 자문을 받았는데 공통적으로 '전형적 검열'이라는 답을 받았다. 답을 받은 후 행안부 측뿐 아니라 재단에도 이런 불법적 지시를 수행하는 것 자체가 불법 행위에 가담하는 것이라 말했다. 검열 지시를 수행하는 순간 재단 역시 검열의 가해 주체가 되고 불법 행위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재단 측은 최종적으로는 검열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고 노래 교체를 결정했다. 나는 기념식에서 노래 교체가 이뤄진다면 총연출 업무를 지속할 수 없다고 했다.”

JTBC 보도 이후 행안부도 '검열'을 부정했다. 행안부 측은 “미래 지향적인 느낌의 기념식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뿐 검열은 없었다”는 입장을 내놨다. 강 감독은 이같은 입장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행안부의 검열 지시를 따른 부마항쟁기념 재단 역시 검열의 주체라고 비판했다.

“우선은 대안으로 거론된 '솔아 솔아 푸른 솔아', '상록수' 노래 보다 '늑대가 나타났다'의 BPM이 훨씬 빠르고 경쾌한 분위기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매우 빠른 노래인데 결국 가사에 대해 개인의 취향으로 밝지 않다고 느낀 것이다. 그저 의견 전달이 아니라 노래를 교체하는 것은 '검열'일 수 밖에 없다. 계속해서 중간 회의를 해온 부마 재단 측도 문제가 없다고 하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서 노래를 제외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측은 행안부가 무색무취의 기념식을 원한다고 밝혔다. 사진출처=JTBC 뉴스.

“부마 재단, 존립 의미 스스로 상실한 것 아닌가”

“또 부마재단에 놀라운 것은, 나와 원래 기획했던 행사들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추가 지출 비용이 든 것 때문에 인건비 지급을 약속대로 줄 수 없다고 한 점이다. 사실 심정적으로는 사건 후 '재단도 힘들 것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검열의 피해자들로부터 인건비까지 깎는다고 한 순간, 명백한 원청으로서의 갑질을 했다고 생각한다. 재단이 정확한 상황 인식을 하지 않고 있다.

재단은 내게 '존립의 위협'을 느낀다고 말했는데 검열 지시를 수행하면서 재단의 존립 의의를 본인들 스스로 상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마항쟁 재단이라면 항쟁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예산을 주는 행안부 지시에 따를 것이 아니다. 재단이나 실무자에 대한 악의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재단 논리 자체가 가해자 입장에 서있다고 말씀드리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박근혜 정부 당시 예술인 블랙리스트 사건과 유사하다는 해석도 있다. 강 감독은 어떻게 생각할까.

“기존의 유사한 사례를 떠나, 절차적 민주주의가 훼손됐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 기획에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제기하는 분이 근거를 갖고 나와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데 (행안부는) 본인들이 나서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그림자처럼 재단을 시켜 나와 가수 이랑의 검열을 이뤄냈다. 우선 '검열'이라는 불법 행위 저질렀다는 것 자체가 처벌과 재발 방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부가 예산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재단이 불법성을 인지하고도 순응하는 상황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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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상우 감독의 영화 '김군' 포스터.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강 감독은 2018년 영화 '김군'으로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영화 '김군'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사진기자 카메라에 담긴 한 무장 시민군의 행방을 좇는 다큐멘터리다. 5·18을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을 반복하는 것이 아닌,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한 인물을 발견하면서 현재 진행형으로 5·18을 바라보는 영화로 평가된다.

강 감독은 2019년 '씨네21'과 인터뷰에서 “5·18을 경험하지 못한 80년대 세대 입장에서는 지금까지의 5·18을 묘사하는 작업들이 감정적으로 울분에 가득 차 있어 마음에 와닿지 않는 측면도 분명 있었던 것 같다”, “5·18을 잘 알지 못하는 세대들이 감정적으로 공명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관련 기사: 씨네21: “'김군' 강상우 감독-5.18에 현재진행형의 의미를 덧입히다”]

이번 '부마항쟁 기념식' 역시 이런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그는 부마항쟁을 잘 모르는 세대도 공감할 수 있도록 지금까지 주목 받지 못했던 인물과 이야기를 조명하는 공연을 기획하고 있었다. 마치 영화를 제작하듯 치열하고 촘촘한 공연 기획 속에 아티스트 '이랑'과 노래 '늑대가 나타났다'는 단순히 '교체될 수 있는 노래'가 아니었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검열'의 이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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