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경제 항산항심] ‘무위의 시대’를 맞이하여

국제신문 2022. 11. 2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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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후 존경하는 박사 한 분이 현 정부를 ‘무위의 정부’라고 꼬집었다. 한자 ‘무위’(無爲)는 도교에서 중요시되는 행동 원리로 ‘일체의 부자연스러운 행위, 인위적인 행위가 없음’을 뜻한다. 자연은 인위적이지 않고 스스로 그러하니 ‘무위자연’이라는 사자 성어가 성립한다. 현 정부를 두고 무위의 정부라 하는 것은, 현 정부는 정책 목표가 있어도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정책 의지가 없다는 것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자유의 가치를 높이 들면 행정도, 경제도, 외교도 자연스럽게 잘 움직일 것이라는 전제 말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가 보이는 태도는 이 정부가 ‘무위’의 정부임을 확인한다.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국정상황실이 참모조직일 뿐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했다. 용산구 구청장은 어떤 책임감을 느끼는가 하는 질문에 ‘마음의 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현실적인 책임은 없다는 취지다. 개인들이 사적으로 모여 진행되던 파티에서 큰 ‘사고’가 일어 난 것에 대해 구청장이 무슨 책임이 있겠느냐는 태도다. 인위적인 개입 의사가 없음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게 있을까?

이것은 안전 관리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 목표는 저성장 극복과 성장-복지 선순환 체계이다. 핵심은 규제 혁파와 법인세 인하를 통한 기업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이다. 정부가 시장에 덜 개입하면 기업 투자가 활성화되고 일자리도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무위의 정부임을 나타내는 징후는 법인세 인하나 규제 완화에 있지 않다. 오히려 정책 목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목표가 실현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데 있다.

법인세를 낮추려면 여소야대 국회에서 제1 야당과 협력해야 한다. 법 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시정연설 과정은 그와 같은 노력을 볼 수 없었다. 제1 야당은 이른바 ‘막말’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위한 국회 방문에서 제1 야당을 지나쳐 버렸다. 국회 의석 2/3 이상을 야당이 장악한 현실에서 대통령이 야당을 대하는 태도는 과연 국정 목표를 실현할 의지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만 했다. 정책 목표도 인위적인 노력 없이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강원 레고랜드 사태를 보자. 지난 9월 28일 김진태 도지사는 자산유동화증권에 대해 지급이 불가하다고 발표했다가 채권시장 교란으로 인해 자칫 국가신용에도 위협을 줄 상황이 연출되었다. 정부가 수습에 나선 것은 10월 23일이다. 그 사이 금융시장은 출렁거렸다. 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 기관이 뒷수습에 나선 건 채권시장 붕괴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흥국생명 신조자본증권 상환 연기 발표도 마찬가지다. 비록 조기 상환을 한다고 번복했지만 자본시장에서의 한국물에 대한 신뢰는 다시 휘청거렸다. 흥국생명 유동성 위기에 대해서도 경보음이 있었지만 금융당국의 대응은 늦었다. 금융시장에서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하기 때문일까?

경제 외교로 가 보자. 윤석열 정부는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전기자동차를 생산하는 한국 기업이 피해를 볼 것인가를 우려한다. 그러나 위 법안들의 핵심적 쟁점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위 법안들이 제기하는 쟁점은 한국의 초국적 기업들인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등으로 하여금 국내 투자와 미국 투자를 대체 관계로 보도록 한다는 점이다. 그 내용에는 WTO 체제 즉 자유무역이라는 규칙을 위반하는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전제되어 있다.

윤석열 정부는 ‘규칙 기반 국제 질서’를 강조한다. 그런데 미국이 주도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법이 자유무역의 규칙 위반을 다툴 여지가 있는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에 대해 침묵한다. 그 결과는 한국 초국적 기업의 투자 입지 선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여지가 있다. 미국과의 동맹이 경제적 손해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그런지 아니면 그 법이 한국 기업의 국내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해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경제를 둘러싼 외교에서도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하면 자연스러운 질서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일까? 두고 볼 일이다.

남종석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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