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나 "조용필,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매 순간 가왕이었다"

이태수 2022. 11.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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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신곡 2곡 작사…"노래 재미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해"
"풀발성 연습·단어 하나 중시…다큐 찍으면 후배들 귀감될듯"
조용필 [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조용필 선생님은 정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매 순간이 가왕(歌王)이었습니다."

스타 작사가 김이나는 20일 연합뉴스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신인 가수도 무언가를 할 때 이렇게 꼼꼼히 연습과 확인을 거듭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조용필과의 작업 소감을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 음절 혹은 비트 한 마디 정도는 요령껏 부를 수 있을 텐데도 가장 완벽히 낼 수 있는 발음을 최선을 다해 찾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며 "더 좋은 결과물을 찾고 또 찾는 게 에너지 소진이 매우 큰 일인데도 끝까지 놓지 않았다"고 혀를 내둘렀다.

김이나는 조용필이 9년 만에 내놓은 신곡 '찰나'와 '세렝게티처럼' 두 곡을 모두 작사했다. 2013년 정규 19집 수록곡 '걷고 싶다'로 가왕과 인연을 맺은 그는 이번에는 단순히 노랫말만 제공한 것을 넘어 음악 작업을 곁에서 유심히 지켜봤다.

김이나는 "솔직히 연차가 5년만 쌓여도 그 정도로 연습은 잘 안 한다"며 "그런데 조용필은 신보를 준비 중이어선지는 몰라도 연습할 때마다 풀(Full) 발성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불렀다. 그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만든다면 후배 가수들에게 큰 메시지가 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감탄했다.

'찰나'는 상대로 인해 미묘하게 변하는 나의 마음을 세밀하게 그려낸 팝 록 장르 곡이다. '세렝게티처럼'은 광활한 탄자니아 세렝게티 평원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노래로 포부를 가지고 꿈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제가 가사를 드리면 조용필 선생님은 손으로 노트에 그걸 일일이 적어 집에 가져가셨어요. 집에서 가사를 자신만의 언어로 만들고, '이 맥락에서는 다른 단어를 쓰면 어떨까'라고 말씀하셨죠. 한 번도 '고치라'고는 하지 않으셨어요."

김이나는 "조용필은 글씨도 너무 예쁘게 썼다"며 "가사를 고칠 때는 지우개로 지우는데, 그 지우개 가루를 빨아들이는 작은 청소기까지 책상에 있더라"고 그의 꼼꼼함을 엿보게 하는 일화도 전했다.

김이나 작사가 [미스틱스토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찰나'는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유쾌하고 트렌디한 멜로디가 귀를 잡아끈다. 조용필도 신곡이 무겁게 들리기를 원치 않았다고 한다.

김이나는 "조용필이 '곡이 재미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해서 (작사에) 용기를 냈다"며 "정 안 되면 수정하면 된다는 마인드로 가사를 썼다"고 기억했다.

'재미없기로 소문났었던 내가 /썰렁한 말에 /실없이 웃고 많이 들뜨네'라는 부분은 조용필의 평소 진중한 모습에 익숙한 팬이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질 구절이다. 조용필이 설렘에 마음이 흔들린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며 지은 가사라고 했다.

그는 "조용필이 설렘을 느낀다면 그 주변에서 묘하게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실제로 평소에 시답지 않은 농담에 잘 웃지 않는 분 아니냐. 그런데 실없이 크게 웃는다면 '무슨 이유가 있나' 하고 주변에서 그 기분 좋은 미세한 변화를 감지할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용필이 이 노래를 부를 때 듣는 사람들이 저절로 '오빠!'라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들고 싶었다"며 "감정 하나로 가슴이 뜨거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노래 가사 중 '흐트러진 너'와 '허튼 마음'이란 부분은 선생님께서 표현이 괜찮을지 걱정하셨지만 제가 끝까지 관철했죠."

조용필, 18일 9년 만에 신보 발표 (서울=연합뉴스) '가왕' 조용필이 18일 오후 6시 9년 만의 신보인 싱글 '로드 투 트웬티 - 프렐류드 원'(Road to 20-Prelude 1)을 발표한다고 소속사 YPC가 밝혔다. 사진은 조용필 신보 '로드 투 트웬티 - 프렐류드 원' 이미지. 2022.11.18 [YPC·유니버설뮤직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조용필은 '세렝게티처럼'을 통해선 "사람들이 용기와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노래 가사에는 '두려움 없이 세상을 크게 보아라'라는 통 큰 메시지가 담겼다. 1999년 조용필이 세렝게티를 찾았을 때 느꼈던 감정이 이러했으리라는 게 김이나의 생각이었다.

김이나는 "조용필이 세렝게티 방문을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품고 있는 것 같았다"며 "초원을 바라본 것이 엄청난 기억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찰나'가 클로즈업 샷이라면 '세렝게티처럼'은 풀 샷 느낌을 내고 싶었다"며 "하나는 미시적이고 하나는 거시적인 이야기로 대비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두 곡 모두 키워드는 '변화'"라고 짚었다.

김이나는 "조용필이 두 곡 모두에서 발음과 소리 역할을 엄청나게 중시했다"며 "노래할 때 힘을 잘 받을 수 있는 단어, 청자들이 귀로 잘 들을 수 있는 단어를 쓰기 위해 꼼꼼하게 챙겼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조용필은 두 신곡에서 변함없이 단단하고 옹골찬 발성과 발음을 들려줬다. 우리말에서 흔히 쓰이지 않는 '세렝게티'의 '티' 발음도 허투루 하지 않고 단단히 낸 게 대표적이다.

김이나는 약 20년간 가요계에서 숱한 히트곡의 노랫말을 쓰면서 가요계 '넘버원 작사가'로 활동 중이다. 이런 그에게도 조용필과의 작업은 새롭고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 두 곡은 마치 내게 훈장 같은 것"이라며 "작사가로는 이보다 더한 영광이 없다"고 말했다.

"저도 솔직히 이제는 어느 정도 요령이 많이 생겼을 수밖에 없는데, 선생님은 제 초심을 찾게 해 주셨어요. 요령이 생기면 음악을 오래 할 수 없겠다고 선생님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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