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다고 집 사겠어요?”…당국 규제 푸는 ‘당근’에도 시장 요지부동
고금리·DSR 규제에 실효성은 제한적
거래 실종·자금 경색에 주택공급 불안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여전한 데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8%대에 육박해 돈을 빌리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정부만 모르는 것 같다는 냉소적인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일부 주택에서는 공시가격이 오히려 시세보다 높아져 세 부담을 키우는 ‘공시가 역전’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 10일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규제지역 내에서 무주택자와 1주택자(처분조건부)에게 주택가격별로 20~50%로 차등 적용된 LTV를 다음 달 1일부터 50%로 일원화하기로 했다.
이번 규제 완화 전까지 9억원 짜리 아파트를 구입할 때 최대 주택담보대출 가능액은 40%에 해당하는 3억6000만원가량이었고 DSR 40% 규제로 대출이 가능한 최소 연소득은 5300만원이었다. 이는 금리 5.0%, 30년 만기 원리금 균등 상환 방식에 기초해 산정한 결과다.
하지만, 이번 규제 완화로 같은 조건의 최대 주택담보대출 가능액은 최대 4억5000만원으로 9000만원 늘어난다. DSR 규제에 따라 같은 조건에서 대출이 가능한 최소 연소득은 기존보다 1300만원 늘어난 6600만원이다.
투기·투기과열지구 내 15억원 초과 아파트의 주담대 금지 규제도 풀려 LTV는 완화된 50%가 적용된다. 따라서 15억 아파트를 LTV 50%를 활용해 은행에서 최대 7억5000만원가량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DSR 규제에 따라 해당 금액의 대출이 가능한 최소 연소득은 연봉 1억1000만원 수준이다.
정부가 대출규제 정상화를 추진하면서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만큼은 기존 틀을 고수하는 것은 가계부채 문제가 여전히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잠재 위험 요인이라는 점을 의식한 조치다.
가계의 상환능력이 개선된 게 아닌데 섣불리 DSR 규제를 완화할 경우 금리 인상 기조 속에 가계의 채무 상환 부담만 늘려 가계경제와 부동산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DSR 규제의 골격을 유지하는 대신 이를 제외한 다른 규제를 단계적으로 풀면서 대출규제 정상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인데 구체적인 시기는 제시하지 않았다.
주택·부동산업계와 금융전문가들은 이번 규제 완화에 대해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DSR이 그대로인 상황에서는 실효성이 크지 않다고 지적한다. DSR은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의 소득 대비 전체 금융부채의 원리금 상환액 비율로 소득을 기준으로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DSR 기준은 40%로 묶여있는데, 이는 소득이 높은 전문직이나 사업가가 아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늘어난 한도만큼 대출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연봉 1억원인 무주택 실수요자가 14억원 아파트를 매입할 때 주택담보대출 상한액은 7억원이다. 그러나 같은 조건에서 연봉 5000만원인 무주택 실수요자의 최대 주택담보대출 가능액은 3억5500만원이다. 5000만원인 연봉 차이에 비해 상한액 기준 차이가 무려 2억4000만원에 달한다.
치솟는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무시할 수 없다. 현재 대부분의 시중은행 주담대 변동금리 상단은 7%대다. 고신용자들이 포함되는 하단은 5%대인데, 이는 지난해와 비교해도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로 빌린 4억원을 30년 만기의 원리금균등상환 방식으로 갚을 경우 금리 하단(5%)을 적용해도 매달 이자만 104만 원을 내야 한다. 원금을 포함 시 매월 215만원을 갚아야 한다.
DSR규제를 뚫어낸 맞벌이부부나 고소득자라고 하더라도 현 시점에서 대출을 일으킬만한 수요가 생겨나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금융업계 관계자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 인상과 주택가격 하락으로 매수심리가 식었기 때문에 당장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매매와 전세시장의 하락세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07%(부동산R114 자료) 떨어졌다. 재건축 아파트는 0.17%로 크게 하락했고 일반 아파트는 0.05% 떨어졌다. 신도시는 0.06%, 경기·인천이 각각 0.03% 하락했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1주택자가 조정대상 지역에서 추가 주택을 살 때 취득세가 8%지만 해제지역에서는 일반 세율로 바뀌므로 급급매 중심 매물 소화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금리가 치솟고 있어 매수자들이 대출을 많이 내 집을 사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수요 부족에 따른 집값 하락세는 계속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보면, 이달 15~16일 1순위 청약을 진행한 10개 단지(지역주택조합 아파트 제외) 중 8곳이 미달됐다. 비규제지역으로 청약 문턱이 낮아진 평택에서도 1순위 미달 단지가 나왔으며, 또다른 비규지역인 대전에서는 2개 단지 모두 1순위 청약 마감에 실패했다.
규제지역 해제라는 호재에도 청약 성적이 저조한 것은 최근 급격히 인상된 금리의 영향이 크다. 비규제지역이 되면서 LTV와 DTI 등 대출 규제는 많이 풀렸지만 금리 인상 여파로 대출 이자에 대한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규제지역에서 비규제지역으로의 전환에 따른 가장 큰 효과는 대출 규제 완화인데, 최근 높은 금리 부담으로 인해 상쇄되는 측면이 있다”며 “금리 인상이 지속되는 한 우수한 입지 및 낮은 분양가를 내세운 단지가 아니고선 청약 흥행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건설업계는 이르면 이달 21일부터 적용하는 아파트 중도금 대출 허용 분양가가 확대(9억원 이하→12억원 이하)에 기대하는 눈치다. 다음달 초 청약에 들어가는 둔촌주공아파트의 중소형 평형대도 규제 완화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얼어붙었던 분양시장에 온기를 불어넣어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6년 7월 발표된 가계부채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규제지역과 상관없이 분양가 9억원이 넘는 주택에 대해서는 HUG와 한국주택금융공사(HF)의 중도금 대출 보증이 금지됐다. 이에 따라 청약 당첨자는 분양가의 최대 70%에 달하는 중도금을 자기 자금으로 부담해왔다.
올해 들어 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매매시장은 물론, 분양시장까지 침체 조짐을 보이며 미분양 물량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정부는 고심 끝에 지난달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중도금 대출 허용 기준을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한편 정부가 내년도 공시가격 현실화율 수정을 비롯해 이달 중 보유세 인하 방안을 발표하기로 한 가운데 공시가격 현실화율 계획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덕례 실장은 “공시가격 현실화율 동결은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공시가격은 세금, 주거복지와도 연결돼있어 단순한 부분이 아니다. 주택가격이 내려가면 현실화율이 높아지는 등 변동성이 있는 기준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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