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스르륵 아이스크림이네!…얼렸다가 먹는 병어맛

한겨레 2022. 11. 1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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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박찬일의 안주가 뭐라고][ESC] 박찬일의 안주가 뭐라고
얼리면 ‘제3의 맛’ 보여주는 병어
사각거리는 식감에 고소한 맛 일품
마늘 잔뜩 넣은 막장에 찍어 먹을 것
얼린 병어회. 박찬일 제공

공자가 “군자는 회를 좋아한다”고 했다는데 그건 아마도 육회였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어회, 그것도 바다 회는 오랫동안 대우를 별로 받지 못했다. 입에 넣으면 살살 녹고 고소한 바다 회를 왜 높이 치지 않았을까. 그건 냉장 시설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다에서 육지로 이동해온 생선을 회로 먹는 건 당시엔 어려운 일이다. 위험하니까 훠이 훠이, 맛이 없다고 설파했을 거다. 군자들이 입는 옷은 꽤 복잡했을 거다. 게다가 치렁치렁하다. 겨울엔 이것저것 입을 게 더 많다. 입는 게 많으면 벗을 때도 힘들다. 설사 당해본 사람은 안다. 허리띠를 끄를 때 괄약근의 인내와 깊은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을. 옛날에 어회 먹고 배탈이 난 어떤 양반이, 거리에서 그 ‘소식’이 배에 왔다. 난리가 났다. 화장실은 없지, 겨우 발견해서 급히 들어간 측간에서 옷을 벗자니 이 매듭이 아주 특이했다면?

얼음에 저장해뒀다 먹는 빙장회

냉동고가 널리 퍼진 건 1970년대였던 것 같다. 가난한 서울사람도 회를 먹을 수 있게 됐다! 한치회니, 병어회니 하는 걸 냉동으로 한여름에도 사 먹었다. 한치는 길게 국수처럼 잘라놨는데 젓가락으로 파헤치면 안에서 살얼음이 나왔다. 씹으면 버석거린다. 그래야 믿었다. 와! 이 집 신선 맛집이야. 한치회는 갓 잡으면 투명하다. 언 것은 하얗게 크림색으로 변하고 씹으면 우유처럼 진액이 나온다. 그때는 그게 진짜 회인 줄 알았다. 제주도에서 산 한치회를 먹어보기 전에는. 아, 오징어도 겨울에 얼린 놈은 회로 먹었다. 껍질도 안 벗기고 반쯤 녹은 상태에서 칼로 쓱쓱, 초고추장과 마늘 저민 걸 곁들여서 소주 안주했다. ‘박찬일은 그때 어렸을 텐데 소주에 오징어회를?’ 물론 아니다. 아버지 술상 옆에서 안주만 먹었다는 얘기다. 어린 애가 생마늘 먹었냐고 묻지 마라. 그때는 젖 떼면 생마늘이고 뭐고 막 먹었다. 먹을 게 별로 없는데 뭘 가렸겠어.

아무 생선이나 얼린다고 다 회가 되지는 않는다. 한치는 얼렸다가 녹을 때 녹진하게 조직감이 변한다. 그게 나름 별미다. 지금도 그런 방식을 찾는 미식가가 꽤 있다. 병어도 그렇다. 지금이야 병어가 귀물 대접이지 과거에는 제일 싼 생선 중 하나였다. 더구나 사철 잡히다시피 한다. 어라, 냉동해두었다가 썰어도 맛있네? 얼었다 녹으면 물이 생긴다. 조직 세포 안의 수분이 녹으면서 나오는 물이다. 그래서 완전히 녹기 전에 먹어야 한다. 완전히 얼어도 살짝 두었다가 칼을 대면 썰린다. 접시에 담으면 먹기 좋은 식감이 된다. 횟감으로 제격이다. 병어는 비늘도 잘아서 칼로 대충 썩썩 한두 번 벗겨내리면 그만이다.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말은 들어봤지? 병어도 밴댕이 못지않다. 내장 먹을 게 없다. 그만큼 횟감이 많이 나온다는 장점이 있다. 요새 빙장회라는 별미가 나름 인기다. 얼음 빙(氷), 저장할 장(藏)을 썼다. 부산에 유독 이런 회 문화가 성하다. 영도의 ‘멍텅구리’집이나 남항시장에 전문집이 있다. 선어회를 얼음에 파묻어 두었다가 낸다. 선어니까 값이 싸다. 비주얼도 끝내준다. 얼음 더미에 묻혀 있는 횟감을 꺼내서 썰어낸다? 뭔가 북극에 온 거 같고, 아니면 얼음 다루는 냉동창고 근무하는 노동자의 술집 같은 콘셉트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원래 이런 현장감 있는 음식이 더 맛있는 법이다. 빙장회는 생선이 선사시대 빙하기 매머드(맘모스)처럼 단단해져서 나올 때도 있다. 얼음이 너무 세서 그런 것 같다. 회가 사각사각 씹힌다. 마치 냉동 생선의 그 맛이 생각난다. 사실 우리는 언 회를 좋아한다. 정통 일식을 표방하는 집에 가면 참치를 녹여서 말랑말랑 살살 녹는 젤리처럼 준다. 이것도 맛있겠지만, 그 옛날 동원참치(통조림이 아니고, 이 간판을 단 냉동참치회 전문집이 유행했다)처럼 막 언 상태로 나오는 회도 좋다. 얼린 걸 막 썰어서 얼음 결정이 살포시 표면에 맺혀 있었다. 얼었으니 무슨 맛이 잘 우러나오지 않으니 참기름장과 김을 얹어서 먹는다. 그냥 얼음도 우적우적 깨물면 맛있다는데, 이게 맛이 없을 리 있나.

수산시장 매대에 놓인 병어. 게티이미지뱅크

병어는 그래서 얼려 먹는 맛이 있다고 주장한다. 예전에 삼치를 그렇게 얼려둔 걸 썰어 판다고 여기서 썼다. 전남 여수에 가면 한여름에도 삼치회를 파는 방법이다. 삼치는 선어가 되면 살이 좀 물러서 얼리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병어는 그것과는 다른 맛이다. 얼리면 제3의 맛을 가지게 된다. 잘아서 뼈째 썬 것도, 큰놈이라 포를 뜬 것도 다 맛있다. 물론 전제조건이 있다. 병어가 싱싱할 때 얼려야 한다. 선어 상태로 팔아보려고 하다가, 안 팔려서 하는 수 없이 냉동창고에 집어넣은 놈은 안 된다. 처음부터 냉동할 요량으로 싱싱한 걸 얼리면 냉동이라 부르고, 냉장 상태로 있다가 어이쿠 상하기 전에 얼려서 보존 기간을 늘리자, 이렇게 하면 동결이라고 부른다. 정육 분야에서는 공식적인 용어다. 얼린 고기는 냉동인지 동결인지 꼭 표기해야 한다. 물론 어시장 가서 그렇게 물어봐야 소용없다. 생선은 그런 말을 안 쓰는 것 같다. 다 냉동이라 부른다. 

시장통 대폿집에서 먹는 그 맛

부산 깡통시장, 국제시장은 관광객으로 넘친다. 그 언저리 살짝 벗어난 곳은 한적하다. 부산 아재들이 한잔씩 마시는 대폿집이 있다. 부평동 ‘순자네’라는 집이 있다. 일고여덟 명이 앉으면 꽉 찬다. 거기서 조용히 혼술을 해보라. 옆자리 아재들 이야기가 들린다. 사투리의 향연이다. 토박이들 오는 집이라 그렇다. 주인 성함은 순자가 아니다. 아주 세련된 이름이다. 병어회 얼린 걸 판다. 옛날 동네 시장에서 팔던 자잘한 어린 병어가 나오겠지, 했는데 전혀 아니다. 뱃살이 살살 녹는 제법 큰놈이다. 병어 큰 건 뱃살 맛이 으뜸이다. 아이스크림 같다. 하얀 지방 조직이 씹을 때 스르륵 녹는다. 얼린 병어의 맛은 씹을 때 식감이고, 녹을 때 고소함이다. 마늘 잔뜩 넣은 막장에 찍어 먹어야 맛있다. 달고 씩씩하게 사각거린다.

병어는 감자와 양파 넣고 조려도 술안주로 최고다. 큰놈은 찜으로 한다. 칼집 내서 양념장 끼얹어서 찐다. 숟가락으로 살점을 슥 긁어서 첫술을 먹는다. 이 안주는 내가 좋아하는 안주 10걸에 든다. 양념장은 공식이다. 간장 둘 설탕 하나 마늘 반. 각기 숟가락의 부피 기준이다. 다 쪄지면 미나리를 한 움큼 올려서 뚜껑 덮어서 잠깐 두었다가 먹는다.

부산 가서 병어 얼린 놈에다가 소주나 한잔 해야 될 것 같은 날씨다. 어떤 날씨냐고 묻지 마라. 모든 날씨가 술꾼에게는 다 이유가 있는 좋은 날씨다.

박찬일 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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