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산악회 청산수산악회] 한 번 간 산은 안간다… "우리는 오지 산 전문"

한효희 2022. 11. 16.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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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산 전문 안내산악회
1만 봉 등정한 등산 고수 모인 안내산악회 끝판왕
선두에서 길을 표시하기 위해 남겨둔 '청산수'라고 적힌 종이.

청산수산악회는 국내 안내산악회 중 가장 극단적이고 마니악한 곳일 것이다. 일반적인 안내산악회는 100대 명산이나 백두대간처럼 경치가 좋고 유명한 곳 위주로 다닌다. 반면 청산수산악회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오지 산만 찾아다닌다. 그리고 한 번 갔던 곳은 다시 가지 않는다. 이들은 매주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산을 찾아 전국을 유랑한다.

청산수산악회는 매주 토요일 사당역에서 출발한다. 아침 7시 사당역 일대는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도로에는 산악회 대형버스가 줄지어 서있다. 사당역은 안내산악회의 성지다. 사통팔달하고 경부고속도로와 가까워 대부분 안내산악회가 사당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매주 주말 아침이면 사당역 일대가 시장통처럼 번잡하다.

이날 청산수산악회의 목적지는 경북 구미의 숨은 네 산 덕무봉(227m), 명산(266m), 여남산(209m), 정각산(276m). 한 번도 못 들어본 산이다. 네이버 지도에는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등산로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100대 명산 완등은 아기 걸음마 떼는 수준

청산수산악회의 버스가 오전 7시 정각 사당을 출발한다. 도로에 버스들이 줄지어 서있어 사당을 벗어나는 게 쉽지 않다. 두 번째 승차지인 양재역에도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과 대형버스가 빼곡하다. 20~30대 젊은 사람들도 종종 보이지만 대부분이 중년이다. 한국인들의 등산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할 수 있는 광경이다.

버스는 양재에서 경부고속도로를 올라 동천과 죽전에서 몇 명을 더 태우고 구미로 향한다. 동천과 죽전 간이정류장에도 대형버스가 줄지어 서있다. 일부 사람들은 버스에 더 빨리 승차하기 위해서 고속도로 갓길까지 나와 있다.

이날 산행에 참여한 사람은 총 20~30명 안팎. 대부분이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청산수산악회는 규모가 작고 마니악하다 보니 일반적인 안내산악회에 비해 회원들 간의 관계가 친밀하다. 청산수산악회 다음카페에는 현재 800명 정도의 회원이 있다. 평균연령도 높은 편이다. 이날 산행에 참여한 사람 중 최연소가 60대 초반, 최고령은 85세이다.

청산수산악회에는 산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등산 고수들이 많다. 웬만한 산은 다 가본 이들이 가보지 않은 새로운 산을 찾기 위해 청산수를 찾는 것. 한마디로 안내산악회의 끝판왕 같은 곳이다.

이날 참가자 중 5명이 공식적으로 1만 봉 넘게 등정했다. 85세로 최고령자인 심용보씨는 지금까지 1만 8,000봉을 올랐다. 83세 문정남씨는 2만 4,000봉을 넘게 올라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산을 오른 사람이다. 그는 TV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에도 출연하는 등 이미 매체에 여러 번 소개된 명사다.

한마디로 재야의 최고 고수들이 모인 곳이 바로 청산수산악회다. 이들은 기록을 남기기 위해 등정한 봉우리에 표지기를 달고 모든 기록을 엑셀로 정리한다. 등정한 봉우리는 지도에 형광펜으로 칠하는데 이들의 목표는 모든 산을 형광펜으로 칠하는 것이다. 기록을 정리하진 않았지만 비공식적으로 1만 봉을 넘게 등정한 이도 청산수에 여럿 있다.

이 봉우리 헌터들은 일주일에 서너 번 넘게 산을 간다. 토요일에는 청산수산악회를 이용한다. 청산수에서는 보통 하루에 4~5개의 봉우리를 오른다. 목요일에는 청산수산악회처럼 오지 산을 전문으로 다니는 강송산악회를 이용한다. 이들은 그 외의 개인적인 산행을 포함해 1주일에 보통 20~30개의 봉우리를 오른다.

기록은 산이 아닌 봉우리를 기준으로 한다. 북한산을 예로 들면 족두리봉, 문수봉, 백운대를 각각 1개의 봉우리로 치는 셈. 매주 20개의 봉우리를 오른다고 치면 1년에 대략 1,000개를 오를 수 있다. 매주 쉬지 않고 등산을 한다고 쳐도 1만 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10년이 걸린다. 1만 봉 등정 기록을 보유한 이들 대부분이 30년 넘는 등산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문정남씨는 2014년, 조삼국·심용보씨는 2016년에 월간<산>에서 1만 봉 등정 기사로 소개된 적 있다. 이곳에서 100대 명산 완등은 아기가 걸음마 떼는 수준에 불과하다.

여남산으로 오르는 대나무숲길.

개척과 알바는 우리의 친구

경북 구미시 장천면의 작은 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이 익숙한 듯 각자 산행에 나선다. 청산수산악회에서는 '오룩스맵'이라는 지도앱을 이용한다. 산행 출발 전 코스가 담긴 GPS 파일을 배부받아 스마트폰을 활용해 이동 경로를 확인한다.

예전에는 나침반과 종이지도를 가지고 운행했지만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산행이 한결 편해졌다. 70~80대 어르신들도 익숙하게 스마트폰을 보며 산행을 나선다.

마을을 가로질러 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간다. 개 짖는 소리가 온 동네에 가득 퍼진다. 한 마을주민이 우리에게 "어딜 가느냐"고 묻는다. "산에 간다"고 대답하니 "여기에 등산할 만한 산이 있냐"고 되묻는다. 우리는 현지인도 모르는 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첫 번째 봉우리는 덕무봉이다. 포장길이 비포장길로 바뀌더니 이내 오솔길이다. 찾는 이가 드문 산이다 보니 등산로가 희미하고 잡목이 자라 있다.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처럼 선두에서 화살표가 그려진 종이를 가는 길에 하나씩 놓고 간다. 후미는 선두의 흔적과 GPS를 비교하며 산행을 이어간다.

인적이 드문 산이지만 해발고도가 낮아 금세 정상에 올랐다. 정상 주변 소나무 가지에 오지 산 마니아들이 남긴 표지기가 여럿 걸려 있다. 청산수산악회 표지기도 하나 걸어둔다. 아무도 찾을 것 같지 않은 야산인데도 정상에는 웬만한 100대 명산에 있을 법한 커다란 정상석과 돌탑이 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산을 찾는 것일까, 그리고 저렇게 큰 정상석은 어떻게 가져온 건지 궁금했다. 우리나라에는 정말 숨은 등산 고수들이 많다.

청산수산악회의 1만 봉 이상 등정자 5인. 왼쪽부터 심용보, 문일, 신상호, 문정남, 조삼국.

다음 코스는 두 번째 봉우리인 명산을 찍고 되돌아와 안부에서 하산하는 길이다. 그런데 안부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하산할 만한 길이 보이지 않는다. 청산수산악회 회장인 김철규씨가 안부에서 약간 더 올라 개척 산행을 시작한다. 지나온 길에는 종잇조각을 놓아 후미가 따라올 수 있도록 유도한다. 산세가 험하지 않고 잡목이 심하게 우거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없는 길을 개척하며 내려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김철규 회장이 동물 같은 감각으로 희미한 길을 좇아 내려간다. 그는 70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발걸음이 가볍다. 내리막길을 뛰듯이 내려간다. 오르막에서는 20대인 기자가 숨이 넘어갈 것 같은데 그의 발걸음은 깃털처럼 가볍다. 그는 등산스틱도 쓰지 않는다.

"항상 손에 나침반이나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보니 걸리적거려서 안 쓰게 됐습니다. 무릎에 무리가 오는 건 사실이지만 매일 산행이 끝나면 관절을 찬물로 마사지합니다."

무릎을 관리하는 비법이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회장은 "최고의 비결은 살을 빼는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살이 많이 찐 기자는 뜨끔하다. 김철규씨는 마라토너처럼 몸매가 늘씬하다. 젊었을 때 체중이 70kg대였던 그는 등산을 시작하며 50kg대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등산스틱 없이 매주 산을 올랐지만 그의 무릎은 아직도 쌩쌩하다. 왕년에 마라톤 풀코스도 여러 번 뛰었다.

여남산 정상에 선답자들의 표지기가 걸려 있다.

청산수산악회는 현재 회장인 김철규씨가 16년 전 창립했다. 올해 70세인 그는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는 한때 암에 걸렸을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았다. 40대부터 산을 다니기 시작하며 건강을 되찾았고, 그렇게 등산 골수 마니아가 되었다. 그는 여러 산악회에서 활동하다 자신이 가보고 싶은 산을 다니기 위해서 청산수산악회를 만들게 되었다.

'청산수'는 맑은 산과 물이라는 의미다. 등산 마니아들이 주축인 이곳은 참여 인원에 상관없이 연중무휴 매주말 산행을 떠난다. 산행대상지는 직접 지도를 샅샅이 뒤져가며 발굴한다. 한 번 간 곳은 가지 않기 때문에 대상지를 찾는 게 쉽지는 않다. 대상지를 선정한 후에는 지도와 자료를 종합해 네다섯 개의 봉우리를 잇는 산행 코스를 구상한다.

전광석화 같은 그의 발걸음을 정신없이 좇다 보니 어느새 마을로 내려왔다. 다음 목적지는 여남산. 마을길 곳곳에 홍시가 빨갛게 무르익어 있다. 황금빛으로 물든 논밭을 가로질러 여남리의 한 작은 마을에서 산을 오른다. 텃밭에서 밭일을 하시던 꼬부랑 할머니가 산으로 향하는 우리 무리를 보고 적잖이 놀란 모습이다.

여남산 오르는 길은 등산로가 뚜렷하다. 짧게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금방 정상이다. 정상에는 조망이 없으며, '여남산'이라고 적힌 작은 코팅지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청산수산악회에서는 정상 푯말이 없는 곳에 직접 푯말을 제작해 달았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재정이 줄어들어 정상 푯말 제작을 그만두게 되었다. 예전에는 45인승 버스가 꽉 찰 정도로 사람이 많았지만 코로나 이후 산행 참여 인원도 반절이 됐다.

산행 날머리는 여남산과 정각산 사이에 위치한 여토실마을이다. 마을회관 앞에 우리가 타고 온 대형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산행을 끝마친 사람들이 하나둘씩 마을회관 앞으로 모인다. 이날 산행 거리는 약 10km. 산행 시간은 3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이 정도면 고속도로지. 기자님은 오늘 정말 편한 산행한 거야."

이날 산행에 참여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번 산행은 정말 편했다"고 입을 모았다. 보통 청산수산악회의 산행코스는 10km 내외다. 산행시간은 4~5시간 정도 소요된다. 예전에는 산행 거리가 15km 정도였지만 회원들이 노령화되면서 산행이 짧아졌다. 평소 개척 구간이 잦고 산행이 거칠 때가 많다고 한다.

첫 번째 봉우리인 덕무봉 정상에는 커다란 정상석이 있다.  

산행 후 함께 먹는 밥은 꿀맛

여토실 마을회관 앞마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밥을 제공하지 않는 대부분의 안내산악회와 달리 청산수산악회에서는 산행을 마치고 다함께 밥을 먹는다. 흰쌀밥이 제공되며 반찬은 각자 챙겨온다. 밥 먹을 준비를 마치고 수저를 드는데 여기저기서 고양이가 몰려든다. 처음에는 한두 마리였는데 나중에는 총 여덟 마리가 우리 앞에 진을 치고 "야옹"하며 처량하게 울고 있다. 털 색깔이나 무늬를 보니 다 한 가족인 것 같다.

밥이며 반찬을 조금씩 던져주자 고양이들이 위아래 할 것 없이 덤벼든다. 보통 어미가 자식을 위해서 양보하기 마련인데 이 녀석들은 어미가 먼저 달려들어 혼자 먹을 걸 독차지한다. 굶주림이 모성애를 넘어선 길고양이의 삶이 애처롭다.

굶주림이 자비심을 넘어선 기자는 고양이에게 적선하지 않고 숟가락을 든다. 하루 종일 쫄쫄 굶었던 터라 맨밥만 먹었는데 밥맛이 달다. 따뜻한 컵라면에 밥을 말아 마른 반찬과 함께 흡입하듯 먹었다. 역시 시장이 최고의 반찬이다.

어느 정도 식사를 끝마칠 때쯤 되자 한 동네 주민이 와서 "뭐하는 거냐"고 묻는다. 마을회관을 무단 점거한 외지인들에게 한마디 하려는 것 같았다. "주변에 등산하러 왔다"고 말하니 "여기에 등산할 데가 있냐"며 놀란 모습이다. 마을 주민은 "마을회관 안에서 편하게 밥을 먹지 그랬냐"며 따뜻한 물과 커피를 내어 준다.

정겨운 여토실마을을 떠나 귀경하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배도 부르고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섰더니 졸음이 쏟아진다. 무사히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항상 나른하고 포근하다. 차창으로 쏟아지는 따스한 햇볕을 이불삼아 달콤한 잠에 빠져든다.

청산수산악회 설립자인 김철규 회장도 1만 봉 넘게 등정한 등산 고수다.

청산수산악회 이용 가이드청산수산악회 다음카페(cafe.daum.net/grinmathmt)에 가입해서 산행 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산행은 매주 토요일 당일로 진행된다. 회비를 입금한 후 다음카페에서 댓글을 작성해 산행에 참여할 수 있다. 비용은 대상지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3만 5,000원에서 4만 원 선이다. 45인승 버스로 운영된다. 탑승지는 사당역 10번 출구 근처 국민은행 앞이며 양재역, 동천, 죽전에서도 탑승 가능하다. 하차 시에는 죽전·동천을 거쳐 양재역까지만 운행한다.

경북 구미시 장천면 교통비 비교 (서울 기준)

대중교통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구미종합터미널까지 편도 2만2,000원. 구미 시내버스 요금 1,400원. 총 왕복 비용 4만6,800원. 구미종합터미널에서 산행출발지까지 1시간 정도 시내버스로 이동, 정류장에서 2km 도보 이동.

자가용 왕복 497km. 편도 통행료 1만700원, 연료비 3만6,020원(연비 11.2km/L, 휘발유 1,665원/L). 총 왕복 비용 9만3,440원. 4인 이동 시 1인당 부담 비용 2만3,350원.

안내산악회 이용 시 총 3만5,000원.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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