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낙엽따라 가버린 그대가 그립다

2022. 11. 14.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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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차중락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방송사에 근무할 때 ‘나의 문화방송답사기’를 사보(MBC가이드)에 연재한 적이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지은 유홍준 교수에게 연락도 안 하고 무단으로 정한 제목이다. 언제 기회가 되면 양해를 구해야지 미루던 차에 마침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만날 기회가 있어서 말씀드렸더니 기분 좋게 용납(?)해주셨다.

11월 첫 번째 월요일 유 교수가 이끄는 박물관운영위원들 틈에 끼어 망우역사문화공원을 다녀왔다. 예전에 망우리공동묘지라고 불리던 곳이다. 내가 어릴 때는 공포영화의 대명사가 ‘월하의 공동묘지’(1967)였다. 지금은 달라졌다. 나이 들수록 공동묘지는 오히려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사실 내가 듣는 노래 중 절반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만들고 불렀다. 살아있는 자들은 자리를 다투지만 음악동네에선 산 자와 죽은 자가 사이좋게 공존한다.

망우리(忘憂里)는 근심을 잊어버린 마을이란 뜻이다. 죽은 자들은 잊기를 원하지만 산 자들은 기억되기를 갈망한다. 버스 창밖으로 꽃들이 지천인데 꽃 중에도 물망초(forget me not)가 있다. 비지스의 노래(Don’t Forget to Remember)와 꽃말이 연결된다. ‘Oh my heart won’t believe that you have left me’(오 마음으로는 그대가 날 떠났다는 걸 믿지 않을 거야). 망우공원에서 상봉할 분 중에는 시인 한용운 님도 계신데 비지스의 이 노래는 ‘님의 침묵’과도 묘하게 겹친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박물관이 배경인 판타지 영화가 있다. ‘박물관이 살아있다’(2006)에서는 야간경비원(벤 스틸러)이 전시물과 밀랍인형이 살아서 움직이는 광경을 목격한다. 원제목은 ‘Night at the Museum’(박물관의 밤)인데 번역한 제목이 더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만약에 ‘망우리는 살아있다’가 영화로 나온다면 등장인물들이 그야말로 역대급이다. 가나다순으로 열거해보자. 강소천, 계용묵, 권진규, 김말봉, 김상용, 문일평, 박인환, 방정환, 송석하, 안창호, 오세창, 유관순, 이중섭, 장덕수, 조봉암, 지석영, 차중락, 최학송, 한용운, 함세덕….

명동백작으로 불린 박인환의 시비 앞에서 유 교수가 노래를 청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이 노래(세월이 가면)는 박인희의 리메이크 버전이 유명하지만 오리지널은 가수 김혜림의 모친인 나애심(1930∼2017)이다.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중략)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낙엽을 밟으며 도착한 마지막 순례지는 만 26세의 나이로 요절한 가수 차중락(1942∼1968)의 묘소였다.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Anything That’s Part of You)를 번안한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으로 오빠부대의 환대를 받았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 뺨이 몹시도 그리웁구나.’ 묘소를 찾은 날이 마침 그의 기일(11월 10일) 부근이어서 감회가 남달랐다.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 줄 왜 몰랐던가.’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의 엔딩곡은 미국 밴드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셉템버’다. 매년 9월 21일이면 라디오에 나오는데 가사의 시작이 이렇다. ‘Do you remember the 21st night of September’ 참고로 그날은 세계평화의 날이다. 노래를 부른 밴드(Earth, Wind & Fire)는 애칭이 지풍화(地風火)악단이라 자연스럽게 그룹 캔자스(Kansas)의 ‘바람 속의 먼지’(Dust in the Wind)가 연상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가니 이윽고 신의 언어(창세기 3장 19절)와 마주치게 된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흙으로 돌아간다고 누구나 아주 묻히는 것은 아니다. 기억의 덤불 속에서 진심의 노래는 아우성처럼 오늘도 메아리친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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