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데자뷰]① 10년 전 금융위기 시절 돌아보니… “대치 은마·압구정 미성 3억원씩 ‘뚝’”
부동산 가격이 끝 모를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역대 최고치를 연달아 갈아치우던 매매가격은 이제 역대 최대 낙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작년 한 해를 달궜던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정비사업 등 각종 호재도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거래도 극도로 얼어붙었다. 일각에서는 10여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하다며 주택시장이 심각한 침체를 겪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금융위기 당시 침체 양상을 되짚어보고 전망을 들어봤다.[편집자주]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인한 금융위기 여파는 단숨에 국내 주택시장을 집어삼켰다. 위기 직전까지 가파르게 치솟던 집값은 하락 전환됐고, 시장 상승세를 주도하던 강남3구(송파·강남·서초) 등 핵심지역에서도 매매가격이 수억원씩 급락했다. 외환위기 이후 10년만에 찾아온 경제위기로 주택시장은 혼돈에 빠졌다.
◇ 5년에 걸친 집값 하락… 대치 은마·압구정 미성 3억원씩 ‘뚝’
1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충격은 5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집값에 반영됐다. 부동산원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시계열 자료에 따르면 2008년 9.6%에 달했던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2009년 2.8%로 축소됐고, 2010년에는 하락 전환(-1.1%)했다. 이후 2011년 0.7% 상승하며 소폭 회복했으나 2012년(-4.8%), 2013년(-1.4%) 다시 하락했다.
특히 강남의 집값 하락폭이 컸다. 강남 집값은 2009년 3.4% 오른 뒤 2010년 하락 전환(-1.0%)했고, 2012년(-6.0%) 하락폭이 커지며 서울 평균을 넘어섰다. 2013년(-1.1%)에야 비로소 하락세가 소폭 둔화하며 서울 평균과 비슷해졌다. 강북 집값이 2009년 2.3%, 2010년 -1.3%, 2012년 -3.4% 등으로 변동이 적었던 것과 조금 다른 양상이었다.
실거래가를 보면 이런 변화가 더욱 두드러진다. 2008년 4월 10억4500만원에 팔렸던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77㎡(7층) 거래가격은 금융위기 직후인 8월 9억2000만원(6층), 12월 7억4000만원(8층)으로 떨어졌다. 4월과 비교하면 8월 가격은 12.0%, 12월 가격은 29.2% 급락했다. 압구정동 미성2차아파트(전용 74㎡)도 2008년 3월 10억5000만원(10층)에서 8월 8억9000만원(16층), 12월 7억원(15층)으로 떨어졌다.
경기도에서는 서울 강남3구 및 목동과 함께 ‘버블세븐’으로 불렸던 용인과 분당, 평촌의 아파트값이 크게 하락했다. 용인의 경우 2008년 -7.9%를 기록하며 크게 하락했고, 이후 하락세가 다소 둔화했지만 2012년(-5.4%) 다시 확대됐다. 분당구와 안양시 동안구(평촌)의 경우 2008년 각각 -9.6%, -3.3%씩 하락한 뒤 하락세가 둔화하다가 2012년 각각 -8.4%, -6.6%를 기록하며 다시 확대됐다.
임병철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금융위기 때는 버블세븐과 같이 아파트값이 크게 올랐던 지역들의 가격 하락세가 두드러졌다”면서 “노원·도봉·강북 등 강북 지역도 금융위기 직전까지 가격 상승률은 높았지만,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덕분에 상대적으로 덜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고 했다.
◇ 금리 인상·집값 하락 이중고… ‘하우스 푸어’ 150만가구 양산
경기가 정점을 찍었던 2006년 전후로 빚을 내서 집을 마련한 집주인들은 졸지에 ‘하우스 푸어’(원리금 상환액 부담이 커 빈곤하게 사는 사람)로 전락했다. 경제 위기가 닥치자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이 늘어났던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2006년 5.64% 수준이던 예금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2008년 7.00%까지 치솟았다.
높은 수준으로 형성돼있던 정책금리는 이런 변화를 촉발했다. 2008년 2월까지 한국은행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초단기 시장금리인 ‘콜금리’에 대한 목표치를 정책금리로 삼아 공표했는데, 2004년 11월 3.25%였던 콜금리 목표치는 꾸준히 증가해 2007년 8월 5.00%로 높아졌다. 정책금리를 한국은행 기준금리로 바꾼 이듬해 8월에는 5.25%를 기록하며 199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정부는 다양한 정책 수단을 통해 대응에 나섰다. 한국은행은 2008년 8월부터 2009년 2월까지 6개월간 6차례 조정 과정을 거쳐 기준금리를 5.2%에서 2.0%로 낮췄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금리를 낮춘 것이다. 정부도 취약가구를 대상으로 상환기간 연장과 장기분할상환 대출로의 전환 유도 등을 실시했고,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적격전환대출을 활용해 하우스푸어를 구제하기 위한 대책도 내놨다.
그러나 하우스푸어 규모는 꾸준히 증가했다. 이미 경기침체기로 진입한 탓에 소득대비 원리금 상환액이 큰 가구가 증가한 것이다. 2011년 현대경제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0년 기준 하우스푸어(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가계지출 줄인 가구)는 156만9000가구로 나타났다. 총 가구원 수는 549만1000명에 달했다.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아파트를 가진 30~40대의 중산층이 20%를 차지했다.
◇ 대출규제 확 풀어 부양… 정부 “빚 내서 집 사라”
정부는 규제 완화와 공급 축소를 통해 반전을 꾀했다. 우선 2014년 중반까지 각각 50%로 제한되던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를 그 해 7월 각각 20%포인트(p), 10%p씩 완화했다. 가계대출 규제를 풀어 가계의 구매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두 달 후인 9월에는 재건축 가능 연한을 30년으로 단축해 재건축 활성화 발판을 만들었고, 동시에 신도시·택지지구 개발 근거법인 택지개발촉진법을 용도폐기하며 건설경기가 살아날 계기를 만들었다.
신규 공급도 대폭 축소했다. 정부는 연 7만가구 수준이던 공공분양주택 공급 물량을 2만가구 이하로 축소했으며, 이미 착수된 물량을 감안해 2013년부터 5년간 신규 인허가 물량을 1만가구 수준으로 관리했다. 수도권 그린벨트 내 신규 보금자리지구 지정은 중단했으며, 이미 개발이 진행되고 있던 평택 고덕신도시·양주신도시 등도 사업계획을 조정해 속도조절에 나섰다.
주택가격은 정책에 반응했다. 2013년 1.4% 하락하며 2년 연속 하락하던 서울 아파트값은 2014년 1.1% 반등했고, 이듬해에는 4.6% 상승했다. 이후 2021년까지 상승세를 지속했다. 강남의 반등폭은 더 컸다. 2013년 1.1% 떨어졌던 강남 아파트값은 2014년 1.2%, 2015년 5.2%씩 상승한 뒤 2018년에는 6.5%까지 오르면서 서울 평균을 상회했다. 강북이 2014년 1.1%, 2015년 3.9%, 2018년 5.9%로 오른 것과 비교하면 증가폭이 크다.
공급 축소에 따라 악성 미분양도 감소했다. 2013년 12월 2만1751가구로 집계됐던 준공후 미분양은 2014년 12월 1만6267가구로 줄었고, 2017년 1월에는 9330가구로 감소하며 1만가구 밑으로 내려왔다. 악성 미분양이 1만가구를 하회한 것은 2007년 관련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었다. 2008년 시작된 부동산 시장의 위기가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고준석 제이에듀 투자자문 대표는 “정부의 시장 활성화 대책이 수요를 촉진하고 신규 공급을 줄여 부동산 시장이 활발해질 발판을 만들었다”면서 “이 결정으로 금융규제 이후 5년간 하락하던 서울 집값이 반등에 성공, 이후 6년간 지속한 집값 상승기를 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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