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마흔, 제 나이가 어때서요” KBO 최장수 치어리더 그녀 [인터뷰]

이효석 2022. 11. 1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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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 랜더스 소속 배수현 치어리더

“경기장에서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어요. 제겐 이번 한국시리즈가 특별했거든요.”

SSG랜더스가 2022년 KBO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 짓는 마지막 경기를 치렀던 8일 오후 2시. 6차전 키움 히어로즈와 SSG랜더스의 경기까지 4시간가량이 남았다. 경기 전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만난 배수현 치어리더(38)는 그 전날 극적인 역전승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듯 보였다.

7일 5차전에서 SSG는 드라마를 찍었다. 2-4로 뒤진 9회말 ‘백전노장’ 김강민(40)이 끝내기 역전 3점 홈런을 터뜨리면서 간신히 살아났다. SSG는 상대 전적 4승 2패로 키움을 꺾고 창단 2년 만에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개막일부터 종료일까지 한 번도 1위를 빼앗기지 않은 우승)을 달성했다.

경기장에 김강민이 있었다면 응원석엔 배수현이 있었다. 그는 KBO리그 최장수 치어리더다. 1세대 치어리더 중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건 그가 유일하다.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마흔 살. ‘40대 치어리더’를 목전에 두고 있다. 한국시리즈 응원 무대에 선 것만 이번이 여덟 번째다. 모든 구단 치어리더 중 가장 많은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어쩌면 그에게 이번 한국시리즈는 마지막 무대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었다.

게다가 우승의 발판을 마련한 역전승의 주역이 김강민 선수라는 점은 그에게 더 특별했다. 둘은 공통점이 많다. 둘 다 팀 내 최고령이면서도 한 팀에서 헌신해온 ‘원 클럽 플레이어’다. 2003년 데뷔한 이후 배수현씨는 SK와이번스·SSG랜더스를 거치면서 19년간 한 구단에서 일했다. 프로야구 40년 역사의 절반을 인천 야구를 위해 뛰었다. 그래서 그의 별명 중 하나는 치강민(치어리더계 김강민)이다. “‘배수현이 김강민보다 빨리 은퇴하는 건 상도에 어긋난다’는 팬들의 짓궂은 농담에 나는 쉽게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하는 그를 만나 최장수 치어리더의 비결을 물었다.

지난 8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KBO리그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배수현 치어리더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팀 우승 후 소감은.

▷기억에 강렬히 남는 세 번째 한국시리즈가 될 것 같다. 첫 번째는 2007년 SK 와이번스가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했을 때다. 그리고 두 번째는 팬들 사이에서 크게 회자 됐던 2018년 한국시리즈 때다. SK 와이번스가 오랜 부진을 탈출하고 8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6차전 마지막 경기에서 팀 간판타자인 최정이 9회말 동점 홈런을 쳤을 때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게 배수현의 눈물로 화제가 됐다. 7일 5차전도 잊을 수 없는 경기가 될 것 같다.

―치어리더가 원래 꿈이었나.

▷어릴 때부터 꿈이 많았다. 작가, 요리사, 미스코리아, 경찰 등이 되고 싶었다. 확실히 춤에 재능은 있었던 것 같다. 엄마 말로는 네 살 때부터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을 보고 나면 사람들 앞에서 춤을 췄다. 가족끼리 휴가를 가게 되면 사람들 앞에서 장기자랑처럼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췄다. 스스로 춤을 통해 힘을 얻었고, 그 춤을 통해 다시 사람들이 힘을 얻는 게 좋았다. 학창 시절 내내 항상 음악을 듣고 춤을 췄다.

―데뷔하게 된 계기는.

▷지금 인터뷰하는 매체인 신문 때문이다.(웃음) 그때가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마치고 난 뒤였다. 취업 준비를 하던 중에 아버지가 보던 신문 전면에 SK 와이번스 소속 치어리더의 모습이 실렸다. 나랑 같이 1세대 치어리더로 불리게 될 고지선(42) 언니였다. 그 언니가 치어리더 복장을 하고 수수를 들고 해맑게 웃던 모습이 정말 멋지게 보이지 않던가. 당시 기사 말미에 전화번호가 있었다. 다짜고짜 전화했다. ‘나는 배수현이라고 하는데, SK 와이번스 치어리더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내게 응원 용역업체를 소개해줬다. 그곳에 전화했고 얼마 후 오디션을 봤다.

너무 떨렸다. 스무 명이 넘는 언니들이 모두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고지선 언니도 있었다. 준비한 음악을 틀어놓고 무대를 선보였다. 성인이 된 후 키가 더 커 지금 내 키는 176cm이고, 당시 키는 173cm이었다. 큰 키에 춤도 곧잘 춘다고 생각했는지 치어리더로 뽑히게 됐다. 재능이 있긴 있던 것 같다. 기본 동작을 배우는 연습 기간이 필요했는데, 보통 3개월이 걸린다. 나는 거의 열흘 만에 끝냈다. 곧바로 스포츠 업체 모델 일부터 시작했다.

―야구는 원래 좋아했나.

▷아버지가 야구 ‘찐팬’이다. 1982년도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야구를 보러 다니셨다. 1984년에 내가 태어나고 나니 나를 무동 태우고 야구장에 다니셨다고 한다. 아버지 덕에 야구장을 자주 간 셈이다. 물론 당시엔 야구장이 어떤 곳인지 잘 몰랐다. 다만 맛있는 걸 먹으러 가는 곳으로 인식했다.

배수현 SSG랜더스 치어리더 2022.11.8 [김호영기자]
―학창 시절은 어땠나.

▷중고등학교 시절에 댄스부 활동을 했다. 학교 축제에서 공연을 했고, ‘춤 잘추는 애’로 주변에 소문이 났다. 나름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

그래도 ‘인싸’라고 생각하면 그건 큰 오해다. 초등학교 시절엔 나는 소극적이어서 따돌림을 당할 정도로 조용한 아이였다. 특히 왼쪽 귀가 잘 안 들려 친구들에게 오해를 많이 샀다. 내가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춤을 추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중학교 축제 때 무대를 선보였는데 그때부터 친구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춤 잘 춘다, 나랑 친구하자’는 아이들이 늘었다. 그 뒤로도 춤과 함께 학창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청각 장애가 있나.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학생기록부에 썼다. 청각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갔고 ‘신경성 난청’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시끄러운 소음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떡하나. 내가 춤을 너무 좋아했고, 치어리더를 하면서 소음은 피할 수 없다. 지금은 왼쪽 귀로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래도 활동 하는 데 불편함을 크게 못 느끼고 있다. 물론 요즘처럼 마스크를 쓰는 시기엔 일상에서 나는 좀 불편하다. 말소리와 입 모양을 동시에 봐야 그나마 상대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는데, 그게 어렵다. 오히려 장점도 있다. 남이 날 욕하는 소리를 잘 못 듣는다.

팬들의 오해는 좀 바로잡았으면 한다. SSG 팬들은 나 때문에 인천 경기장은 음향 소리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니다. 시끄러운 야구장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려면 대형 스피커를 크게 틀 수밖에 없다. 나와는 큰 관련이 없다.

―무용을 전공했는데.

▷데뷔한 이후 선배 중에 발레리나 출신 치어리더가 있었다. 그분의 조언 때문에 대학 원서를 썼고 무용 전공을 택했다. 그 언니가 치어리더로서 춤이 특정 장르로 치우치면 성장할 수 없다고 일러줬다. 그 선배가 발레, 한국무용, 뮤지컬, 재즈, 힙합 등 여러 장르를 배워놓으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보디빌더는 ‘부캐’인가.

▷잠깐 쉰 적이 있다. 다음 시즌 복귀를 하려고 하는데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계기가 돼 운동을 시작했고 주변의 권유로 대회에 출전했다. 2015년부터 보디빌딩 대회 준비를 시작했다. 그 해 머슬매니아 유니버스 세계대회 선발전 모델 여자부문에서 2등을 했다. ‘1등 한번 해봐야지’라는 유혹에 또 넘어가 그해 다른 대회에 출전했다. WBC 피트니스 썸머 챔피언십 모델 여자부문에서 1등을 했다.

그런데 그 이후 오히려 뒷말이 나왔다. 내가 치어리더의 명성을 이용해 손쉽게 입상을 했다는 안좋은 소문이 돌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그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국제보디빌딩연맹(IFBB) 코리아 그랑프리 비키니 오픈 부문에 나가 1위를 했다. 2018년도엔 국제보디빌딩연맹 프로 비키니 선수가 됐다. 지금은 스무 명이 넘지만 대한민국에서 네 번째로 프로 자격을 얻었다.

배수현 SSG랜더스 치어리더 2022.11.8 [김호영기자]
―롱런을 원하는 후배들에게.

▷자기관리가 중요하다. 나는 담배도 안 피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매일 1시간~1시간 30분씩 근력 운동을 한다. 피자, 햄버거 같은 음식을 먹지 않는 좋은 식습관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본업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요즘 MZ세대 치어리더는 다양한 부캐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모델, 방송인, 크레이티브까지. 그래도 본캐를 잊어선 안 된다. 나도 보디빌더 프로 자격을 땄고, 은퇴 후엔 트레이너로 일 해볼까란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본업은 치어리더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동안 흔들리지 않고 한 자리를 지켜온 건 어쩌면 이런 절실함과 사명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치어리더로 힘들 때는.

▷우선 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어 그때는 힘들다. 2018년도에 공연 무대를 섰다가 발목 인대가 다쳐 전치 4주에 깁스를 했다. 몸을 많이 쓰다 보니, 부상은 조심해야 한다. 물론 그때에도 깁스 한 채로 근력 운동을 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하고 싶나.

▷서른 다섯 살이 되는 해에 내가 말했다. 마흔 살이 넘어서까지 이 일을 하고 싶다고. 지금 한해 남았다. 내가 한 말도 있고, 하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물론 ‘40대 치어리더’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여러 사람이 도와주고 인정해줘야 가능한 일이다. 최장수 기록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물론 있다. 대기록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 후배들에게 의도치 않게 본보기가 되고 있다. 내가 물러나는 시점이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힘을 낼 거다.

―앞으로 계획은.

▷내셔널 풋볼 리그 같은 걸 보면 한 구단 치어리더 20명을 뽑으면 2000명가량이 넘게 지원 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치어리더 선발은 체계적이지 못하다. 나처럼 알음알음 전화해 오디션을 봐야 한다. 아니면 아는 사람을 통해서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야 한다. 길거리 캐스팅으로 뽑히는 사례도 많다. 치어리더도 체계적인 선발 시스템을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가 데뷔했을 때와 지금 치어리더의 급여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 그만큼 달라진 게 적다는 뜻이다. 여성 댄서 크루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나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다. 치어리더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게 생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직업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처우도 개선됐으면 한다. 물론 내가 선배로서 치어리더 처우와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할 의지도 갖고 있다.

배수현 SSG랜더스 치어리더 2022.11.8 [김호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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