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액션영화 같은 음식다큐를 봤나

김은형 2022. 11. 1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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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 ‘푸드 크로니클’ 이욱정 감독
음식-인간관계 고찰 천착해와
10개국 1년간 돌며 찍은 음식
8가지 테마로 나눠 70분씩 선봬
티빙 오리지널 다큐 <푸드 크로니클>을 연출한 이욱정 감독. 티빙 제공

주물럭거리고 치대어 만든 반죽을 납작하게 누르고 동그랗게 편다. 고기와 채소로 만든 소를 그 위에 뿌리거나 채워서 주머니처럼 싼다. 또는 켜켜이 쌓기도 한다. 만두, 쌈, 타코, 피자, 팬케이크, 샌드위치, 스시, 케이크. 인간의 일 중 많은 부분이 기계에 넘어갔지만 요리는 여전히 손의 영역이다.

<한국방송>(KBS) 재직 시절 <인사이트 아시아―누들로드> <요리 인류> 등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음식과 손, 즉 인간의 관계를 고찰했던 이욱정 감독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다큐 <푸드 크로니클>로 돌아왔다. 티빙의 첫 오리지널 다큐이기도 하다.

티빙 오리지널 다큐 <푸드 크로니클> 포스터. 티빙 제공

“‘요새 누가 다큐 보냐, 지상파에서도 안 하는데’ 이런 걱정이 많았어요. 저는 제작자 책임도 있다고 생각해요.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시청자의 취향을 따라잡지 못한 거죠. 무조건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다큐지만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시 중구 자신이 운영하는 쿠킹 스튜디오에서 만난 이 감독은 지난달 20일 첫 공개 이후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에 “기쁘다”며 “연예인(인기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사이에 끼여 앉은 일반인 느낌”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전세계 10개국을 1년간 돌면서 찍은 여덟가지 테마 음식을 각각 70~75분짜리 한 회에 담았다. 시청자가 지루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1회 ‘만두’ 한 편에만도 6개국의 여덟가지 이야기를 눌러 담았다. 군침 도는 음식들과 “액션 영화의 액션 장면처럼 스피디하면서도 자세하게 보여주는 시즈닝 장면” 등으로 먹거리를 볼거리로 코드 전환했다.

티빙 오리지널 다큐 <푸드 크로니클> 장면. 티빙 제공

이 감독이 이번 다큐에서 주목한 건 음식의 형태다. 피자나 전같이 평평하고 납작한 음식, 만두나 쌈처럼 싸서 먹는 음식, 팬케이크, 크레이프처럼 얇게 빚은 반죽을 켜켜이 쌓아놓은 음식들에 주목했다. 이 음식들의 공통점은 전 지구인들이 가장 흔하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실용적인 음식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쌈만으로도 천상의 아름다움과 맛을 추구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미쉐린 가이드> 별점 3개 레스토랑 ‘베누’ 같은 곳도 등장하지만 할머니로부터 이어받은 손맛을 보여주는 정감 있는 음식들도 가득하다.

“세상을 사로잡은 음식들 안에는 담백함과 단순함이 깃들어 있어요. 저는 이걸 캡슐형 음식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한입에 모든 것이 다 담겨 있죠. 샌드위치나 피자, 만두, 타코, 스시가 다 그렇잖아요. 만들기도 먹기도 편리하면서 한번에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음식들이죠.”

티빙 오리지널 다큐 <푸드 크로니클>을 연출한 이욱정 감독. 티빙 제공

그는 이런 음식들을 손으로 만들 뿐 아니라 주로 손을 써서 먹는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손을 쓰면 빠르고 만족감도 크죠. 도구를 사용하면서 잊었던 음식의 촉감도 되새기게 되고요. 아랍이나 인도 등이 아직도 수식 문화를 고집하는 이유는 그 자체가 엄청나게 다른 쾌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 감독은 음식 자체가 주는 눈과 입의 즐거움뿐 아니라 거기에 담긴 풍부한 의미 체계와 이에 대한 인류학적 성찰까지 보여주고자 했다. 이를테면 스시 편의 제목은 ‘보이지 않는 레이어’다. 스시는 샤리(초밥 밥)와 그 위에 놓은 생선이 레이어의 전부인 것 같지만 그 사이 고추냉이와 밥알을 둘러싼 식초, 설탕, 소금 등이 복잡한 레이어 방정식을 구성한다. 여기에 맛의 체계를 만드는 일본 사회의 레이어도 있다. “일본에서 최고의 스시 장인이 되려면 최고의 생선가게를 만나야 해요. 이렇게 맺어진 관계는 20~30년 이어지지요. 그리고 또 전통 식당 특유의 엄격한 도제시스템이 존재하고요. 스시 한 점에 이 같은 식당 주방과 사회 전체의 역학관계, 인간관계, 신뢰관계가 켜켜이 레이어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죠.” 스시에 일본 사회를 담고 타코에 멕시코인들의 세계관을 넣으면서 음식마다 맛을 넘어서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연결시켰다.

티빙 오리지널 다큐 <푸드 크로니클> 장면. 티빙 제공

이 감독은 <푸드 크로니클>의 모든 장면에서 직접 맛보고 이를 해설한다. 그는 다큐일수록 연출자가 카메라 뒤에 서 있기보다 프리젠터로 나서야 한다는 쪽이다. “국내에서는 다큐 해설은 테마 전문성보다는 인지도 있는 인물을 찾는 경향이 있는데 국외는 그렇지 않거든요. 다큐는 일종의 지적인 탐험이라고 생각해요. 여행자가 이야기꾼이어야죠. 직접 보고 먹고 만진 체험의 스토리를 전달하는 게 더 생생하고 진실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가 이번 작품에서 자신을 ‘스토리텔러’로 소개한 이유다. <푸드 크로니클>은 다음달 8일까지 매주 목요일 새 에피소드를 공개한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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