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원들간의 따뜻한 연대·조화 '참된 사회의 완성' ['장수 박사' 박상철의 홀리 에이징]

조용철 2022. 11. 1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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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헬스
(10) 생명의 질서로 사회질서 이루자
생체분자들이 생명질서를 지키며 사는 바람직한 이상향 사회 '바이오토피아'
현대사회 인간 관계도 공동선 향한 개성 존중·헌신 '생명 도덕률'따라야
격동과 혼돈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온 세상에서 수백만명이 사망하고 우리나라 이태원에서는 수많은 젊은 청춘들이 무참히 희생당하는 참사가 벌어지는 혼돈을 보면서 인류의 공동체적 운명을 생각해본다. 인류가 공동체로서 온전하게 생존하려면 어떠한 질서가 필요할까? 생명체의 질서를 대비하여 생각해본다. 생명을 유지하는 유기적으로 운영되는 과정을 보면 절묘하게 작동하는 장치와 완벽한 기능에 우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온전한 개체로 형태적 완성을 이루는 과정의 엄정한 질서와 개체로서 모든 부분을 총화적으로 빚어내는 생명활동의 무오류성(無誤謬性)의 신비는 생명의 거룩함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구성원 하나하나를 생체분자로 거느리면서 온전하게 생명을 지켜내는 질서를 가진 바람직한 사회를 이상향인 '바이오토피아'라고 정의해 본다. 이러한 바이오토피아가 지향하는 구성원들의 행동규범이 될 사회적 도덕율(道德律)의 근거는 무엇일까. 세상살이에서 원만한 질서를 위해서는 언제나 각 구성원들의 조화로운 참여와 협조가 요구되고 있지만, 살다 보면 그렇지 못한 상황도 많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는 법(法)을 만들었고, 그 근원이 되는 헌법은 공동선이라는 당위성을 가지며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을 포괄하고 있어야 한다. 생명 헌법의 본질도 바로 공동체로서의 운명을 수용하는데 있다. 생체의 부분 부분과 생체분자들이 공동체로서의 온전한 삶을 위하여 존재하고 살아가야 함을 절대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생명을 유지 보수하는데 필요하지 않는 부분을 과감하게 배제하고 형평을 갖추어 유기적인 협력을 하고 있다.

생체분자들의 생성과 소멸, 또는 묶고 풀어 주는 결단이 이미 분자 수준에서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직경이 10마이크론(μ) 정도밖에 되지 못하는 공간에 수만 종의 유전 정보와 수만 가지 서로 다른 생체분자들이 각기 서로 다른 양으로 존재해야 하는 세포 내부 환경에서 생체분자들의 양적·시간적 조율은 공간 활용의 측면뿐 아니라, 생명현상을 영위함에 있어서 필수적 조건이다.

생체분자의 생합성 과정도 중요하지만 활용과 제거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양이 많거나, 쓸모가 없어 더 이상 필요 없는 경우, 세포 내에서 생체분자들은 각종 분해 효소들에 의해 과감하게 제거된다. 그러나 항상 새롭게 만들어내려면 많은 재료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분자들을 필요가 없을 때 완전히 제거해버리기보다 간단한 수식을 붙여서 불활화(不活化)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재활용하는 방안도 가지고 있다. 생체분자의 활성을 저해(沮害)하거나 부활(賦活)하는 제도적 장치도 생체분자를 규제하는 대표적 생명법제 중 하나이다.

특히 중요한 사안의 경우에는 교차결합을 통해 생체분자들을 서로 묶어 버리는 장치를 통하여 생명현상의 방향성을 유지하기도 한다. 이러한 생명현상을 이끌어나가는 행위의 단위인 생체분자들의 양(量)과 활성(活性)에 대한 철저한 규제는 생명법 집행이 엄정함을 보여준다. 그 결과 생명체로서의 의미와 존재 가치는 주어진 공간과 시간에 순응하는 질서를 따르면서 부여된다.

바이오토피아에서는 아무리 자유와 평등의 사회일지라도 공동체적 질서에 순응할 것을 당연히 요구하고 있다. 그러한 방법론에 있어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토마스 모어는 누구나 일정한 노동에 종사해야 하며, 무엇이든지 필요하면 가져다 쓸 수 있고, 서로 만나서 생활할 수 있는 산술적 평등사회를 유토피아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조지 오웰은 '1984년',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를 통해 단순한 평균적 인권이 적용된다면 기계주의적인 사회로 변모되어 큰 혼란에 빠질 것임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한편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는 인간이 모나드(monad 單子)와 같은 존재로 독립가치를 가진다고 주장했다. 모나드 간에는 기계적 평등의 단위나 척도에 의한 관계가 아니고, 각각의 개성을 유지하면서 상호관계를 갖는 대응적 상징적 관계가 맺게 된다. 다만 모나드설에서는 오직 신과의 대화를 통해서만 모나드들이 상호 교류한다는 한계가 있어 신과 인간의 관계가 희석되어가고 있는 현대적 상황에서는 적용하는데 한계가 있다.

바이오토피아에서는 사회구성원 하나하나가 모나드와 같이 대등한 독자성을 가지고 각자의 인권이 보장되고 평등성과 자발성이 인정돼야 하지만 공동체적 삶이라는 공동선(共同善)을 위한 구성원으로서의 당위적 목표와 헌신(獻身)적 참여를 통하여 연계되어야 한다. 이러한 헌신적 참여의 본질이 바로 생명 도덕율이다.

생명 도덕률의 근거는 생체를 구성하는 가장 근본인 분자와 분자간에 흐르는 정(情)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기다렸다가, 만났다가, 헤어져야 하는 모든 과정에 그리워하고 반가워하고 아쉬워하는 정이 없을 때, 그것은 삶이 아니고 생명이 아니다. 생체분자들이 가진 이러한 정을 바탕으로 한 본성의 발현에서 생명체의 모든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고, 정말로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따뜻한 정을 가진 생체분자로서 생체 활성에 참여할 때 무슨 문제가 발생하겠으며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구성원간의 연대와 전체에 대한 단순한 책임보다 근본에 흐르는 살아있는 개체로서의 뜨거운 피와 따뜻한 마음이 사회의 바탕을 이루어야 한다. 바이오토피아에서는 사람과 사람 간의 생명 도덕율에 의한 관계가 정립되어야 한다. 사회의 구성원은 평등하며, 각자는 자신이 맡아야 할 사회적 의무를 자발적으로 성실하게 수행해야 하며, 상호 교류에 있어서 항상 서로 믿고 맡기는 경우에 비로소 바이오토피아의 행복한 세계가 구현되고 구성원 각자가 인권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믿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노력하면 참된 사회가 구현될 것이다. 따라서 참된 사회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각자가 참되려고 노력하는 사회(誠者天之道也, 誠之者人之道也)이어야 한다.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측면에서 생명의 질서가 축이 되어 더 이상 혼돈과 격동이 없는 바이오토피아가 수립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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