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 갖다버리는 것까지 싹 다 먹어주마

2022. 11. 1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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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판 위에서 구워지는 기장 곰장어. 눈이 없고 점액질로 뒤덮인 기이한 모양의 먹장어(곰장어)는 한국사람들만 먹는다. 곰장어는 벗긴 가죽으로 지갑을 만들어 수출하다 남은 살코기를 값싼 식재료로 유통하면서 대중화됐다. 예전에는 싼값에 먹는 안주였지만 지금은 별미의 반열까지 올랐다.
가지런히 썰어낸 외국산 홍어. 뜻밖에 일본과 아이슬란드에서도 홍어를 먹는다.
사진 위부터 알싸한 맛을 내는 홍어찜, 파를 넣어 새콤달콤하게 무쳐낸 골뱅이무침, 콩으로 두부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인 비지로 끓인 콩비지 찌개.

■ 이우석의 푸드로지 - ‘귀한 몸’ 된 허드레 식재료

- 홍어

아르헨 · 칠레 등서 들여와 삭혀

삼겹살 · 묵은지 곁들이면 ‘일품’

- 골뱅이

무침 재료 백고동 대부분 유럽산

파채와 먹으면 달콤하고도 탱글

- 곱창

2000년대이후 인기 타고 고급화

日서도 ‘기름찌꺼기’ 서 ‘요리’ 로

- 먹장어

가죽으로 지갑 만들어 수출하다

부산곰장어 명성얻고 별미 등극

“홍어를 안 묵고 싹 다 갖다버리는 나라(수리남)가 있다니까. 그거 갖고 들어오믄 대박인기라.”

얼마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은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에서 20년간 배를 탄 선원 박응수(현봉식 분)가 친구이며 단란주점 사장이던 강인구(하정우 분)에게 ‘대단한 사업 아이템’이라며 귀띔한 말이다. 박응수 말처럼 수리남에선 싹 갖다버리는 홍어를 우리는 상당한 값을 치르며 구입한다. 이처럼 외국에선 허드레 취급받는 식재료 중 우리나라에선 매우 즐기는 것이 많다.

그런 사정은 국내에서도 마찬가지. 예전엔 그저 버리던 것을 요즘엔 따로 챙겨서 찾는다. 남 주기도 미안해 거저 가져가라던 것이었는데 최근엔 값이 무척 비싸고 귀한 대접을 받는 경우도 있다. 남미의 홍어는 물론, 세네갈 갈치, 영국 골뱅이, 페루 대왕오징어. 국내에선 원래 허드레였던 선지가 대표적이며 거저 줬던 곱창(막창), 먹장어(곰장어), 주워가던 이가 임자였던 시래기와 콩비지 등이 특히 그렇다.

다른 지역에서 헐값인 것을 가져와 현지에서 비싸게 파는 것이 무역의 기본이라지만, 입맛과 식생활이 서로 다른 만큼 아예 버리던 것을 거의 거저 얻다시피 했으니 그 얼마나 좋은 거래였을까. 덕분에 이처럼 비싼 물가 세상 속에서도 소비자들은 그나마 맛좋은 음식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녹록지 않다. 헐값에 가져왔지만 손질은 만만찮아 이에 따른 비용 증가는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 됐다. 예를 들어 곱창은 예전엔 그냥 가져갈 정도로 쌌지만 그것을 받아서 팔려면 품이 많이 들었다. 밀가루로 일일이 곱창을 뒤집어 씻어 내야 했고 하루 종일 앉아서 쪽 가위로 불순물을 잘라내야 하는 것은 주인 내지는 종업원의 일과였다. 인건비가 증가하면서 당연히 곱창은 비싼 음식이 됐다.

수리남에 간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홍어 역시 품이 많이 든다. 대충 실어 보내니 물건을 받고 나면 품이 많이 들어간다. 외국에선 대표적 ‘허드레’ 생선인 홍어는 수리남보다는 아르헨티나, 칠레에서 한국의 홍어와 가장 유사한 품종이 많이 잡힌다. 여기서도 현지인들은 식재료 취급을 하지 않는다. 버리던 것을 멀리 동아시아 대한민국에서 꽤 값을 쳐준다고 찾으니 당연히 모아다 실어 날랐다. 특히 칠레에선 대한민국 홍어잡이 어선의 방식을 배워와 연구하기도 한다고 하니 우리 식문화가 다른 나라 산업 생태계를 바꾼 셈이다.

선도 높은 생물 상태는 아니지만 품종 자체가 비슷하니 외국산 홍어는 삭혀서 팔았다. 삭히는 기술이 좋은 나주 영산포를 들어갔다 오면 얼추 먹을 만한 홍어가 됐다. 홍어와 가오리를 구분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홍어는 가오리상목 중 홍어목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선 정확히 가린다. 세계적으론 생물학자들을 제외하고, 유독 한국인만 이를 구분 짓는다. 홍어 치어는 간재미, 갱개미(충남) 등으로 부르는데 이게 그 홍어인 줄은 잘 모르고 있다.

홍어는 원래는 신안군이나 서해안에서 즐겨 먹던 종이었는데 그동안 남획으로 인해 귀한 어종이 됐다. 게다가 홍어는 알도 많이 낳지 않는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 남미 연안에 살던 종이 한반도까지 실려 오게 된 것이다.

어쨌든 홍어에 대한 진정성을 보유한 대한민국에선 홍어를 여러 나라로부터 수입한다. 특히 비슷한 품종이 서식하는 대서양 칠레,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미국, 우루과이, 캐나다, 스페인, 중국, 멕시코, 일본, 뉴질랜드, 남아공, 앙골라 등 많기도 하다.(정작 수리남은 없다) 전 세계 홍어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한국이라 할 수 있다.

홍어 소비는 한국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일본과 아이슬란드도 살짝 걸쳐있다. 특히 아이슬란드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23일 하루만 전통식으로 ‘삭힌’ 홍어를 구워 먹는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 끝에 자리한 두 나라에서 삭힌 홍어를 먹는 식문화가 각각 발달했다니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나라는 상어도 먹는다. 이것도 삭혀 먹는다. 딱 돔배기다.

대표적 술안주 골뱅이 무침에 쓰는 백고동(물레고둥이)은 국산도 있지만, 유럽에서 온 것이 대부분이다. 포장마차에서 파는 넓적한 껍데기의 골뱅이는 사실 서해안에서 나는 큰구슬우렁이다. 모양도 맛도 완전히 다르다. 골뱅이에게 한국인은 유일한 천적(?)이다. 세계 골뱅이 생산량의 90% 이상이 한국에서 소비된다. 최근 영국인 골뱅이잡이 어부가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골뱅이를 좋아하는) 한국인 덕분에 내가 먹고살 수 있어서 고맙다”고 했다. 영국을 비롯해 아일랜드, 노르웨이 등 북해에서 잡은 골뱅이는 죄다 한국으로 수출하니 고맙다고 할 만하다.

육류도 살코기만 먹는 나라가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살만 발라 먹고 나머진 버리거나 사료로 쓴다. 무슬림의 할랄이나 유대인의 코셔 식습관에는 가축의 피나 내장 등을 먹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 많은 나라의 가축 내장(Intestine)이 한국으로 들어오며 곱창(chitterlings)으로 변신한다. 물론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 유럽권에서도 곱창을 요리로 즐겨 먹는다. 소시지의 케이싱으로 쓰기도 한다. 다만 우리처럼 곱창을 지글지글 직화나 번철에 구워 먹는 방식은 거의 없다.

재일교포의 식문화 전파로 일본 정도나 우리 식으로 곱창을 먹는다. 그나마 처음부터 ‘버리는 것’(放る物·호루모노)이라 이름을 붙였다. 요즘도 곱창을 호루몬야키(ホルモンやき)라 한다. 심지어 오사카(大阪) 부락민들이 먹던 곱창요리는 아부라카스(あぶらかす)라 부른다. 이름 그대로 기름찌꺼기란 의미다. 이처럼 버리던 기름찌꺼기가 단숨에 인기 요리가 됐다. 호루몬야(ホルモン屋)나 야키니쿠집(燒肉屋)에선 곱창과 양대창구이를 판다. 일본 음식점을 소개하는 채널엔 수시로 야키니쿠집이 나오고 ‘버리는 것’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곱창의 저변이 폭넓게 형성되기 이전인 1980년대엔 그리 인기가 없었다. 냉장이 생략된 유통과정인 터라 냄새도 많이 나니 도축장 관계자나 알만한 사람만 챙겨 먹던 부위다. 마장동에 가서 고기를 사면 곱창을 거저 준다고도 했다. 다듬는데 손이 워낙 많이 갔지만 가져다 구워 팔면 그럭저럭 돼지고기 값은 받았더랬다.

갑자기 곱창의 인기가 폭발한 건 2000년대 들어서다. 곳곳에 곱창집이나 양대창 구이집이 문을 열었다. 돈이 없어 못 먹지 식성 탓에 양곱창을 물리는 이도 주변에 드물게 됐다. 연기를 풀풀 날리던 남루한 곱창집은 깔끔한 갈비집 가든 못잖게 변신하고, 곱창을 질겅질겅 씹으며 연신 소주잔을 들이켜던 아저씨 자리도 화사한 차림의 젊은 남녀가 대신했다. 이른바 곱창 전성시대가 온 것이다. 덕분에 요즘 한국에는 외국산 소 곱창과 양깃머리, 돼지 막창이 밀려든다.

이뿐일까. 눈이 없는 생김새에 점액투성이, 잘라내도 계속 꿈틀대는 생명력으로 세계적으로 괴물 취급을 받는 먹장어(곰장어). 이 기이한 먹장어도 한국인만 반색한다. 워낙 많이 찾는 까닭에 요즘은 먹장어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일본과 대만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한국에서만 즐기는 식재료가 먹장어라 그렇다. 전 세계에서 잡힌 먹장어는 그대로 한국으로 직행한다.

사실 먹장어가 인기를 끈 것은 부산의 피혁 산업에 기원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부산에선 먹장어를 잡아다 그 가죽으로 지갑을 만들어 수출했는데, 이때 남은 살코기를 값싼 식재료로 유통했다. 요즘도 먹장어 피혁 제품은 고급 취급을 받는다. 전국의 포장마차에 공급된 먹장어는 쫄깃하고 탱글탱글한 맛이 한국인의 입맛에 맞았는지 아예 별미의 반열에 올랐다. ‘부산 곰장어’로 명성을 얻고 나선 산채로 유통되기에 이르렀다.

소의 피도 마찬가지다. 소고기는 비싸지만 선지는 저렴하다. 살코기는 외국산을 써도 단가가 만만찮지만 해장국 거리로 끓이기 좋은 국산 소 선지는 1㎏에 3600원에 불과하다. ‘싼게 비지떡’ 두부를 만들고 남은 콩비지 역시 예나 지금이나 허드레 취급을 받아왔지만 좋아하는 이가 많다. 단백질을 추출해 낸 비지에는 영양가가 거의 없다. 대신 섬유질이 많아 다이어트에 좋다. 사료로 쓰던 비지가 저칼로리 음식으로 각광 받으며 찌개, 죽, 떡, 빵 등 다양한 요리로 개발되기도 한다. 외국에선 채식주의 대체육의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천하의 보잘것없던 허드레가 오히려 각광 받고 있는 세상이니 사람 일이란 것도 모른다. 지금은 힘든 일을 겪고 있을지라도, 기다리면 언젠가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을 밥상을 들여다보면 알게 되지 않을까.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오미락 = 홍어. 수리남에선 버리지만 목포에선 많이도 즐긴다. 하당에 있는 향토음식점이다. 알싸한 묵은지의 맛을 두툼하고 부들부들한 돼지 삼겹살로 감싸 안아 주는 어우러짐, 즉 삼합이다. 삭힌 것이 두렵다면 삭히지 않은 대신 차진 식감의 홍어를 달라면 된다. 전남 목포시 평화로101번길 7 1층. 5만 원. 흑산홍어 10만 원.

△장호왕곱창 = 곱창. 내포와 김치찌개로 유명한 집이지만 상호대로 오랜 곱창집이다. 잘 손질한 곱창을 마늘, 김치, 파와 곁들여 알루미늄 포일에 올려 익혀 먹는 예전 스타일이다. 양대창 모둠을 주문하면 두툼한 막창과 잘라서 펼친 대창, 벌집양까지 한 번에 내온다. 특제 소스가 고소한 곱창 맛을 살려준다. 서울 중구 서소문로 83. 2만5000원. 양대창 모둠 2만 원.

△대성골뱅이 = 골뱅이. 이른바 ‘무교동 골뱅이’다. 쫄깃한 골뱅이를 고춧가루를 뿌린 파채와 함께 먹는 스타일이다. 맥주를 깔아놓고 한 점씩 집어먹는 골뱅이가 달콤하고 탱글탱글하다. 파채의 매콤한 맛이 느끼함을 가라앉힌다. 북어채나 스팸을 넣으면 그럴싸한 요리가 된다. 서울 중구 을지로1길 47. 2만3000원. 3만 원.

△풍성식당 = 선지. 해장국 전문점이다. 메뉴가 달랑 ‘해장국 1, 2, 3’이다. 첫 번째는 양선지 해장국 스타일, 두 번째는 제주도 해장국, 3번은 소고기 해장국 스타일. 취향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다. 모든 메뉴에 잘 삶아낸 선지가 들어가 있다. 식감이 쫄깃하니 우거지나 시래기, 콩나물 등 푸성귀의 아삭함과 어울린다. 속 시린 이들이 아침부터 모여든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신원로 40-46. 9000원부터.

△공평동꼼장어 = 먹장어. 저녁쯤이면 종각 건너 조계사 가는 길에 연기가 풀풀 날린다. 숯불에 먹장어가 익어가는 풍경이다. 고소한 먹장어를 소금구이와 양념구이로 낸다. 쫄깃한 식감과 탁 터지며 뿜어내는 육즙이 과연 명불허전이다.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29. 1만3000원.

△다락방분식 = 비지, 볶음밥, 찌개, 카레 등 가정식으로 분식을 차려 내는 밥집이다. 콩비지 찌개가 있다. 얇게 썰어 말린 무와 배추 우거지가 들어있어 부드러운 비지와 잘 어울린다. 상호는 ‘다락방’인데 지하에 있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9길 10.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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