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신용 경색, 금리 급등 ‘삼각파도’… 부동산 PF발 대란 오나?
리먼쇼크급 위기 재연 가능성
2008년 금융 위기 - 집값 급락, 미분양 급증
100대 건설사 중 45개 구조조정… 저축은행 30개사 문 닫아
금리 급등 위기론 - 자재값, 금리 인상 직격탄
그룹 건설사도 유동성 위기, 미분양 연말엔 7만가구로 급증
어떤 대책? - MB 정부, 파격적 규제 완화
現 정부, 단계적 대책 발표… 전문가 “선제적 대책 필요”
집값이 급락세로 돌아서면서 아파트 미분양이 급증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 급등에 금리 인상과 신용경색까지 겹치면서 주택업계는 ‘2008년 금융 위기’의 재연 가능성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부동산 대출과 관련해 30여 개 저축은행이 문을 닫았고 시공능력 100대 건설사 중 45사가 자금난으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부도 등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미국발 금리 인상 여파로 이미 상반기부터 부동산 PF 대출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다. 강원도의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를 계기로 5대 그룹 계열 건설사조차 회사채 발행에 실패했다. 유동성 위기가 주택업계를 넘어 제2 금융권으로 확산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부도 예상 건설사 리스트가 나돌고 있을 정도이다.
김선덕 전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은 “연말 연초에 미분양이 7만가구를 넘어서면서 건설사와 제2금융권 연쇄 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종대 주택산업연구원 대표는 “중소 주택업계는 벌써 자재 가격 인상, 신용경색, 미분양 등 3중고로 빈사 상태에 빠졌다”면서 “전후방 산업 연관 효과가 큰 주택시장이 얼어붙으면 내수시장도 극도로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쇄 부도 촉발시킨 미분양
2008년 집값 폭락으로 인한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미국 금융 위기 영향으로 한국에서도 ‘주택 가격 급락→미분양 급증→건설사 자금난→건설사와 저축은행 파산’으로 이어졌다. 당시 집값이 급락하면서 미분양 주택이 16만5000여 가구까지 급증했다. 자금 회수가 되지 않아 중견 건설사와 부실 부동산 PF 대출이 많았던 저축은행의 연쇄 부도가 발생했다.
당시와 단순 비교하면 아직 주택시장 경착륙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 미분양은 급증 추세이지만 4만1600가구(9월)로 금융 위기 당시와 비교하면 아직 여유가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원유, 곡물 가격 급등이 초래한 초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미국발 금리 인상이 내년 상반기부터는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부동산 시장은 폭락 국면이 아니다. 50% 올라서 6% 떨어졌다”고 말했다.
◇잠재위험, 금융위기보다 더 커
그러나 잠재적인 위험 요소는 금융 위기 때보다 더 크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우선 PF 대출의 증가이다. 2008년 76.5조원에서 올해 6월 말 112.2조원으로 늘어났다. 대출 심사가 엄격한 은행권은 52.5조원에서 28.3조원으로 대폭 줄었지만 부실 가능성이 큰 제2 금융권의 여신전문금융회사와 보험사의 PF 대출 잔액이 2008년 말 9조6000억원에서 올해 6월 70조원으로 폭증했다.
가계 부채도 금리 인상에 취약하다. 가계 부채 잔액이 2008년 683.6조원에서 작년 말 1862.1조원으로 늘어났다. 2021년 가계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207%로 2008년(138%)을 크게 상회한다. 미국 금리 인상 영향으로 한국의 대출금리가 내년 최고 8~9%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2011년 부동산 보유 가구의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DSR) 부담은 평균 19% 수준이었지만 작년 말 27%로 높아졌다”면서 “집값 폭등기에 이른바 영끌한 젊은이들이 고금리를 감당하지 못해 집을 던지기 시작하면 상황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주택담보대출도 미국은 고정금리가 대부분이지만 한국은 변동금리이다.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대형 건설업체들도 금융 위기 당시만 해도 해외, 토목 및 건축, 주택 매출이 균형을 이뤘다. 하지만 현재는 주택 매출 비율이 70% 전후여서 미분양 증가 등 주택 경기 침체에 취약하다.
◇본격적 연착륙 대책 나올까
금융 위기 당시 건설사 연쇄 부도의 방아쇠를 당긴 미분양의 증가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다. 현재 미분양 가구수는 4만1600가구이지만 1년 전과 비교하면 미분양이 3배로 늘었다. 금리 상승과 주택 가격 하락세가 지속되면 미분양 주택이 연말 7만 가구, 내년 상반기 중 10만 가구 돌파도 가능하다.
정부는 최근 지방의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를 해제한 데 이어 1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비율 LTV를 50%로 완화했다. 정부도 주택 가격 급락을 막기 위한 연착륙으로 주택정책 방향을 틀고 있다. 다만 건설업체 부도율이나 미분양 물량이 ‘위기 수준’이 아니어서 본격적인 부양 대책을 내놓는 데는 주저하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이명박 정부는 미분양 주택 양도세 감면, 재건축 규제 완화, 종부세 완화, 공공기관의 미분양 주택 매입 등 파격적 부양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서종대 대표는 “금융 위기 당시에는 금리 인하와 돈 풀기 정책으로 조기에 위기 극복이 가능했다”면서 “지금은 금리 인하, 재정 지출 확대가 어렵기 때문에 더 선제적으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재건축부담금 부과 유예나 안전진단 합리화와 같은 묵혀둔 규제 완화를 서둘러야 한다”면서 “주택 공급이 급락하는 것을 막고 임대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다주택자들의 임대사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 개편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문도 연세대대학원 겸임교수는 “무조건적 지원보다 PF 사업의 건전성을 따져 선별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尹정부 5년간 270만호 공급 계획 ‘공염불 위기’]
신용 경색에 착공 물량 26% 급감… 민간 주도 공급 계획 수정 불가피
윤석열 정부는 규제 완화를 통해 민간 위주로 5년간 270만가구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주택 가격 하락과 부동산 PF 대출 시장이 마비되면서 주택 착공이 오히려 급감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1~ 9월 주택 착공 실적은 전국 29만4059가구로, 전년 동기 대비(39만7657가구) 26.1% 감소했다. 반면 전국 주택 인허가 물량은 38만200가구로, 전년 동기 대비 5.9% 증가했다. 지방의 인허가 물량은 전년 동기(17만5121가구) 대비 41.8% 늘어난 24만8361가구이다. 서종대 주택산업연구원 대표는 “미분양이 많은 지방은 인허가를 받았지만, PF 대출을 받지 못해 착공이 급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민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 교수는 “민간주택시장의 연착륙을 위해 기존의 수요 억제 정책과 재건축 등 공급 관련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서 고금리와 자금 시장 경색으로 인한 주택 공급 중단과 미분양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민간 기업의 유동성 위기가 심화되고 있어 민간 주도의 공급 계획도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할 때 사업성을 기반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기법. 보험, 증권사,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이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어 공격적으로 대출을 늘렸다. 하지만 미분양이 급증, 원금 회수가 어렵게 되자 최근 PF 대출은 사실상 중단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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