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노력보다 체력 보존 택했다”... 봉화의 기적 이끈 생존 매뉴얼

봉화/이승규 기자 2022. 11. 6.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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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3대원칙 지켰다… ①체온유지 ②물·영양소 확보 ③생존의지
광부들 생존 비결은 ‘매뉴얼대로 행동’
지하수·공기 있는 공간 찾아 대피
비닐텐트 치고 어깨 맞대며 보온
구조대원 등 1145명 합심, 기적 일궈
軍 천공기 등 총 68대 장비 투입
날마다 30~60m씩 진입로 뚫어
탈출했던 5명도 다시 들어가 구출

경북 봉화군 아연 광산의 갱도 붕괴로 고립됐던 박정하(62)씨와 박모(56)씨는 4일 밤 생환(生還)하기까지 지하 190m에서 221시간을 버텼다. 그들은 생존 매뉴얼을 따라 행동했고 이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소방 등 연인원 1145명이 투입된 구조 작업과 맞물려 기적을 일궈냈다. 1145명 중에는 이번에 광산 매몰 사고가 발생했을 때 탈출했던 동료 광부들도 있었다.

지난 5일 오후 경북 안동병원에서 봉화 광산매몰 생환 광부 박정하(오른쪽) 씨가 보조작업자 박 모씨와 대화를 하고 있다. 2022.11.6/연합뉴스

지난달 26일 오후 6시쯤 봉화 아연 광산의 제1 수직 갱도 지하 30여m 지점에서 토사 900t이 아래로 쏟아졌다. 당시 작업자 7명 중 비교적 지상에서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5명은 탈출하거나 구조됐다. 하지만 수직 갱도의 바닥인 지하 190m 지점에서 광석을 캐고 있던 작업 조장 박정하씨와 보조 작업자 박모씨는 고립됐다.

지상으로 가는 출입 통로가 막힌 상태에서 이들은 고립 초반 탈출구를 찾아 갱도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괭이와 화약 등을 이용해 막힌 구간을 뚫는 시도도 했다. 하지만 곧 ‘생존 전략’을 바꿨다. 조장 박씨는 “(체력 보존을 위해) 포기할 거면 빨리 포기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이들은 매뉴얼에 적힌 대로 물이 흐르고 공기가 통하는 넓은 공간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광산의 생존 매뉴얼은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식수와 영양소 공급, 체온 보존, 생존 의지 등 3가지 요소가 공통적으로 담겨 있다고 한다.

지난 4일 경북 봉화군 아연 광산에서 구조대원들이 고립된 작업자 구조를 위한 진입로를 만들기 위해 굴착 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들은 지하 190m 깊이 제1 수직 갱도 내 최초 작업 지점 인근에 임시 비닐 텐트를 설치했다. 매뉴얼 수칙대로 지하수가 흐르고 공기가 통하는 넓은 공간이었다. 지난 4일 광부들의 생존을 최초로 확인한 구조 당국 관계자는 “작업자들이 발견된 공간은 100㎡(약 30평) 정도로 상당히 넓었고 마치 여러 갱도가 만나는 ‘인터체인지’ 같았다”고 했다.

이들은 모닥불도 피워 체온을 유지했다. 광산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박씨 등이 머물렀던 갱도 내부의 온도는 영상 14도 정도였다. 구조 당국 관계자는 “처음 발견됐을 때 이들은 서로 어깨를 맞대고 체온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들은 9일 가운데 3일은 커피 믹스를 나눠 마시며 영양소를 공급했고 이후부터는 갱도 천장에서 떨어지는 지하수를 모아 마셨다. 탈출이 여의치 않게 된 상황에도 박씨 등은 기다리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생존 의지를 놓지 않았다.

정부와 지자체 및 광산업체도 한마음으로 구조 당국을 구성해 구조에 힘썼다. 경북도에 따르면, 이번 구조 작업에 투입된 인원은 연인원 1145명이며, 시추기 11대 등 장비는 총 68대다. 이번 구조 작업은 산자부·소방 당국·군부대·광산 업체·민간 시추 업체·전문가 등 각계각층에서 힘을 모았다. 산자부 산하 동부광산안전사무소에서 총지휘를 맡고, 민간 시추 업체·군부대 등에서 생존 신호와 대피 지점 등을 확인하기 위한 시추 작업을 했다. 동시에 작업자들을 구하기 위한 구조 진입로 확보를 산자부와 광산업체 A사 등 광산구조대, 소방 당국 등이 맡았다.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시추대대는 병력 24명과 천공기 등 장비 15대를 구조 작업에 투입했다. 당시 육군 장병들은 지름 150~200㎜ 천공기 3대로 대피 예상 지점 3곳에 시추 작업을 벌였다. 국방부 소속 천공기는 당시 투입된 민간업체 측 천공기보다 지름이 2~3배 더 컸다. 산자부 관계자는 “고립된 작업자들이 들었다는 발파 소리는 아마 작업 규모가 컸던 국방부 천공기 소리로 추측된다”며 “이 천공기 작업 덕에 작업자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산자부는 한국광해광업공단과 광산 업체 A사 및 타 지역 광부들로 구성된 광산구조대를 꾸려 진입로를 확보했다. 구조대에는 박씨 등과 함께 매몰됐다 탈출하거나 구조된 인부 5명도 투입됐다. 고립된 작업자들을 가장 먼저 발견한 것도 A사 측 동료 직원이었다. 이들 광산구조대는 폐쇄 갱도인 제2 수직 갱도 지하 140m 지점에서 고립된 작업자들이 있는 지점까지 총길이 325m의 진입로 확보 작업을 했다. 발파 작업, 암석 운반 작업 등을 통해 9일간 매일 30~60m씩 폐갱도를 파내가며 진입로를 확보해 박씨 등을 찾아냈다. 소방 당국도 진입로 확보 작업을 함께했다.

백경동 동부광산안전사무소장은 “시추 초기 지점을 잘못 잡아 시추 작업이 실패하기도 하고 작업 중 낙석이 떨어지는 등 구조대원들이 위험한 상황도 있었다”며 “모두가 포기하지 않고 작업을 진행한 결과 221시간의 기적을 맞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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