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경찰 온 건 처음 봐요”…한국시리즈 열린 고척돔 구일역

장현은 2022. 11. 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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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고척돔 인파 몰리는 1호선 구일역
역무원 3명이 1만6천명 안전 담당
이태원 참사 뒤에야 경찰 배치
4일 구일역 승강장에서 역무원이 혼잡한 역내를 정리하고 있다. 채반석 기자 chaibs@hani.co.kr

“이전에도 여러 콘서트와 경기들이 있었지만, 경찰이 온 건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이렇게만 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매일 이렇게 지원을 해줄 것도 아니잖아요.”(구일역 역무원 이민호(47)씨)

4일 저녁 6시30분 서울 지하철 1호선 구일역.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리는 2022 신한은행 SOL KBO 한국시리즈 3차전을 보기 위해 1만6천여명의 관객이 몰리면서 지하철역도 인산인해를 이뤘다.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해 경찰은 기동대 200명을 포함해 250명을 고척돔과 구일역 인근에 배치했다. 코레일 직원도 10명 이상이 지원을 나왔다. 하차 승객이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을 한 줄로 내려가도록 경찰이 각 구역에서 통제를 하고, 구일역 출구에서 고척돔으로 가는 횡단보도에만 경찰 5명이 통제에 나섰다. 오후 10시30분 경기가 종료된 후 한꺼번에 나오는 관중들도 몰리지 않도록 일정 인원을 횡단보도에서 한 번, 개찰구에서 한 번 통제해 적정 인원만 역 안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이태원 참사 직후인 이날 구일역 풍경은 여느 때와 많이 달랐다. 김세은(24)씨는 “거의 매년 야구장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경찰이 많은 건 처음인 것 같다”며 “구일역은 역도 작고 평소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항상 역무원분들만 나와 안내하시는 걸 봐 왔다”고 말했다.

역무원 이민호씨는 이태원 참사를 보면서 구일역을 떠올렸다. 지금껏 운이 좋았던 것일뿐 구일역은 늘 위태위태했다는 것이다. 현재 구일역에는 일근(교대조가 아닌 오전 9시~오후 6시 근무) 직원 1명과 본사에서 추가 배정해준 1명, 3인1조 3개조 9명 등 총 11명이 근무를 한다. 사실상 3인1조가 구일역의 안전을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 특히 고척돔이 생긴 뒤 야구 경기나 콘서트 등이 있는 날은 퇴근도 휴일도 없이 비상 근무다. 근무조 외에 휴일 근무하는 직원도 출근을 하고, 지원을 요청해서 인근 역에서 4∼5명 지원을 나오기도 하지만 턱없이 부족상황이다. 역무원들은 지하철이 한 번 정차할 때마다 밀려 나오는 사람들에게 “출구가 매우 혼잡하오니 천천히 이동 부탁드립니다”라는 안내 멘트를 반복하며 소리를 질러야 한다. 소수 역무원이 한꺼번에 구일역으로 쏟아지는 최대 1만6천여명 관중들의 안전 귀가를 책임지고 역을 통제를 해야 한다.

지난 2018년 6월 고척돔에서 열린 콘서트가 끝난 뒤 구일역 역무원이 안전 관리 및 안내를 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 제공

이씨는 “지난 6월에 있던 콘서트에는 5000명 정도가 몰렸는데, 그때는 다른 역에서 지원을 받지도 못하고 3명이서 근무를 했다”며 “한 명은 입구를 통제하고 한 명은 안내 방송을 하고…그렇게 하다보면 (반대편) 인천행 구간은 그냥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태원 참사는 대규모 인파가 위험한 걸 알고 있었고, 지원 요청을 했는데도 안 해줬다는 점에서 예견된 참사”라며 “저희 역이 아니라 이태원이란 차이가 있을 뿐, 상황은 똑같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안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서울행 열차 탑승구의 10-4 구간은 계단과 가까워 항상 사람이 몰린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몰려들고, 7∼8명이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일 뻔하는 위험천만한 상황도 거의 매일 겪는다. 스크린도어가 없는 구간에 급행 열차가 들어오는데도 인력이 없어 관리에 나서지 못할 때도 있다. 이씨는 안전 관리를 위해 인력 충원을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매번 묵살됐다고 말한다.

이씨는 근본적인 인력 충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구일역은 서울행과 인천행 4개선이 2층에 걸쳐 있는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 많은 관리 인력이 필요하다. 평소 업무도 많은 데다 코로나19 거리두기 해제 이후 고척돔 행사가 폭증했지만, 인력은 오히려 그 전(12명)보다 적다. 지금은 근무자 3명 외에 퇴근자와 휴일 역무원, 다른 역 퇴근자 등이 추가 비상 근무를 하면서 구일역 질서유지를 하는 실정이다.

정명재 전국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장은 “제2의 이태원 참사가 터진다면 구일역일 가능성이 높다”며 “안전 관리를 위해 평소에도 그렇게 인력을 요청했지만 묵살 당했는데, 큰 참사가 있고 나서야 이렇게 배치해줬다”고 말했다. 한국철도공사는 <한겨레>에 “수도권 전철역의 근무 인원은 열차 이용객과 역사의 규모에 따른 기준에 의거 배치하고 있다”며 “특정일 행사 등으로 이용객의 급증이 예상되면 해당 본부와 관리역 직원이 지원할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 6월 고척돔에서 열린 콘서트가 끝난 뒤 인파가 구일역으로 몰려들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 제공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날 고척돔과 구일역 현장을 방문했다. 오 시장은 <한겨레>에 “현장 혼잡도 등을 살피러 왔다”며 “(구일역 인력 충원은) 서울시의 영역이 아니라 철도공사의 영역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보여주기식’ 안전 관리가 단기성이 아닐지 우려한다. 친구들과 야구 경기를 관람하러 온 박상아(36)씨는 “(한줄씩 내려 가라고 안내를 해서) 조금 늦더라도 비교적 안전하게 역을 빠져나온 것 같다”며 “이태원 참사로 안전관리를 강화한 것 같은데, 얼마 안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지속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척돔에서 오늘(5일) 열리는 한국시리즈 4차전도 1만6300석이 매진됐다. 오는 26일에는 멜론 어워드 행사, 30일에는 마룬파이브 공연이 예정돼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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