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침체로 커지는 PF 부실 우려… “‘부동산 연착륙’ 방안 더 필요” 목소리도
“고금리·DSR에 연착륙 방안 효과 어려워”
신용공여 규모 커진 증권가 PF 리스크 노출
정부가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위기를 막는데 사활을 걸고 있는 가운데, 부동산 경기가 계속 악화하면서 아예 PF 부실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기 시작했다. 정부가 내놓은 일련의 ‘부동산 연착륙’ 방안이 시장에 먹혀들지 않는다면 생길 수 있는 일인데, 신용보강에 나섰던 여의도 증권가를 중심으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부동산 규제를 더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PF 부실, 건설사보다 증권사가 더 위험하다” 의견 ‘솔솔’
4일 건설·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내 5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가 연말까지 95조원 규모의 금융 지원에 나서기로 한 배경에는 기업어음(CP) 금리 상승과 회사채 시장의 불안 지속이 있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다르면 지난달 25일 기준 각각 4.45%, 5.528%였던 CP(91일), 회사채 AA-(무보증 3년) 금리는 이달 1일 기준 4.67%, 5.486%로 더 올랐다.
강원도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로 단기 자금시장이 경색되면서 초반에는 건설사들의 자금난에 대한 우려가 부각됐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해당 신평사 유효 등급을 보유한 17개 건설사의 PF 우발채무 총규모는 15조8000억원이다. 2018년 말 13조5000억원 대비 17% 증가했다. 건설사별로는 롯데건설, 태영건설, HDC현대산업개발, GS건설, 대우건설의 PF 우발채무 부담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건설사보다는 여의도 증권가를 중심으로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10년 전에는 중견건설사들이 PF 부실을 시작으로 부도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신용보강 주체가 증권사가 됐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시행사의 신용보강 대부분을 건설사가 지원해 토지비부터 총 사업비까지 연대보증으로 책임졌다. 하지만 2009~2011년 금호, 벽산, 월드 건설 등 중견건설사들의 워크아웃을 겪은 뒤 건설사들이 보수적인 신용공여 행태를 띄기 시작했다. 시공사가 정해진 기간내 공사를 완료할 의무를 부담하는 ‘책임준공’ 형태로 시행사와 신용공여를 맺으면서 최대손실이 시공비에 국한됐다.
이후 정비사업이 활황을 보이자 신용공여의 몫을 증권사가 지기 시작했다. 2013년 10조원대에 불과했던 증권사의 PF 채무보증액은 올해 3월말 24조6675억원으로 치솟았다. PF대출 연체율도 2019년 1.9%에서 올해 3월말 4.7%로 올랐다.
반면 건설사의 PF 대출 잔액은 크게 줄었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현대건설, DL이앤씨, 대우건설, GS건설사 등 3대 건설사 합산 PF대출 잔액은 3조4000억원으로 2008년 12조8000억원 대비 27% 수준에 그친다.
시장관계자들은 부동산 침체기가 지속돼 궁극적으로 정비사업이 지체되거나 멈추게 되면 결국 PF 부실로 이어져, 증권사가 부담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박세라 신영증권 연구원은 “정비사업은 사업시행인가 또는 관리처분인가 단계에서 수주·매출 인식이 되기까지 2년 이상 소요된다”면서 “지금은 PF사업의 주된 신용보강 주체가 시공사에서 금융회사로 전환된 상황”이라고 했다.
◇대책에도 채권 불안세 여전… ‘부동산 침체’ 지속시 PF 또 위기
과거 경험을 보면 PF 위기는 전반적인 부동산 시장 침체로부터 조짐을 읽을 수 있다. 문제는 가파른 금리인상의 여파로 매매·전세가 동시에 하락하고, 미분양이 느는 등 부동산 시장이 사실상 침체 국면에 진입한 모양새라는 것이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10월 마지막 주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보다 0.34% 하락했다. 2012년 6월 11일(-0.36%) 이후 10년 4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 폭이자 5월 마지막 주 이후 5개월째 하락세다. 전셋값도 내리막이다. 전국(-0.37%), 수도권(-0.51%), 지방(-0.24%), 서울(-0.43%) 모두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여기에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9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총 4만1604가구로, 전월(3만2722가구) 대비 27.1%(8882가구) 증가했다.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자 정부도 대책을 내놨다. 이른바 ‘부동산 연착륙’ 방안이다. 국토교통부와 금융위원회는 지난 달 27일 ▲청약당첨자 기존주택 처분기한 6개월에서 2년으로 연장 ▲중도금 대출보증 12억원 이하 주택까지 확대 ▲이달 중 규제지역 추가 해제 검토 ▲무주택자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상향 ▲15억원 초과 아파트 주택담보대출 허용 등을 포함한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금리가 여전히 가파르게 오르는데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현수준으로 유지하는 경우 부동산 연착륙 대책이 먹혀들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전배승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높아진 금리 수준과 강화된 DSR 등을 감안하면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긴 힘들다”면서 “PF 리스크가 지속되며 자금시장 불안이 커질 경우 궁극적으로 금리인상 속도에 대한 고민을 해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금리인상으로 인한 긴축 조치가 대출경로로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추가로 규제 완화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가계에 대한 DSR 규제와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의 고금리 상황에서는 규제 완화를 한다 하더라도 2~3년 전과 같은 대출 수요가 작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오히려 적기라는 시각이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정부가 연착륙 대책을 내놓은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고금리 상황에서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면서 “DSR을 완화해 적정 수준의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야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지금의 규제들은 가격이 급등할 때 이를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라면서 “지금처럼 시장이 경색돼 있을 때는 정상화 차원에서 규제를 모두 푸는게 좋다”고 했다. 그는 이어 “다주택자 규제도 일부 완화해 투자가 임대차 시장의 공급 등 순기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연이은 규제 완화책이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최상엽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가계가 ‘부동산 연착륙을 위해 규제를 푸는구나’ 라고 정부의 의도를 읽게 되면서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을 키울 수 있다”면서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낮은 상황에서는 기본적으로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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