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코, 싸이, 도끼 키운 힙합 1세대 조PD…근황은

신수현 2022. 11. 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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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훈 초코 엔터테인먼트 대표 인터뷰

1998년 PC통신에 자작곡 올려
일주일 만에 다운로드 10만 돌파
파격적인 가사·랩으로 스타 등극

2004년 인순이와 부른 ‘친구여’
인기 끌며 국민 래퍼로 유명해져

2019년 초코 엔터테인먼트 설립
올해 시각특수효과 기업도 인수
“내년 초 미국서 아이돌 데뷔”
조중훈 초코 엔터테인먼트 대표

PC통신(전화 인터넷 접속을 이용해 컴퓨터 간 통신) 시대였던 1998년 10월. PC통신 자료실에 파격적인 가사와 랩으로 섞인 음악 ‘브레이크 프리(Break Free)’가 올라오며 가요 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올라오자마자 1020세대 특히 남자들에게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며 브레이크 프리는 일주일 만에 1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다. PC통신을 통해 음원이 공개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 같은 파격 행보를 벌인 사람은 당시 만 22살이었던 조PD(본명 조중훈)였다.

음반 제작사들은 앞다퉈 도대체 조PD가 누구냐며 그를 찾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가수들이 무대를 통해 데뷔하는 것과 달리 조PD는 PC통신을 통해 데뷔해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러 한국 음반 제작사들이 조PD에게 같이 음반을 내자고 제안했다. 조PD는 덜컥 음반을 내는 대신 그해 겨울 기획사 ‘스타덤’을 설립했다. 음반 제작사와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후 옛 예당음향과 지분 50대 50으로 벤처회사를 설립해 1~3집까지 냈다. 조PD는 첨단 그래픽 등을 접목해 시각적인 효과가 뛰어난 획기적인 뮤직비디오, 사회를 비판하는 가사와 랩 등 자신만의 음악 스타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그는 무대에 서는 것보다 음악 등을 기획하고 만드는 프로듀서로 활동하는 것에 더 흥미를 느껴 음반을 내도 대중 앞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2004년 가수 인순이 씨와 함께 불렀던 ‘친구여’가 수록된 5집 앨범을 발표했는데, 이 곡이 엄청난 히트를 치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조PD는 블락비, 싸이, 이정현, 도끼, 탑독 등 많은 가수를 발굴하고 키운 천재 프로듀서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힙합 1세대이자 힙합 대중화에 기여한 그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조PD를 만나 근황,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봤다.

-과거 이야기 먼저 해보려고 한다. 1998년 10월 PC통신에 어떻게 음원을 올릴 생각을 했는지.

당시 자작곡 8곡을 발표할 생각이었다. 곡에 랩이 많거나 가사에 욕설이 있어서 음반사에서 음반을 내주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 시절에는 그랬다. 대중에게 직접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그 방법이 PC통신에 자작곡을 올리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인터넷 속도가 매우 느려서 음악 1곡을 다운로드 받는 데만 반나절 걸렸다.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네 집에서 사용하는 인터넷 속도가 빨랐다. 친구네 집에서 음원을 올렸다. 공식 앨범은 1999년 1월 발표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록 밴드 활동했다고.

▷음악을 워낙 좋아해서 중학생 때부터 록 밴드 활동을 했다. 그때는 음악인으로 살게 될 줄 전혀 몰랐다.

-세계적인 명문대로 꼽히는 미국 버클리 음악대학을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중학교 3학년 때 홀로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제 의지였다. 뉴욕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1995년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입학해 디자인 마케팅을 공부했다. 당시 부모님께서 의류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남으로서 의상 디자인을 배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1997년 대학교 3학년 때 음악을 만드는 일에 전념하고 싶었다. 한창 유학 중이던 1997년 외환위기(IMF)가 발생하면서 환율이 급격히 오르자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게 뭘까, 뭘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중학생 때부터 꾸준히 해왔던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즐거우면서 돈도 벌 수 있는 길이라고 깨달았다. 1998년 여름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그만두고 버클리 음대에 들어간 이유다.

-1999년 발표한 조PD 2집 수록곡 ‘피버(Fever)’에 가수 이정현 씨가 피처링했다. 이때 이정현 씨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고, 솔로 앨범도 내기 전이었다. 어떻게 이정현 씨를 알아보고 피처링에 참여하게 했나.

▷당시 이정현 씨 데모 테이프를 받았는데, 그 음악을 듣고 이정현 씨가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 이정현 씨는 배우였지만 가수가 되고 싶어 했다. 음악에 대한 열정, 재능이 있어서 같이 작업하게 됐다.

이정현 씨가 같은 해 1집을 발표했는데, 그때 여러 곡을 써달라고 요청해왔다. 이정현 씨 솔로 1집 수록곡인 ‘아이 러브 엑스(I Love X)’만 작곡했다.

-가수 싸이의 첫 인상은.

▷싸이를 처음 만난 것은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인 고등학생 때였다. 싸이도 미국 유학생이었다. 싸이를 만난 날 지인들, 그리고 싸이와 같이 노래방에 갔다. 싸이가 노래를 불렀는데 너무 놀랐다. 싸이 콘서트인 ‘흠뻑쇼’에 가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흠뻑쇼에서 보여주던 공연을 노래방에서 똑같이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충격이었다.

-싸이와의 재미있는 일화는.

▷가수·작곡가 지망생이었던 싸이는 정말 간절히 가수가 되고 싶어 했다.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작은 기회라도 있으면 반드시 그 기회를 잡으려고 노력했다.

1999년 5월 MBC 연예 프로그램 ‘섹션TV 연예통신’이 시작됐는데, 첫 방 하이라이트가 ‘조PD를 찾아서’였다. 리포터가 보스턴에 있던 저를 직접 만나러 와서 인터뷰했다. 당시 취재를 하러 온 리포터, 카메라 감독님 등에게 싸이가 눈도장을 찍고 싶어 했다. 싸이가 촬영을 따라다니며 도우미 역할을 했다. 그때 저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정신이 없었는데, 싸이가 제 자동차를 쓰고 싶다고 해서 싸이가 제 차도 끌고 다녔다.

-2004년 가수 인순이 씨와 함께 불렀던 ‘친구여’가 수록된 5집 앨범을 발표했는데, 남녀노소 누구나 이 곡을 따라 부를 만큼 인기가 많았다. 이 노래 가사를 1시간도 안 걸려서 썼다고.

▷3집까지 음반을 낸 후 파트너 회사와 결별하고 독자적으로 회사를 세워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다. 1, 2집 때까지는 제가 화제의 인물이라서 방송국 등 여러 곳에서 섭외가 알아서 들어왔는데, 상황이 바뀌어서 이제는 제가 직접 섭외하러 다녀야했다. 방송국에서 다시 저를 찾아오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갖고 있는 무기는 음악이니까 대중성이 강한 곡으로 1위를 달성하면 알아서 섭외가 들어올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친구여를 작사했고, 랩도 하게 됐다. 작곡가는 박근태 작곡가님이다.

-2006년 걸그룹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노래 ‘홀더 라인(Hold The Line)’에서 피처링으로 랩을 했고, 작사도 했다. 어떻게 협업했나. 그리고 이 곡이 나오자마자 가요 인기 순위 차트에 오르며 큰 인기를 끌었다.

▷윤일상 작곡가님 회사에 브라운 아이드 걸스가 소속돼 있었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가 노래 실력에 비해 음원 순위가 저조해 윤 작곡가님이 아쉬워했다. 윤 작곡가님이 저한테 스테이크를 사주면서 브라운 아이드 걸스를 위한 댄스곡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곡 작업에 참여했다.

-2009년 군 복무 후 ‘브랜뉴스타덤’이라는 회사를 설립한 후 그룹 가수 블락비를 키우기 시작했다. 블락비를 어떻게 발굴했나.

▷지코를 먼저 발탁했다. 지코를 필두로 다른 멤버를 영입해서 만든 그룹이 블락비다.

-연습생 시절 가수 지코는 어땠는지.

▷지코를 만나기 전 지코가 데모파일을 제게 보내와서 음악부터 듣게 됐다. 지코가 랩을 잘했다. 호감이 생겨서 지코를 만났다. 지코가 그때는 너무 어려서 회사에서 존재감이 없었다.

하루는 제가 담당 임원에게 전속 가수들의 프로필 사진을 찍어오라고 요청했는데, 지코만 회의실에서 대충 찍은 사진을 갖고 왔다. 그래서 “이게 뭐냐”고 담당자에게 물어봤더니 담당자가 “얘가 뭐가 된다고 돈 들여서 찍느냐”는 식으로 대답해서 기가 찼다.

-지코 씨와 얽힌 재미있거나 인상적인 일화는 없나.

▷너무 많지만 개인적인 얘기라서 언급할 수 없다.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근황은.

▷2019년 연예기획사 ‘초코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초코 엔터테인먼트는 단순한 연예기획사가 아니다. 이전 기획사와는 완전히 다른 회사다. 스타가 될 만한 사람을 발굴해서 키우고 연예인으로 데뷔시키는 것은 기본이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제작·개발하는 지식재산권(IP) 기업이다. 시각특수효과(VFX) 전문기업 ‘스페이스엘비스’를 올해 초 인수한 것도 IP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우리나라 아이돌이 해외에 데뷔하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길면 6년 이상 소요된다. 처음부터 세계의 중심인 미국에서 데뷔를 하면 세계적인 스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새로운 시대의 음악을 이끌어갈 아이돌 데뷔를 준비하고 있는데, 한국이 아닌 처음부터 미국에서 데뷔하려고 한다. 이르면 내년 3월 음반을 출시할 예정이다.

-초코 엔터테인먼트의 지향점은.

▷인간 세상에는 스타가 있지만, 디지털 세상에는 디지털 세상 그 자체에서 탄생한 스타가 없다. 인간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이 디지털 세상으로 가서 유명해진 것뿐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태어나서 디지털 세상에서 최고 스타이면서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IP를 만들고 싶다.

-조PD에게 음악이란.

▷물과 같다.

-음반을 내고 가수 혹은 랩퍼로 다시 활동할 의향은.

▷제 이름으로 음반을 낼 생각도, 다시 무대에 설 의향도 없다. 단지 제 이름으로 음반을 안 내는 것 뿐, 음악 활동 영역은 더 넓어졌다. 잠재력 있는 예비 음악인을 발굴하고 키운 후 데뷔시키고 마케팅하는 이런 일련의 과정 전체가 저한테는 앨범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현역으로 랩을 하고 싶지 않다. 갑자기 악상이 떠오르면 대충 기록해놓는다. 아침에 갑자기 악상이 떠오를 때도 있다.

-지금 청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똑같이 살 수 있다면 똑같이 살 것 같다. 음악이 아닌 다른 분야를 선택했다면 지금처럼 열심히 몰입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를 경험해볼 것 같다.

[신수현 기자]

* 인터뷰 내용을 유튜브 '매경5F'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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