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없는 학교 있다고?…서울 중학교 셋 중 하나는 면적규정 미달

김창금 2022. 11. 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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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체육, 숨구멍이 필요해ㅣ⑦ 시설 없이 체육 없다
운동장 없어 이동수업도…1인당 면적규정 회피 조항 ‘구멍’
광주 광산구의 한 중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성동구의 한 초등학교에는 운동장이 없다. 4층에 커다란 체육관이 있지만 수십개 학급의 수업을 소화하기에는 불가능하다. 마치 이집 저집을 전전하듯, 이 학교의 체육은 이동수업으로 이뤄진다. 코로나19 극성기 때는 서울숲 안 운동장에서 했고, 지금은 인근 배수지의 공원에서 한다. 하지만 이곳 공원에서도 운동장을 독점적으로 사용하기는 어렵다. 이동하느라 수업시간 빼앗기고, 학생 안전 등에 교사는 신경을 바짝 곤두세워야 한다. 담당 교사는 “운동장 없는 학교는 생기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한다.

이는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학교 운동장이 있어도 실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곳도 있다. 서울 광진구의 또 다른 초등학교에는 운동장이라고 존재는 하지만, 규모가 매우 작고 형태도 직사각형이 아니라 마름모꼴로 돼 있다. 50m 직선 코스도 나오지 않는 이 학교 운동장에서 수업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현행 ‘고등학교 이하 각급 학교 설립·운영 규정’을 보면, 초·중·고 학교 운동장의 규격은 정해져 있다. 학생 수 600명일 때, 1인당 초등학교(5㎡), 중학교(7㎡), 고등학교(8㎡) 식으로 면적이 확보돼야 한다. 하지만 신설 학교 근처에 체육시설로 사용 가능한 공공시설이 있거나, 도심지 등 여건상 확보가 어려우면 기준면적을 지키지 않아도 되도록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빠져나갈 구멍을 둔 셈이다.

학교시설 문제 전문가인 김미옥 한체대 교수는 “2019년 조사에 의하면 서울시 중학교 운동장 가운데 3개 중 하나꼴(27.5%)로 운동장 규정에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도별 학생 1인당 운동장 면적을 비교해도 서울(7.9㎡)은 전남(36.8㎡)보다 4배 이상 적다. 운동장 부족 문제가 오랫동안 제기됐지만 별다른 조처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도심에서의 땅값 상승 등 경제적 요인 때문에 운동장 규모를 줄이거나, 체육관 시설 등으로 대체해도 좋다는 규정에 대한 반론도 크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김기철 연구원은 “체육과 교육과정에서는 체육관에서 할 게 있고, 운동장에서 할 게 따로 있다. 학교에 둘 다 있는 게 최상이지만, 굳이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뛰어놀고, 소통하고, 성장하는 공간으로서의 운동장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경제적 관점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오랫동안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운동장 시설의 질이 떨어진 것도 학교마다 닥친 어려움을 보여준다. 임성철 경기 운산고 교사는 “지자체에서는 강변이나 공원 곳곳에 인조잔디 구장을 설치해서 볼 때마다 부럽다. 그런데 훨씬 많은 아이가 사용하는 학교 운동장은 여전히 흙 운동장이 많아 비가 오면 교실에 들어가 수업해야 한다. 학교에 먼저 좋은 스포츠 시설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정반대”라고 아쉬워했다. 시설의 부족으로 애초 목표했던 교육 효과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정부는 2014년 세월호 침몰 이후에 학교수업에서 ‘생존수영’을 대대적으로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8년간 학교 수영장 인프라는 거의 늘지 않았다. 2020 체육백서를 보면, 한국의 학교 수영장은 초등학교 71개, 중학교 24개, 고등학교 32개로 초·중·고 전체 1만1893개교 가운데 1%(127개교)밖에 안 된다. 1955년 5월 시운마루호 침몰 사건 이후 수영교육을 강화한 일본의 학교 수영장 2만4256개(2015년)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

셔틀버스로 이동해 수영 수업을 할 수밖에 없는 번거로움 때문에 1년 10시간 안팎의 실기 교육은 날 잡아서 2~3일에 끝내 버리는 일도 잦다. 그나마 현장 교사들은 ‘없는 것보다 낫다’고 말하지만 중앙정부의 예산이 삭감되면서 초등 3~4학년 외에 5~6학년까지 확대 의무화하려던 계획은 미뤄지고 있다.

물론 수영장을 학교에 설치한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건립 예산도 수십억원 필요하지만, 설치 이후에 운영·관리 등에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그런데도 교육 당국이 수영장을 건립하거나 교사들의 수영 지도 역량을 키우기 위해 자격증제를 도입하는 등 시스템 구축에 나서기보다는, 정치적으로 ‘생존수영’을 강조하면서 내실 강화에는 소홀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김미옥 교수는 “비만과 체력저하 학생이 늘어가고 있지만 학생들의 운동시간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는 좋은 시설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체력을 위해 이제 운동장을 비롯한 체육활동을 위한 공간문제는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다. 국가는 교육 공간하면 교실만 떠올리는데 운동장과 수영장도 교육이 이뤄지는 필수 장소다. 스포츠 인프라의 확충과 효율적 운영을 위한 노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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