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의 와인이야기]가성비 와인의 반격 … 개성 넘치는 맛에 '맙소사'

김기정 2022. 11. 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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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정의 와인이야기 ◆

지난번 와인 이야기 1회를 통해 보르도 '5대 샤토'에는 공통적인 풍미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세월'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는 와인이 '비싼' 와인으로 평가받는다는 것이죠. 기사가 나가고 싸고 맛있는 와인을 소개해 달라는 지인들의 주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성비' 와인을 믿지 않는 편입니다. 예외는 있지만 비싼 와인이 맛있습니다. 맛은 주관적이라고 하면서도 참 혓바닥은 이율배반적입니다. 물론 일반 와인 중에도 고급 와인에 비해 가격은 현저히 낮으면서도 독특한 개성을 자랑하거나 잠재력을 느낄 수 있는 와인이 분명히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뱅드프랑스 와인들입니다.

지난달 26일 뱅드프랑스 와인 세미나가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에서 개최됐습니다. 한국에선 처음으로 열린 이날 와인 세미나에는 뱅드프랑스 와인 관계자들과 함께 최준선 롯데백화점 소믈리에가 연사로 참석해 일반 참가자들의 이해를 돕고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뱅드프랑스 와인이란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가장 기본적인 와인을 의미합니다. 소매 판매가 기준 5만원 미만, 비싸도 10만원 미만의 '가성비' 와인이 주를 이룹니다.

기존 프랑스 와인이 와인 생산지와 등급체계를 중시한다면 뱅드프랑스 와인은 포도 품종을 중시합니다. 일반 소비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포도 품종을 병에 표기하기도 합니다. 고급 프랑스 와인은 포도 품종 대신 와이너리가 생산된 지역명을 라벨에 표시합니다. 일반적으로 더 작은 단위의 '지역'을 표기한 와인이 고급입니다. 예를 들면 서울시보다는 강남구, 강남구보다는 청담동 등 더 작은 단위의 생산지로 내려갈수록 와인은 고급이 됩니다.
지난달 26일 열린 뱅드프랑스 와인 세미나에서 최준선 롯데백화점 소믈리에가 출품된 와인의 향을 맡아 보고 있다. <사진제공=소펙사>

반면 뱅드프랑스 와인은 '맛'을 중시합니다. 같은 포도 품종이라도 여러 지역의 포도를 자유롭게 섞습니다.

또한 뱅드프랑스 와인은 빈티지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래 묵혀둘 와인이 아니라 출고된 다음 바로 마셔도 좋습니다. 가성비 와인은 '테이블 와인' 또는 '데일리 와인'이란 표현도 씁니다. 특별한 날에 마시는 와인이 아니라 일상에서 테이블에 올려 매일매일 '물'처럼 마시는 와인이죠. 이날 시음회에는 국내에 수입되는 뱅드프랑스 와인 35종과 아직 수입되지 않은 와인 24종이 출품됐습니다. 59종을 모두 시음해 봤는데 미수입된 와인들 중에도 독특한 개성을 자랑하는 흥미로운 와인이 있었습니다. 이미 한국에 수입된 와인 중에는 노바와인즈가 수입한 '오 라 바슈 블랑'(Oh La Vache Blanc, 세미용), 하이트진로가 수입한 '제프 카렐 샤그리'(Chatgris, 그리나슈 그리)가 좋았습니다. 또 씨에스알와인이 수입한 투썩 점퍼 와일드 보어(Wild Boar Tussock Jumper, 피노 누아)와 아직은 수입되지 않은 라 프티트 페리에르(La Petite Perrierre, 피노 누아)도 영빈티지 피노 누아임에도 훌륭한 와인이 될 잠재력이 보였습니다. 시음한 와인 중 제가 개인적으로 흥미롭다고 생각된 와인들을 소개해 봅니다.

라 바슈(La Vache)는 한국어로 직역하면 '소'라는 뜻인데요. 와인 라벨에도 소 그림이 그려 있습니다. '라 바슈'는 감탄사로 '놀랍다(Oh my god)'는 뜻으로 영어로 맙소사(Holy Cow!)라는 표현으로도 쓰입니다. '오 라 바슈 블랑'을 마셔보니 진짜 감탄이 나옵니다. 물론 '맛있다'는 쪽으로 감탄사죠.

이 와인을 수입한 이승철 노바와인즈 대표는 "여러 와인을 마셔보다 '오 라 바슈 블랑'은 안 팔리면 내가 다 마실 수 있겠다 싶어 수입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화이트 와인 중에 보르도 화이트 와인을 좋아하지만 그랑크뤼 등급은 너무 비싸고 동시에 화이트 역시 보르도는 올드 빈티지여야 제맛을 내기 때문에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화이트 와인은 미국의 '피터 마이클' 샤도네이입니다. 이 와인은 비교적 영빈티지도 놀랍게 맛있습니다. '오 라 바슈 블랑'은 피터 마이클처럼 놀라움을 주는 와인입니다. 이날 시음한 와인 중에 가장 맛있었습니다.

오 라 바슈 블랑

한 줄 평가: "피터 마이클처럼 놀라웠어요."

아직 우리나라에 수입이 안 된 와인들 중에도 상품성이 뛰어난 와인이 많았습니다. 특히 피노 누아로 만든 '라 프티트 페리에르'는 2021년 빈티지인데도 부드러우면서 강한 '잠재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입된 와인 중에는 투썩 점퍼 와일드 보어 2020년의 맛이 뛰어났습니다.

피노 누아 품종은 재배하기가 쉽지 않지만 특유의 부드러움 때문에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을 대표하는 포도 품종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빈티지는 산미가 너무 강해 '그랑크뤼' 수준의 와인들도 좀처럼 '제값을 한다'는 생각이 들기 어렵습니다. 와인 창고에 보관해놓고 숙성하면서 산미가 부드러움으로 바뀌길 기다리는 '장기 투자' 개념입니다. 미국과 같은 신대륙 피노 누아 와인들은 이 기간을 단축해 줍니다. 프랑스 와인보다 숙성 기간이 짧아도 부드러움이 빨리 올라옵니다. 라 프티트 페리에르는 2021년과 투썩 점퍼 와일드 보어 2020년은 프랑스 영빈티지 피노 누아지만 지금 당장 마시기에도 좋고 앞으로 숙성되면 어떤 맛을 낼지도 궁금해지는 와인입니다.

라 프티트 페리에르

한 줄 평가: "누가 수입 안 하나요?"

투썩 점퍼 와일드 보어

한 줄 평가: "영빈티지 피노 누아도 맛있네요."

하이트진로가 소개한 와인 중 '그르나슈 그리'라는 포도 품종을 쓰는 제프 카렐 샤그리와 '카리냥'이라는 포도 품종을 쓰는 본투비 와인 2종류는 정말 맛이 독특했습니다. 샤그리는 강한 꿀 향 때문에 맛도 달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나슈 그리'라는 포도 품종이 주는 독특한 맛 때문에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릴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복숭아 풍미가 있어 올해 한국와인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샤토미소 복숭아'와 비교 시음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본투비 와인 또한 강한 '허브' 향 또는 '후추' 맛이 인상적으로 하이트진로의 와인 구매 담당이 굉장히 공격적으로 와인 포트폴리오를 짜고 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프 카렐 샤그리

한 줄 평가: "지루한 와인은 가라."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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