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비 4만원 대신 2800원…“N버스 덕에 2시간 더 해방”

이정하 2022. 11. 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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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 심야버스 타보니
강남역에서 탑승했던 한 회사원이 졸다가 목적지에서 내리지 못하고 안산행 3100N 버스 종착지인 신안산대 버스정류장에 하차하고 있다. 이정하 기자

지난 10월27일 자정이 임박한 밤 11시50분 경기 안산시 신안산대학교 정문 앞 버스정류장에 3100N 버스가 멈춰 섰다. 안산시와 강남역을 잇는 3100번 막차가 밤 10시20분에 끊긴 뒤였다. 3100N 버스는 3100번과 동일한 노선을 운행하는 심야버스다. 엔(N)은 영어로 밤을 뜻하는 나이트(night)의 첫 글자에서 가져왔다.

버스에 올라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았다. “처음엔 동료 기사들이 술 취한 승객들이 많을까 봐 심야버스 운전을 꺼렸어요. 막상 3개월 정도 운행해 보니 그렇지 않더군요. 대리운전 기사나 청년층이 많은 편입니다.” 기사 홍태수(36)씨의 말이다. 아홉 정거장을 지나칠 때까지 승객은 없었다.

자정을 넘기고 한양대(안산캠퍼스) 앞 정류장에서 드디어 첫 승객이 탔다. 한양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김병건(29)씨다. 그는 “박사 논문 쓰고, 조교와 연구 활동도 해서 시간이 부족하다. 심야버스가 생기면서 논문 쓸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김씨와 대화가 끝날 무렵, 헬스트레이너인 김아무개(28)씨가 버스에 올랐다. 일을 마치고, 친구를 만나러 서울 강남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김씨는 “예전에는 서울까지 택시를 이용했다. 요금만 4만~5만원인데, 지금은 심야버스가 있어서 2800원만 내면 된다”고 했다.

8월16일부터 새벽 2시까지 안산∼강남을 잇는 심야 광역버스 노선인 3100N 버스가 운행을 시작했다. 안산시 제공

안산 반월동 정류장에서 60대 남성 2명이 탑승했다. 앞쪽에 자리 잡더니 전자 단말기를 연신 확인했다. 대리운전 기사였다. 경력 6년차인 이진호(60)씨는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에서 안산으로 가는 콜을 잡고 왔다가 의왕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낮에는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야간에는 부업으로 대리운전도 해요. 심야버스가 없을 땐 이 시간까지 일하기 어려웠는데, 잘된 거죠.”

이씨와 조금 떨어져 앉은 대리기사 정동환(64)씨도 “요즘은 서울과 경기를 잇는 심야버스 노선이 여럿 생겨서 새벽 2~3시까지 일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에서 안산까지 대리운전한 그는 콜이 많은 서울 강남으로 다시 가는 중이었다. 정씨는 “코로나19가 한창일 땐 하루 수입이 5만원에 불과했는데, 요즘은 10만~15만원 정도 된다”며 “이동비가 줄어 수익이 늘어나니 대리기사에게 심야버스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치켜세웠다.

경기 안산시에서 강남행 3100번 광역버스 막차(밤 10시20분)가 끊기고 인적이 없는 신안산대 버스정류장. 이정하 기자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의 ‘웃픈’ 현실을 조명해 화제가 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도 소환했다. 직장 회식 도중 막차가 끊길까 봐 서둘러 자리를 뜨거나 달리는 주인공들의 현실적인 모습에 경기도민의 공감을 산 드라마다. “오늘 부서 회식인데, 8명 중 저만 경기도민입니다. 심야버스 덕에 2시간 더 해방의 기쁨을 얻었지만, 부서원들은 지금도 자리를 옮겨 회식하고 있어요.” 새벽 1시, 3100N 버스 회차지인 강남역에서 탑승한 데이터분석사 김민규(30)씨는 “경기도민의 흔한 애환”이라며 노곤한 몸을 창문에 기대 금세 잠들었다.

심야버스는 사회초년생들의 꿈도 함께 싣고 달린다. 서초역에서 탔던 최영환(26)씨는 바텐더다. 취미로 칵테일 제조 기술을 배웠다가 두 달 전부터 사당역 인근 칵테일 바로 출근 중이다. 최씨는 “안산이 집인데, 자정쯤 영업이 끝나면 귀가하기 힘들었다. 주말에도 일하는데, 그때도 심야버스가 운행하면 좋겠다”고 했다.

관세사 합격의 기쁨을 만끽하고 귀가하는 청춘도 있었다. 최호연(27·여)씨다. 1년 반 동안 시험을 준비했다고 한다. “친구들이 축하파티를 열어준다고 해 강남에서 친구들과 놀고 들어가는 길”이라며 “오늘이 첫 이용인데, 직장을 얻게 되면 더 자주 이용할 것 같다”고 했다.

새벽 2시10께 종점인 안산 신안산대 정류장에 도착했다. “손님 종착역입니다.” 운전기사의 안내 방송에 화들짝 놀란 데이터분석사 김씨가 황급히 버스에서 내렸다. 깜박 잠이 든 김씨는 목적지에서 하차하지 못하고, 결국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이날 심야버스 1호차를 탄 승객은 모두 18명이었다.

경기도는 8월부터 순차적으로 도내 11개 시·군 9개 광역노선에 심야버스를 도입하고 있다. 현재 파주∼광화문 노선 1개를 제외한 8개 노선이 운행을 시작했다. 경기도 제공

안산 3100N 버스는 평일 심야시간대 30분 간격으로 3차례 운행한다. 신안산대 출발시각은 밤 11시50분, 12시20분, 12시50분이며, 강남역 출발시각은 새벽 1시, 1시30분, 2시다. 안산시가 9월 한달 동안 3100N 이용 현황을 분석한 결과, 하루 평균 48명이 탔다. 10월21일부터 인파가 몰리는 금·토요일 새벽 2시까지 안산 주요 거점을 순환하는 심야 부엉이버스 3개 노선도 운행을 시작했다.

경기도는 지난 8월부터 서울로 출퇴근 수요가 많은 안산을 비롯해 성남·파주·의정부·양주·포천시 등 11개 시·군 9개 광역버스 노선의 막차 시간을 자정에서 새벽 2시까지 연장하는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안산 3100N 버스도 이 중 하나다. 9개 노선 가운데 파주~광화문 노선은 아직 사업자 선정을 하지 못한 상태다. 9월 이용객 현황을 보니 하루 평균 310명이었다. 금요일이 평균 408명으로 가장 많고, 월요일은 216명으로 가장 적었다. 버스 1대당 평균 18명이 승차했다.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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