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꽃이야기] 다시 걷고싶은 길, 고창 운곡습지 탐방로

김민철 논설위원 2022. 10. 2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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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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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운곡습지 탐방로에 들어서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좁은 데크길을 따라 나무와 덩굴이 원시림 가까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에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한 색조가 조화를 이루어 그윽한 분위기였다. 운치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동식물이 살아 ‘한강 이남의 DMZ’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었다.

지난 주말 운곡습지. 원시림 가까운 숲에 막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 운곡습지 탐방로 중 1코스를 걸었다. 운곡습지탐방안내소(고인돌유적지)~생태연못~생태공원 코스(편도 3.6km)였다. 운곡습지는 우리나라에 24곳 있는 람사르습지 중 한 곳이다. 지난해 12월 신안 ‘퍼플섬’과 함께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의 ‘최우수 관광 마을’ 중 하나로 선정됐다.

운곡 저수지와 습지는 1980년대 초 인근 영광 원전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저수용 댐을 만들면서 생겼다. 댐을 만들며 사람들이 떠나자 논과 밭은 물론 집터까지 나무와 풀이 자라나 자연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운곡습지는 계단식 논이 있었던 곳인데, 그대로 두자 습지로 복원되었다. 자연의 놀라운 회복력이었다.

운곡습지에서 가장 인상적인 나무는 감태나무였다. 운곡습지 1코스는 감태나무길이라 불러도 무방하겠다 싶을 정도로 감태나무가 많았다. 이제 막 노란물이 들기 시작했다. 감태나무는 겨울 내내는 물론 늦으면 봄이 무르익는 4월 초까지 잎을 온전히 달고 있는 특이한 나무다. 겨울에 주변 나무들은 상록수 빼곤 나뭇잎이 다 떨어졌는데 이 나무만 홀로 온전히 잎을 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단풍이 들어도 나뭇잎이 쭈그러들거나 상하지 않고 온전한 것이 이채롭다.

운곡습지 감태나무.

청미래덩굴 열매도 붉게 익었다. 청미래덩굴은 지역에 따라 망개나무, 맹감 혹은 명감나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덩굴이다. 요즘 꽃보다 예쁜, 지름 1㎝ 정도 크기로 동그랗고 반들반들하게 익은 빨간 열매를 달고 있다. 청미래덩굴 열매는 요즘 우리나라 산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운곡습지 열매는 더 크고 붉은 것 같았다.

운곡습지 청미래덩굴 열매.

단풍 종류 중에서는 신나무가 가장 많았다. 단풍나무는 잎이 손을 펼친 모양으로 갈라지는데, 그중 신나무는 3갈래로 갈라지는 나무다. 양쪽 두 갈래는 작고 가운데 갈래는 크다. 운곡습지 오가는 길 곳곳에서 크고 작은 신나무들이 붉게 물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운곡습지 신나무.

바람이 쏴~ 하고 불면 곳곳에서 우두둑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참나무 종류 중에서는 갈참나무가 가장 많았다. 갈참나무는 참나무 6형제 중 늦가을까지 황갈색 단풍이 멋진 나무인데, 잎자루가 길고 잎이 거꾸로 선 달걀 모양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운곡습지 갈참나무.

습지를 지나다보면 집터 등 사람이 산 흔적도 볼 수 있다. 이곳이 과거 사람이 산 곳이라는 흔적 중 하나는 은사시나무가 적지 않게 보이는 것이다. 은사시나무는 수원사시나무와 유럽에서 들어온 은백양나무 사이 자연 잡종으로 1950년대 보급한 나무다. 운곡습지 은사시나무도 그 이후 심은 나무일 것이다. 은사시나무는 수피(나무껍질)에 다이아몬드 무늬가 셀 수 없이 박혀 있다. 그래서 은사시나무는 다이아몬드가 가장 많은, 세상에서 가장 부자나무라는 농담이 있다.

운곡습지 은사시나무.

운곡습지가 놀라운 이유 중 하나는 식물원에서나 보던 나무들이 불쑥불쑥 나온다는 것이다. 장구밥나무, 까마귀베개 같은 나무들이 그런 나무였다. 장구밥나무 잎과 열매는 둘다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생태연못에 희귀식물 중 하나인 낙지다리가 있다고 하는데, 열심히 헤맸지만 찾지 못했다. 이 식물은 줄기 윗부분에 열매가 붙은 모양이 낙지의 다리를 닮았다하여 낙지다리라고 부른다.

낙지다리. 운곡습지에도 이 희귀식물이 자란다.

운곡습지를 지나 생태공원까지 가는 길은 무수히 핀 구절초, 산국 향기를 맡으면서 걷는 길이었다. 붉은 찔레꽃 열매는 덤이었다. 운곡습지에 가려면 고인돌박물관에 주차하고 탐방안내소까지 걸어가거나 셔틀버스를 타는 것이 좋다. 거리는 약 700m다. 고인돌박물관에서 탐방안내소까지 가로수는 가시나무다. 가시나무 종류는 도토리가 열리는 상록 참나무로, 대표적인 남부수종이다. 수달·담비·삵 등 멸종위기종으로 디자인한 길 안내판도 재미있었다. 다만 맹렬하게 세력을 확장 중인 칡, 환삼덩굴 등을 적절하게 관리해야할 것 같았다.

운곡습지 길 안내판. 이곳에 서식하는 수달, 담비, 삵을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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