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50년 기자 조갑제 "이스라엘에는 미군 주둔 않는다"

윤근영 2022. 10. 24.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미동맹, 좋은 점 있으나 한국인 정신 좀먹고 있다"
"文 前대통령, 김일성주의자 아니라고 설명하면 좋겠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기자 = 조갑제(77)는 여전히 지칠 줄 모른다. 1971년 부산의 국제신보(현 국제신문)에 입사한 이래 50년간 현역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매일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다.

그는 기자의 삶이 적성에 맞고 영광이라고 한다.

지난 18일 그의 광화문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했다.

그는 한국이 자주국방을 이루지 못하고 미국에 의존하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일성주의자가 아님을 설명하면 좋겠다고 했다.

1945년 일본에서 태어난 조갑제는 부모님과 함께 이듬해에 경북 청송으로 귀국한 뒤 주로 부산에서 성장했다. 국립 부산수산대(현 부경대)를 중퇴하고 국제신문에 입사한 이후 월간마당, 월간조선 등을 거쳐 지금은 조갑제닷컴 대표로서 여전히 현장에서 뛰고 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조갑제 대표 [촬영 정한솔]

-- 어릴 때 가정형편은 어떠했나.

▲ 전형적인 중농의 가정이었다. 부모님은 돈을 벌기 위해 일본에 가셔서 1945년에 나를 낳으셨다.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부산으로 다시 이사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작은 연탄공장을 운영했다.

-- 부유한 편이었나.

▲ 직원 3∼4명을 둔 전형적인 중 상공인이었다. 배고플 정도는 아니었다. 학교는 내가 원하는 대로 갈 수 있었다.

-- 부산중학교와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학업성적은 어느 정도였나.

▲ 중상 수준이었을 것이다. 나는 실력보다 시험을 잘 치르는 스타일이었다. 부산수산대 입학시험에서도 벼락치기 공부를 해서 수석으로 들어갔다. 이 학교를 선택한 것은 선장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력이 나빠서 선장이 될 수 있는 어로과가 아닌 제조학과에 들어갔다. 제조학과는 지금의 식품공학과와 비슷하다. 2년 다니고 공군에 지원했다.

-- 공군은 복무 기간이 길지 않은가.

▲ 당시 공군의 복무기간은 3년이었다. 그런데 1968년 1·21 청와대 습격 사건(김신조 사건)이 발생해서 복무 기간이 연장됐다. 모두 3년 4개월간 복무했다. 공군 훈련병 당시 늑막염과 폐렴을 앓아서 공군의료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레이더 기지가 있는 산꼭대기에서 근무했는데, 그 환경이 병 치료에 도움을 줬다. 미군과 함께 근무한 것이 영어 공부에 효과가 있었다. 업무상 일본 자위대와 통신을 하다 보니 일본어 실력도 늘었다. 나는 군대에서 사격을 잘해서 탑건이었다.

-- 부산 국제신문은 어떻게 들어갔나.

▲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역사소설을 많이 읽었고 신문도 열심히 봤다. 그러면서 한자를 저절로 알게 됐다. 이 과정에서 글 쓰는 게 좋아졌고 글 쓰는 직업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당시에 고졸 학력자를 기자로 뽑는 언론사가 많지 않았다. 국제신문이 고졸도 뽑는다고 해서 응시했더니 합격했다.

2013년 3월 아베 당시 일본 총리와 인터뷰 중인 조갑제 [본인 제공]

--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 상사의 허락 없이 광주에 진입했다가 국제신문에서 해직됐는데, 왜 그랬나.

▲ 내가 당시 부마사태를 취재하고 있었다. 부마사태가 10·26 사건으로 연결됐으니 역사적 사건이라고 판단해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나는 부마사태와 (성격이) 비슷한 것으로 봤다. 현장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해서 병가를 내고 광주에 몰래 들어갔다. 취재를 마치고 회사에 돌아오니 사내에 문제가 돼서 해직됐는데,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사유였다. 실제로는 내가 기자협회 중심으로 진행됐던 언론자유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서 반정부 기자로 찍혔기 때문이었다. 해직돼서 집에서 쉬고 있는데 1980년 가을에 신군부가 만든 해직대상 기자 명단에 내 이름이 또 들어가 있었다. 일종의 확인 사살이었다.

-- 기자 시절에 특종을 많이 했는데. 비결은 무엇인가.

▲ 나는 특종이 기자들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특종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뛰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묻힐뻔한 기사를 캐내게 된다. 특종을 많이 하려면 (습관적이고 반복적인) 루틴 체크를 잘해야 한다. 크로스 체크도 필요하다. A라는 사람을 만났으면 그 반대되는 B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다. 중요한 게 하나 더 있는데, 팔로우 체크다. 일반적으로 기자들은 기사를 쓴 뒤에 사안이 어떻게 됐는지 잊어버린다. 나는 기사를 쓰고 나서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꼭 체크한다.

집회에서 연설하는 조갑제 [연합뉴스 자료사진]

-- 취미는 무엇인가.

▲ 야구를 좋아한다. 지금도 미국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을 매일 보고 있다. 야구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1964년부터다. 고등학교 시절에 일본야구 방송을 듣다가 성에 안 차서 미군 방송을 통해 메이저리그 중계를 들었다. 이를 위해 내가 단파 라디오를 만들기도 했다.

권투에도 관심이 있었다. 미국의 무하마드 알리가 나오는 경기는 다 봤다. 당시 흑백 TV로 중계를 하면 다방이 사람들로 꽉 찼다. 마치 소극장 같았다. 권투는 종합예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국제신문 기자 시절에 역대 헤비급 선수 열전을 다룬 미국 책을 번역해서 신문에 연재하기도 했다.

-- 술과 담배는 어느 정도 하나.

▲ 술은 거의 안 마신다. 알코올 분해효소가 결핍된 사람 중 하나다. 담배를 안 피우는 것은 교회에 다니기 때문이다. 우리 집안에는 아버지를 포함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없었다.

--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

▲ 특별히 시간을 내지는 않는다. 기자라는 직업상 많이 걸어 다닌다. 지금의 몸무게는 군대 제대할 때 그대로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다.

-- 좌우명이나 삶의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

▲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시간은 누구한테나 공평한데, 많이 일하고, 많이 사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멍청하게 앉아있을 때가 없다. 책을 보든지, 노래를 부르든지, 영화를 보든지 뭘 하긴 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매일 밤 의미도 없는 꿈을 꾼다. 그러다 보니 머리가 쉬지 못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평생 꿈을 꾼 적이 없어서 꿈 한번 꾸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한다. 나와는 정반대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조갑제 [촬영 정한솔]

-- 자주국방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무슨 취지인가.

▲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국방이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결국 그 의지는 실종되고 북한이 핵무장을 하면서 한국은 아주 비겁한 나라가 됐다. 북한이 핵무장을 하면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 최소한 전술핵은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안 되니까 무슨 일만 있으면 한국의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서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니 김정은이 남한을 얼마나 만만하게 보겠는가. 한국의 경제력은 북한의 100배나 되는데. 외국 도움까지 받고서도 경제력 100분의 1의 북한과 싸우는 것에 겁을 낸다면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정신을 가진 나라가 아닌가. 한미동맹이 좋은 점은 있다. 그런데 그 부작용으로 한국의 정신을 좀먹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스라엘은 아랍과 싸우면서 지금까지 미군 도움을 한 번도 안 받았다. 무기 지원을 받기는 했다. 이스라엘은 자국에 미군이 주둔하는 순간 자국 사람들이 타락한다고 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됐다.

-- 한국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보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우리가 슬기를 발휘해서 미군도 주둔하면서 자주국방도 같이 가져가야 하는데. 이게 사실 어렵다. 사람의 속성상 사대주의나 의존적으로 가게 돼 있다. 한국의 보수는 보수라고 말할 자격이 안 된다. 자위적 핵무장을 하자는 이야기를 10년 전, 20년 전에 해야 했다.

-- 우리가 자체적으로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뜻인가.

▲ 지금 이 단계에서 슬기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지금 핵을 만들겠다고 하면 손에 넣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더 쉬운 방법으로 전술핵 재배치, 나토식 핵 공유 등이 있다. 미국의 핵 탑재 잠수함을 상시로 배치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런 모든 것은 한미 관계만 튼튼하면 가능하다.

생전의 JP(김종필)와 인사하는 조갑제 [연합뉴스 자료사진]

--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항상 우월하다고 할 수 있나.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사회 시스템도 바뀌는 것 아닌가.

▲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진실, 진실에 입각한 정의, 정의가 지켜주는 자유다. 이 세 가지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가 자유민주주의다. 사회주의는 이런 게 보장이 안 된다. 좌파는 정의를 먼저 내세운다. 그다음에 정의에 맞도록 사실을 왜곡한다. 그러면 정의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다. 그렇게는 자유를 지킬 수가 없다. 내가 말하는 것은 사실관계를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내가 기자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사실관계가 분명하면 판단이 자동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실사구시는 현실과 사실에 기초해서 올바른 방향을 구한다는 뜻이다.

-- 소위 '종북 좌파'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남한에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나.

▲ 퇴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40%인데, 종북 좌파는 5∼10% 정도 될 것으로 본다. 종북 좌파 기준이 모호한 것 같지만 간단하다. 히틀러를 비판하지 않는 이스라엘 정치인이 있을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에 살면서 김일성·김정일을 비판하지 않는다면 김일성주의자라는 의심을 스스로 불러들인다고 봐야 한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의 발언을 계기로 논란이 되고 있는데, 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일성주의자가 아니라고 설명을 했으면 좋겠다. 다만, 김일성·김정일을 비판한 적이 있다는 근거자료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자료를 내놓지 않으면 국민 입장에서는 김일성주의자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그렇게 비판하면서 김일성·김정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면 김일성주의자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

-- 문재인 전 대통령이 신영복 선생의 삶의 철학과 자세를 좋아할 수 있는데, 김일성주의자로 확정하는 것은 무리한 것 아닌가.

▲ 문재인 전 대통령은 "내가 존경하는 사상가 신영복"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신영복 선생은 글도 잘 쓰고 여러 가지 얼굴(측면)이 있는데. 그의 사상은 김일성주의일 수밖에 없다. 그 사상에 신념을 바쳐서 20년 동안 징역살이를 하고 나왔다. 그러고도 자기의 생각을 안 바꿨다고 하면 김일성주의자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문 전 대통령은 2018년 9월 19일 평양 5·1경기장 연설에서 자신을 남쪽 대통령이라고 했다. "남쪽 대통령 문재인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소개로 여러분들 앞에서 인사를 드리게 됐다"고 했다. 이것이 헌법 위반 아닌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남쪽 대통령이라면 최소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라는 말은 안 써야 했다. 국무위원장의 국은 나라 국(國)이다. 그 뒤의 연설은 대부분이 김정은을 민족의 지도자로 추켜 올리는 내용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가을의 유엔 연설에서 "6·25는 내전이었고 국제전이었다"고 말했다. 유엔이 파병해서 우리를 살렸는데, 남침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전이라는 말은 양쪽 모두가 쌍방 충돌처럼 잘못했다는 뜻이다.

문 전 대통령은 2021년 4·3사건 추모사에서도 "이들이 통일의 꿈을 먼저 꾸었다가 이렇게 처참하게 국가폭력에 당했다"고 했다. 그들의 꿈은 적화통일인데, 그것을 공개적으로 말한 사람을 김일성주의자로 의심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젊은 시절의 조갑제 [본인 제공]

--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일성주의자라는 뜻인가.

▲ 의심된다는 것이다.

-- 주의나 사상은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수 있는 것 아닌가. 즉 목적에 도달하는 방법에서 의견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 (민주화가 된 이후) 1987년 12월 18일 대통령선거를 통해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됐다. 노태우 대통령을 정통성 있는 대한민국 정부로 인정하면 그 사람은 대한민국 체제 안에서 활동할 수 있는 좌파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계속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반역적 사회주의로 봐야 한다. 87년이 기준이다. 92년에도 국가보안법 위반을 했다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할 수 없다.

-- 김일성주의자들이 남한의 언론계, 법조계, 정부, 국회 등에 많이 있다고 생각하나.

▲ 많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소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김일성을 신으로 받들고 있는 사람도 김일성주의자이지만 현실적인 위험성을 고려할 때 김일성주의자를 편드는 사람도 김일성주의자로 분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종북이 아닌 마르크스·레닌주의도 인정할 수 없나.

▲ 마르크스·레닌주의는 PD(민중민주) 계열이다. 그런 사상을 갖고 있으면 반(反)대한민국 쪽으로 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어차피 북한 쪽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남북대치 상황이 아니고 프랑스 같은 여건이라면 여지가 있다. 그러나 남북대치 상황에서는 사회민주주의가 정말 어렵다. 사회민주주의가 살아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소수가 됐다. 서양의 좌파는 공산당과 싸워서 자기의 입지를 세웠다. 한국의 좌파는 공산당과 싸우지 않는다.

월간조선 사장 시절의 조갑제 [연합뉴스 자료사진]

-- 청와대 이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청와대를 옮기는 것은 천도와 비슷하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청와대를 옮기는 것을 즉석에서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토론도 없었고 준비도 없었다. 지금은 출퇴근하는 대통령이 됐다. 국군통수권자를 겸한 사람이 출퇴근하는 나라는 없다.

--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은 무엇인가.

▲ 나의 삶의 궁극적 목적은 자유 통일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는 2천500만 명의 북한 주민을 노예 상태에서 해방하는 것이다. 아울러 나의 주요 저작물을 영문으로 펴내고 싶다. (취재지원 정한솔 인턴기자)

keunyoung@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