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단풍' 아직 늦지 않았다..남쪽 명소 5선 [ESC]

한겨레 2022. 10. 2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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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하한 설악의 붉은 물결
깊어진 가을 끝자락 붙드는
남쪽의 만산홍엽 명소 5선
경남 합천 해인사 소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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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나타내는 색은 각각 다르다. 봄은 노랑, 여름은 파랑, 곧 돌아올 겨울은 하양이 맞지 싶다. 가을은 무엇일까. 황금 들판이 펼쳐지지만 아무래도 빨강에 한 표가 간다. 단풍(丹楓)을 두고 다른 팔레트를 펼치기란 어려운 일이다.

붉을 단(丹) 자를 쓰지만 단풍은 사실 수십가지 색이랄 수 있다. 농염한 와인 색, 인주처럼 새빨간 색, 잘 익은 귤 색, 추수 전 벼 이삭의 점잖은 노랑 등 나무마다 다르고 햇살마다 다르게 빛을 발한다. 가을 햇살은 얇은 이파리를 만나 유리 가루처럼 반짝이며 부서져 내린다. 여기다 만추에 이르노라면 고상한 낙엽과 샛노란 은행잎까지 가세해 파스텔화의 완성을 이룬다.

10월의 하순, 벌써 찬 바람이 불어든다. 남하하던 설악발 붉은 물결이 그 바람을 타고 속도를 붙인다. 여차하면 높바람에 이 아름다운 계절을 실어 보내야 한다. 마지막 단풍이 잠시 머물고 있는 지금, 잠시나마 만산홍엽을 눈에 담을 수 있는 명소를 꼽아봤다.

파격적 도입부의 순창 강천산

단풍은 북쪽에서 내려오지만 남쪽의 것이 모자라지는 않다. 늙은 햇볕이 아직 붉은 기운을 붙들고 있는 전북 순창 강천산에선 온통 빨갛고 노란 색 천지를 만날 수 있다.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강천산 꼭대기에 단풍 모자가 걸린다. 고추장과 단풍, 붉은 고장 순창은 섬진강까지. 산수가 좋기로 소문났다. 등반로도 있지만 구장군 폭포까지 다녀오는 트레킹 코스가 단풍놀이엔 딱이다. 수종이 다양해 색이 좋다. 작고 고운 애기단풍도 있다.

강천산 단풍 트레킹은 기승전결의 구조를 지닌 소설과도 같다. 초입부터 단풍터널이 이어지는 등 파격적 도입부가 있다. 신스틸러 병풍폭포가 초반부터 등장하는 등 화려한 캐스팅이다. 병풍폭포는 원래 마른 폭포다. 평소에는 벼랑이다가 비가 오면 폭포가 된다. 지금은 물을 끌어올려 언제라도 웅장한 폭포수를 볼 수 있다.

계곡을 옆에 끼고 길을 걷다 보면 갑자기 하늘 높이 솟은 메타세쿼이아 길이 나타난다. 아름드리나무의 여전한 초록 그늘에서 단풍 네온에 시린 눈을 쉬어갈 수 있다. 길이 끝나갈 즈음 나무데크 계단을 따라 오르면 등산로 일부인 흔들다리가 나온다. 이곳에선 단풍 물든 길의 정수리를 내려다볼 수 있다. 클라이맥스는 구장군 폭포다. 무려 120m에 이르는 절벽에서 세 줄기 굵은 폭포수가 쏟아진다. 단풍 구경에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반나절이다.

전북 순창 강천산.
충북 괴산 화양구곡.

병풍 그림 같은 괴산 화양구곡

강원을 지나친 가을은 충북 괴산 땅 이화령 길을 타고 넘어든다. 괴산의 단풍은 붉고도 노랗다. 문광지(양곡저수지)는 호숫가에 늘어선 은행나무로 유명하다. 아름드리 은행나무 300여그루가 둘러져 있다. 10월 말이면 샛노란 색 물결이 물에 비쳐 환상적인 호반의 정취를 낸다. 하늘을 가린 은행 터널이 저수지를 기역(ㄱ)자로 꺾으며 얼싸안는다. 물 한가운데로 부교를 띄우면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서로 찍고 찍히며 각자의 가을을 추억으로 새긴다. 새벽이라면 더욱 좋다. 스멀스멀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황금색 가을이 안개에 번지며 몽환적 풍경을 펼친다.

속리산 국립공원 내에 있는 화양구곡(華陽九曲)은 이름처럼 병풍 속 그림 같은 계곡이다. 경천벽,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천 등 저마다 의미 있는 이름이 붙은 명소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어른 열댓명이 올라선대도 넉넉한 너럭바위 위로 명경 같은 물이 흐르고 그 위에 빨간 단풍 이파리가 떠내려온다. 파천까지 걷는 동안 ‘색의 파노라마’가 주변에 펼쳐진다.

합천 해인사, 물도 붉다 해서 홍류동

경남 합천(陜川)은 이름 뜻 그대로 물줄기의 고장이다. 황강이 굽이치고 합천호가 바다처럼 펼쳐졌다. 합천에서 단풍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역시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이다. 미국 ‘시엔엔 고’(CNN GO)가 선정한 ‘아름다운 한국 50선’ 등에 선정됐다. 종교적으로는 국내 삼보사찰에 5대 총림(불교대학교)으로 꼽히는 유서 깊은 가람이다. 수많은 부속 암자(16곳)와 말사(167곳)를 품은 규모도 어마어마하고 그 입지도 좋다. 화엄경 구절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이름을 따온 해인사에는 보물도 많지만 요즘 최고의 보물은 바로 홍류동으로 흐르는 단풍 물줄기다. 요맘때 흐르는 물도 붉다 해서 홍류동(紅流洞)이다.

단풍과 호흡할 수 있는 길이 바로 해인사 소리길이다. 온통 홍엽과 황엽으로 진한 색을 발하고 있다. 노염(老炎)의 칼칼한 햇볕을 받은 단풍잎은 화사한 버건디 빛을, 때론 무르익은 홍시의 새침한 색을 낸다. 데크를 따라 걸으면 홍류동 계곡 위를 누비며 지나게 된다. 너럭바위 위로 흐르는 수정 같은 물이 맑은 풍경소리를 내며 쫓아온다. 야천리에서 해인사까지 6㎞ 코스인데 내려가면 힘들지 않다. 중간에 농산정, 낙화담, 분옥폭포 등 곳곳에 19명소가 있어 눈 호강을 할 수 있다.

경북 문경새재 제3관문 조령관.

선비들 넘던 문경 명불허전 단풍길

경북 문경은 길이 만든 고장이다. 물리적인 통로를 뜻하지만 인간은 길을 뭔가를 이룰 수 있는 수단, 즉 방도(方途)로 해석하기도 했다. 영어 ‘웨이’(way)도 마찬가지다. 동양에서는 더하다. 도(道)는 철학·종교적 개념에서 무척 중요한 단어다.

조선 영남대로의 관문이던 조령(鳥嶺) 옛길이 비단길로 물들었다. 색색으로 물들어가는 나무로부터 떨어진 커피색 고엽이 길을 장식하고 있다. 파란 하늘은 샛노란 햇빛을 얇아진 나뭇잎에 투과해 천연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든다.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낙엽이 벌써 카펫처럼 깔렸다.

날개 달린 새도 넘기 어렵다던 험준한 고갯길 조령(새재)은 한양과 동래(현 부산)를 잇던 영남대로에서 가장 높고 험한 구간이다. 영남 지역 유생들이 청운의 뜻을 품고 한양으로 향할 때, 주로 이 고개를 넘었다. 또 급제 뒤 금의환향할 때 다시 이 길을 지났다. 문경(聞慶·경사스러운 소식을 들음)의 지명은 그로부터 유래했다. 지금은 선비 대신 가을 단풍 여행객이 채우고 있다. 명불허전이다. 깎아지른 듯 강직한 산세의 조령산과 유려한 곡선미의 주흘산이 양쪽에 버티고 섰다. 길을 따라 계곡이 함께한다.

제1관문 주흘관에서 1.2㎞ 정도 오르면 보행자가 묵어가던 원(院) 터가 나온다. 국가지정 호텔 격이다. 약간 가파르지만 발바닥에 와닿는 폭신한 느낌이 좋아 힘들지 않다. 제2관문(조곡관) 오르는 길은 좁아들지만 좀 더 고즈넉하다. 더 고불고불한 길이다. 급작스레 계곡이 좁아지더니 길을 해자처럼 막는다. 다리 건너 제2관문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길이 뚫리면 왜적이 한양으로 넘어온다. 그래서 요새처럼 성곽을 지었다. 1.6㎞ 정도 더 오르면 제3관문(조령관)과 마주한다. 충청도와 도계를 이루는 관문인데 앞에는 관아 터처럼 너른 평지가 있다.

조령관 아래로 흐르는 물이 한강과 낙동강으로 각각 나뉜다고 한다. 걷기 코스는 총 30㎞ 정도지만 보통은 이곳에서 끝내고 다시 내려온다. 원점으로 회귀하는 지점이다. 내려오는 길은 여유롭다. 오를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단풍을 감상하며 내려오면 된다. 쉬엄쉬엄 2시간 왕복 길이다. 아쉬운 계절의 화려함이 동행한다.

경남 창원시 진해내수면환경생태공원.

잔잔한 수채화 같은 진해의 단풍

환상적인 벚꽃으로 유명한 진해(경남 창원시 진해구) 여좌천 인근에 위치한 진해내수면환경생태공원. 민물고기에 관한 연구를 하는 남부내수면연구소에 있는 공원이다. 자연 못이 아니고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내수면 양식을 연구하기 위해 만들었다.

단풍이 들면 내수면환경생태공원은 색색의 팔레트로 변한다. 그 분위기가 굉장히 멋지다. 커다란 왕버들을 비롯해 다양한 수종이 물가에 늘어서 있다. 나무데크길로 이어진 습지관찰길, 자연관찰길, 생태보전습지 등을 합치면 규모가 꽤 크다.

조용하면서도 근사한 풍경이 숨었다. 울긋불긋 물들어가는 단풍이 고요한 못과 어우러져 수채화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단풍수종도 있지만 압권은 역시 왕버들이다. 거대한 돔처럼 푸른 잎을 진 그림 같은 나무가 곳곳에 섰다. 물가로 늘어진 가지는 빛을 받아 수려한 문양을 수면 위에 그대로 찍어낸다. 자그마한 인공섬도 운치를 더한다. 북쪽으로부터 붉은 단풍물이 내려오는 늦가을이면 이곳에서 곧 환상적인 가을을 만날 수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 단풍보다 진한 맛

전북 순창: 순창시장 내에는 순대국밥 골목이 있다. ‘2대째 순대’는 아기보, 선지, 순대 등을 넣고 시원하게 끓여낸다. 뜨끈하고 칼칼한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면 맛이 좋다. 전북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 800-4

충북 괴산: 괴산 읍내엔 올갱잇국(다슬깃국)으로 유명한 ‘주차장식당’이 있다. 40년 넘게 영업 중인 이 노포는 밀가루에 굴려 옷을 입혀 쌉쌀한 맛을 없앤 다슬기를 시원한 얼갈이나 우거지와 함께 끓인다. 충북 괴산군 괴산읍 동부리 646-6

경남 합천: 해인사 앞에는 산채를 즐길 수 있는 식당이 많다. ‘삼일식당’의 압권은 송이버섯국이다. 송이를 넣고 맑게 끓인 국은 그 향기가 굳어버린 입맛을 단번에 되살린다. 상 위에 한바닥 깔리는 산채 반찬은 놀던 젓가락을 춤추게 한다.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230-71

경북 문경: 문경에는 약돌(거정석)을 갈아 넣은 사료를 먹여 키운 약돌한우와 약돌돼지가 유명하다. ‘대흥식육점’은 고기만 파는 곳. 이곳에서 고기를 사서 옆에 위치한 우성왕곰탕 등 식당에서 상차림비를 내고 구워 먹는 구조다. 소 갈빗살과 돼지 목살 등 고기도 좋고 반찬 면면도 우수하다. 경북 문경시 문경읍 하리 206-6

창원시 진해: ‘선학곰탕’은 국물 진한 곰탕과 보들보들한 수육을 파는 집. 문 앞에 서면 분위기에서부터 압도한다. 건물 자체가 근대문화재다. 일제강점기 해군병원장이 살던 한옥 기와집이었다. 외부는 화려하지만 내부는 편안하다. 마루에 앉으면 마치 친척 집에서 밥을 먹는 분위기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근화동 16-1

글·사진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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