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징크스' 깨고 KLPGA투어 평정한 박민지

김종석 채널A 성장동력센터 부장 (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2022. 10. 2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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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의 인사이드 그린] 강한 체력에 차별화된 기량, 안정된 멘털로 공격적 승부
[사진 제공 · KLPGA]
풍성한 가을걷이다. 상반기 고공비행을 거듭하다 하반기 침묵하던 지난해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최강 박민지(24·NH투자증권)의 위세가 시즌 막판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투어에서 더욱 당당하다. 그를 다룬 인터넷 기사에는 "동료 선후배들을 위해 내년에는 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로 떠나달라"는 짓궂은 댓글까지 붙었을 정도다.

2023시즌에도 국내에서 뛸 계획인 박민지는 지난해 KLPGA투어에서 처음으로 시즌 상금 15억 원 고지를 돌파해 역대 최다 신기록인 15억2137만 원을 찍었다. 한 해에 6차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뒷심 부족이 아쉬웠다. 지난해 7월 11일 대보 디하우스 오픈에서 시즌 6번째 우승을 한 뒤 넉 달 넘게 무관에 머물렀다. 2017년 KLPGA투어 데뷔 후 2021년까지 박민지가 올린 통산 10승 가운데 9월 이후 정상에 오른 것은 2018년 ADT캡스 챔피언십이 유일했다. 9승이 모두 봄여름에 집중되면서 '가을 징크스'라는 말까지 나왔다.

올 시즌 5승에 상금 12억여 원으로 랭킹 1위

주니어 시절 국가대표로 활약한 박민지, 최혜진, 박현경(왼쪽부터). [사진 제공 · 대한골프협회 ]
올해는 다르다. 9월 KB금융 스타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10월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에서 다시 정상에 올랐다. 10월 21일 현재 KLPGA투어에서 시즌 5승에 상금 12억6458만 원을 받아 상금 랭킹 1위다. 겉만 보면 지난해와 비슷한 성적표이지만 내용면에서는 훨씬 알차다. 롤러코스터가 아닌 시즌 내내 일정한 성과를 올린 데다 큰 무대에 강한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다. 박민지는 "6년 동안 9, 10월에 우승이 없었다. 지난해에는 잘 풀리다 보니 자만심이 작용했던 것 같기도 하고 9월부터 허리가 아프기도 했다. 올해는 지난해 하반기와 다르게 잘하고 싶은 마음을 가졌다"고 말했다.

박민지는 올해 치른 5대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5위 안에 들었다. KB금융 스타챔피언십과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에서 2승을 거뒀으며 8월 한화클래식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3개 대회에서 벌어들인 상금만 6억 원 가까이 된다. 4월 크리스 F&C 제44회 KLPGA 챔피언십에서 4위에 올랐으며 6월 KGA DB그룹 제36회 한국여자오픈을 3위로 마감했다. 박민지는 "굿샷과 미스샷의 차이가 확실한 까다로운 코스를 좋아한다. 메이저대회 코스가 그렇다. 재미있게 생각하며 플레이할 수 있게 해준다. 메이저대회에 초점을 맞춘 출전 스케줄도 잘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김재열 SBS 골프해설위원은 "메이저대회는 코스 세팅이 어렵고 변별력이 확실하며 선수들 실력 차도 뚜렷하다"면서 "박민지는 그만큼 차별화된 기량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어느새 박민지는 5대 메이저 타이틀을 모두 수집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정조준하고 있다.

"처음에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하다 보니 3개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했더라고요. 새로운 목표를 계속 만들어야 골프를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서 남은 2개 대회 우승도 노려보고 싶어요."

5대 메이저 타이틀 '그랜드슬램' 정조준

드라이버 티샷을 하는 박민지. [사진 제공 · KLPGA]
박민지는 올해 연장전에서만 2승을 거뒀다. 통산 연장전 전적은 5승 1패다. 박세리(연장전 4승 2패)와 함께 갖고 있던 연장 최다승 기록을 넘어섰다. 박민지는 "승수가 쌓일수록 챔피언 조에 있어도 여유가 생겼다. 전에는 내가 해야 할 샷을 생각하느라 다른 게 안 보였다면 지금은 다른 것들이 다 보이고, 위기 상황이 와도 조급하지 않다. 보기를 하면 다음에 버디를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쿨하게 넘어갈 수 있게 됐다. 연장전에서는 설령 지더라도 2등이 아닌가라고 편하게 마음먹으려 한다"고 말했다. 고덕호 SBS 골프해설위원은 "연장전에서는 집중력과 배포가 가장 중요하다. 박민지는 상승세에 자신감까지 더해지다 보니 마지막 날 선두권 경쟁에서 따를 자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박민지의 최대 장점은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티샷부터 퍼팅까지 약점이 없는 플레이를 펼친다는 것이다. 여기에 자신감이 더해지면서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박민지의 어머니 김옥화 씨는 핸드볼 선수로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다. 김옥화 씨는 박민지가 골프를 시작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대학생 선수들과 매일 하루 10㎞를 뛰었고, 골프장 주차장을 달렸다. 스키장으로도 유명한 포천 베어스타운골프장의 가파른 오르막길을 뛰어 오르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을 때는 주 5회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서 비거리 향상을 위해 턱걸이, 푸시업 등에 전념했다. 박민지는 과거 인터뷰에서 "골프를 처음 시작할 때 헬스도 같이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그런 문화가 없었다. 일본에서 운동을 마무리한 엄마 덕분이다. 골프와 헬스를 같이 한 게 도움이 됐다. 줄넘기나 유산소 운동 위주로 많이 했다. 마사지도 꼭 병행해 근육 관리가 잘 됐다. 그래서 큰 부상이 없다"고 말했다.

박민지는 올해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 238.6야드(45위)에 페어웨이 안착률은 73.3%(26위)로 중위권 수준이지만 그린 적중률 8위(76.2%), 평균 퍼팅 14위(30개)에 올랐다. 모든 분야에서 고른 능력을 갖췄다는 의미다. 평균 타수는 70.61타(4위).

자신의 샷에 대한 믿음이 크다 보니 필요할 때는 공격적으로 코스를 공략하는 승부사다. 평균 버디 부문에서 윤이나(3.91개)에 이어 2위(3.85개)다. 윤이나가 3년 자격정지 징계로 출전을 못 하고 있는 걸 감안하면 박민지가 사실상 버디 여왕인 셈이다. 코스에서 가장 많이 소화해야 하는 파4 홀에서 평균 버디율도 20.4%로 1위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는 박민지는 연습장 2, 3층에서는 공을 잘 칠 수 없어 1층에서만 훈련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거리감이 뛰어나 100m 이내 어프로치샷의 정확도가 높다. 100~120야드 거리에서 버디 확률이 32.8%로 1위다.

여유와 집중력으로 상대 선수 압도

선택과 집중으로 무리한 대회 출전을 자제하면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박민지는 올해 컷 탈락 대회가 2개에 불과하며 30위 밖으로 밀려난 대회가 전혀 없다. 지난해에는 4개 대회에서 컷 탈락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에서 그린 주변과 퍼팅 등 쇼트게임 위주로 동계훈련에 집중한 것도 효과를 보고 있다.

김재열 위원은 "여유와 집중력이 상대 선수를 압도한다. 레벨이 다른 선수로 발전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고덕호 위원은 "박민지는 플레이할 때 표정부터가 우선 달라졌다. 미스샷이나 퍼팅 실수 후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마지막 라운드 우승 경쟁 때도 그렇다. 절박함이 긴장감으로 연결되던 과거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박민지가 기술 부분에서는 특별한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골프의 90%를 차지한다는 멘털이 더욱 강해진 것 같다"는 게 고 위원의 설명이다.

프로골퍼 출신인 전병권(32) 전담 캐디는 2019년 하반기부터 호흡을 맞춘 박민지에 대해 "골프라는 운동은 잘될 때보다 안 될 때가 더 많다. 박민지는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한결같이 한다"고 전했다. '핫식스' 이정은의 전성기를 함께했던 전 캐디는 "그리고 무엇보다 승부 근성이 남다르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정신력이 대단하다. 골프를 잘 치는 프로선수가 되기 전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 게 옆에서도 보인다"고 덧붙였다.

핑골프와 용품 계약을 한 박민지는 2017년부터 G400드라이버를 5년 넘게 쓰면서 안정된 티샷을 구사하고 있다는 평가다. 핑골프 관계자는 "박민지는 자신의 성향에 맞는 제품을 오랜 기간 쓰는 타입이다. 그만큼 채 탓을 덜하고 자기 스윙에 대한 믿음도 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박민지가 출전할 KLPGA투어 대회는 3개다. 10월 27일 제주 핀크스GC에서 시작하는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부터 에쓰오일 챔피언십(엘리시안 제주), SK쉴더스·SK텔레콤 챔피언십(춘천 라비에벨 올드코스)까지 3주 연속 나선다.

박민지는 통산 15승을 달성해 장하나가 가진 KLPGA투어 소속 선수 최다 우승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통산 최다 우승 기록은 고(故) 구옥희와 신지애의 20승. 고우순이 17승으로 3위다. 박민지는 대회당 평균 약 6600만 원 상금을 벌었다. 남은 대회 결과에 따라 승수 추가와 함께 자신의 최다 상금 기록도 스스로 깨뜨릴 수 있다. 올해 종착역을 향하고 있는 필드에서 박민지의 화려한 '라스트 댄스'가 기대된다.

김종석 부장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동아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한 골프 전문기자다. 1998년부터 골프를 담당했고 농구, 야구, 테니스, 배드민턴 등 주요 종목을 두루 취재했다.

김종석 채널A 성장동력센터 부장 (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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