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45년 최고작은 '필론과 돼지'..폭력은 우리사회 영원한 주제"

김유태 2022. 10. 2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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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일도 있었지만 글이 있어 삶이 최악은 면하지 않았는가 싶다."

이문열 소설가(74)가 올해 6월 전소된 이문열문학관에 다시 섰다.

'창작의 길'을 주제로 경북 영양군 소재 두들마을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후배 문인들과 만난 이문열 작가와 지난 20일 이야기를 나눴다.

두들마을 아래 6월 전소된 이문열문학관이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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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소된 이문열문학관에 다시 선 이문열
문학 공부하는 후배들 30명
영양 두들마을서 만나 특강
"생각의 덩어리 풀고 싶어
충실히 쓰니 여기까지 왔다
악당·보안관 뒤엉킨 시대
좌우 떠나 낯선 세계 된듯
내 나이 고령..쓸 수 있을까
'둔주곡 80년대' 섣불리 못써"

"힘들 일도 있었지만 글이 있어 삶이 최악은 면하지 않았는가 싶다."

이문열 소설가(74)가 올해 6월 전소된 이문열문학관에 다시 섰다. 생존 작가 중 이외수문학관에 이어 두 번째로 자신의 이름을 딴 문학관이 건립될 예정이던 이문열은, 그러나 올가을 개관을 앞두고 몇 달 전 화재로 불에 타 대들보와 서까래가 완전히 무너지는 아픔을 겪었다.

이문열은 "건물이 완전이 불에 타 실의에 빠져 있기도 했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창작의 길'을 주제로 경북 영양군 소재 두들마을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후배 문인들과 만난 이문열 작가와 지난 20일 이야기를 나눴다. 197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단편 '나자레를 아십니까'로 당선돼 1979년 '사람의 아들'로 문명(文名)을 떨친 그는 반세기 가까운 자신의 글쓰기의 첫 기억과 현재를 하나둘 털어놓았다.

올해 등단 45년을 맞은 이문열 소설가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중편 `필론과 돼지`를 꼽았다. 폭력과 이에 대항하는 또 다른 관한 작품이다. [매경DB]
"지금 돌아보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느낀 생각의 덩어리를 풀어내고 싶어 그때 그때 감성에 충실하며 쓰다 보니 여기까지 왔던 것 같다. 대학 입학 후 들어간 문예 서클에서 내 글을 읽고 감동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감동했더니 친구가 '인마, 그게 운명의 첫 키스란 거다. 너 그러다 작가 된다'고 하더라. 그 말이 씨가 됐다."

스무살 무렵까지도 작가가 될 의지 없던 그가 처음 쓴 수필 주제는 '기차역'이었다. 그러나 21세에 서울대 사범대를 관두고 30세까지 긴 시간을 홀로 보냈다.

"당시 짧은 수필 주제가 기차역이었다. 내가 제일 많이 경험한 공식적인 장소는 기차역이었는데, 이사를 자주 다녀야 했던 불운함 때문이다. 3년에 한 번은 이사를 가게 됐다. 친구놈들 앞에서 20분 읽다 말았는데 애들이 조용하더라. 처음엔 날 무시하는 줄 알았다. 이후 곧 대학 자퇴하고 30세까지 학생도, 선생도 아닌 상태로 지냈다. 나는 문학이란 섬으로 가던 것인지도 모른다."

성경을 비틀어, 예수의 대적자로서의 사람의 아들 아하스 페르츠를 기록한 소설 '사람의 아들', 계룡산 가짜 도인 우발산을 통해 인간 사회의 신뢰와 확신을 통렬하게 풍자한 '황제를 위하여' 등을 통해 이문열은 시대를 가로질렀고, 이로써 그의 소설은 시대를 정의 내렸다.

하지만 그는 "지금 돌아보면 장편 중에선 고를 만한 작품이 없다"며 대신 한때 필화를 겪었던 1980년작 중편소설 '필론과 돼지'를 꼽았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필론과 돼지'는 언급하고 싶다. 광주 얘기를 썼다고 양측에서 혼난 소설인데 은유가 아니라 실제 경험에서 나온 얘기였음을 분명히 하고 싶다. 폭력과 이에 대항하는 폭력이란 주제는 어느 한 시절과 사건을 떠나 여전히 유효한 주제다."

'필론과 돼지'는 특수부대 무리가 열차 승객의 돈을 갈취하고, 참다 못한 열차 내 전역병들이 맞서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제목 '필론과 돼지'는, 폭풍우가 들이친 배에서 좌충우돌하는 인간들 사이, 한 돼지가 유유히 밥먹는 모습을 보고 헬레니즘 철학자 필론이 "현자는 저 돼지처럼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 기록에서 가져왔다. '우리의 이성이 오히려 평정을 잃게 한다(몽테뉴)'는 해석이 뒤따른다.

이문열은 한 시대를 정리하는 소설을 쓰는 일이 이제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잡지 신동아에 연재하다 집필 중단된 소설 '둔주곡 80년대'마저 완결에 자신감을 내비치지 못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불협화음 속에서 1980년대를 정의하는 소설 안에서 풀어보겠다는 원대한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내 느낌만으로는 결정되어지는 게 아닌 것 같고, 회상도 어려울 뿐더러 섣불리 말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좌우를 떠나 요즘 세상은 아주 낯선 세계가 됐다. 악당과 보안관이 구별되지 않는 시대,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올해 6월 전소된 이문열문학관(가칭) 모습. 그가 3세 무렵까지 자란 경북 영양에 지어져지만 불에 타 아직 제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화재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김유태 기자]
이날 이문열이 방문한 경북 영양 두들마을은 재령 이씨 문중의 마을로 '언덕 위의 평지'를 뜻하는 두들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두들마을 아래 6월 전소된 이문열문학관이 위치한다. 아직도 잿더미에서 풍긴 탄내가 가을바람을 타고 흘렀다. 영양은 그가 서울에서 태어나 3세까지 자란 실질적 고향이다.

"고향은 언제나 내가 다시 바라보게 되는 곳이다. 문학관이 개관도 전에 불탔지만 영양군과 다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 상태도, 내 나이도 그렇고 이제 소설을 쓴다는 기대를 스스로에게 걸어볼 수가 없다.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다."

[영양 =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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