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축구 입은 사람들' 아세요? 유니폼도 사랑하면 패션입니다

한겨레 2022. 10. 2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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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축구하고 펍으로 직행하는 이들의 패션 '블록코어' 유행
'팬심'에, 편해서, 유니폼의 화려한 디자인이 재밌어서 입는 이들
축구장 밖으로 나온 유니폼..월드컵 앞두고 세련되게 소화해볼까
축구 유니폼을 모티프로 한 패션 아이템을 제작하는 브랜드 ‘페퍼로니서울’의 다양한 제품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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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유니폼의 용도는 확실해요. 우리 팀과 상대 팀을 구분하는 거죠.” 15일 정혜진 인천디자인고등학교 여자축구부 코치가 말했다. 유니폼은 여러 사람이 하나의 소속을 드러내기 위해 맞춰 입는 제복이다. 입는 사람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고 근무 능률을 높인다. 축구 유니폼은 1863년 잉글랜드 축구협회에서 처음 규정했다. 선수들은 같은 옷을 입은 팀원을 찾아 공을 패스한다. 유니폼은 경기에서 심리적 우위를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밝은색 유니폼은 선수의 덩치를 커 보이게 한다. 잉글랜드 더럼대학교 문화인류학 연구팀에 의하면 빨간색 유니폼은 공격성과 지배욕을 극대화한다. 흰색이나 빨간색 유니폼을 입으면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운동선수가 아닌 사람이 일상에서 축구 유니폼을 입는다면 어떤 이유일까? 같은 팀을 색깔로 구분할 필요도, 몸집이 커 보일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축구 관련 멀티숍 카포 풋볼 스토어 동대문점에 전시된 리폼 유니폼.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축구장 밖 패션계로 들어온 유니폼

월드컵 시즌이면 축구 유니폼을 입은 사람을 길에서 볼 수 있다. 다음달 20일 개막하는 2022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도 비슷한 흐름이 보인다. 2022년 하반기에 공개된 아이돌 뮤직비디오에는 축구 유니폼을 모티프로 한 의상이 많았다. 지난 9월 블랙핑크의 ‘핑크 베놈’ 뮤직비디오에서 제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트레이닝 키트를 입었다. 8월에는 뉴진스의 데뷔 앨범 <어텐션> 뮤직비디오, 화보, 무대에 유니폼이 등장했다. 빈티지한 의류를 겹쳐 입으며 ‘딘드밀리룩’(가수 딘과 래퍼 키드밀리가 유행시킨 낡고 허름한 듯한 옷차림)을 만든 래퍼 키드밀리도 방송에서 바르셀로나 12~13 시즌 어웨이 유니폼을 입었다.

패션 브랜드들도 유니폼 패션을 도입했다. 21~22 시즌 발렌시아가는 아디다스와, 슈프림은 엄브로와, 팔라스는 카파와 협업해 축구를 기반으로 한 디자인을 발표했다. 축구 유니폼이 본격적으로 패션에 스미는 흐름은 틱톡에서도 느낄 수 있다. 틱톡은 20~30대의 글로벌 트렌드를 알아차리기에 효과적인 플랫폼이다. 최근 틱톡에 ‘블록코어’(Blokecore)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블록코어는 주말에 조기축구를 하고 그대로 술을 마시러 펍으로 향하던 무리의 모습에서 착안했다. 축구와 맥주를 좋아하는 1970~90년대 남자의 옷차림을 떠올리면 된다. 블로크(bloke)는 남자를 뜻하는 영국 은어다. 2019년도에는 꾸민 듯 꾸미지 않은 스타일의 ‘놈코어’(Normcore)가 유행했다. 틱톡의 놈코어 조회수는 35.5만이다. 블록코어는 신조어가 만들어진 올해 5월 무렵에 7.5만 조회수를, 10월 중순 현재 52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틱톡에 블록코어를 검색하면 각종 축구 저지에 통이 넓은 청바지나 배기팬츠를 입고 아디다스 가젤 스니커즈를 신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유니폼을 모티프로 한 패션 브랜드 페퍼로니 서울의 작업실.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유니폼에 담긴 정보 재밌잖아요”

축구장 밖에서 유니폼을 입고, 만들고, 모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왜 유니폼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어릴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어요. 경기를 보는 것도, 직접 뛰는 것도요.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는 마음에서 팀 유니폼을 입었어요.” 유니폼을 모티프로 한 패션 브랜드 ‘페퍼로니서울’의 디자이너 김연홍이 말했다. “유니폼을 입으면 지하철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맨시티 팬이냐고 반갑게 말을 걸어오기도 해요.” 구단은 팀의 역사와 비전을 유니폼에 담고, 팬은 유니폼을 통해 팀과 자신을 일체화한다.

음악 강사로 일하는 유혜송 역시 좋아하는 선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유니폼을 입기 시작했다. “리버풀의 스티븐 제라드 선수를 좋아했어요. 14~15 시즌을 마지막으로 그가 팀을 떠날 때 기념하는 마음으로 리버풀 저지를 샀어요.” 14~15 시즌 리버풀 저지는 수집가들 사이에서 최악의 디자인으로 꼽히지만, 그는 리버풀 공식 온라인숍에서 유니폼을 주문해 입었다. 이후 7년 동안 유혜송은 150장이 넘는 유니폼을 사 입었다. 이제는 자기 소개를 ‘축구 입는 사람’이라 할 정도다. 유니폼 데일리룩이 업로드되는 유혜송의 에스엔에스(SNS) 팔로어는 2만5000여명이다.

2022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일상복과 함께 입은 음악 강사이자 패션 인플루언서 유혜송. 유혜송 제공
파리 생제르맹 유니폼을 청바지와 매치한 모습. 유혜송 제공

패션 아이템으로 유니폼이 선택된 것은 비교적 요즘 일이다. “작년 리버풀 유니폼이 예쁘게 나와서 사 입었어요.”(정혜진 코치) 약 100년간 밋밋한 디자인을 고수해온 축구 유니폼은 1970년대가 되어서야 변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유니폼에는 팀 엠블럼이 들어갔고 협찬사의 로고가 들어갔다. 1980년대 중반에는 ‘전사 프린트’ 방식 유니폼이 생겼다. 이는 고온으로 이미지를 압착해 원단에 도안을 전이하는 방식이다. 디자인을 더할 수 있게 된 축구 유니폼은 빠른 속도로 달라졌다. 나라마다 국기 색상을 대표팀 유니폼 패턴으로 적용하고 팀 연고지의 전통 문양을 새겼다. 우리나라는 주로 호랑이를 상징하는 줄무늬나 태극 문양을 활용한다.

“유니폼은 가장 깨끗하고 명확한 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어디서도 튈 수 있죠.” 정인천이 유니폼을 입는 이유를 말했다. 정인천은 나이키코리아에서 일하다가 축구 유니폼 편집숍의 에디터를 거쳐 축구 데이터 앱 ‘사커비’의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넓은 경기장에서 선수를 잘 보이게 하려면 유니폼에 진한 원색을 사용한다. 하얗거나 까만 옷차림이 대부분인 일상에서 튀는 색상의 유니폼은 포인트가 된다. “경기장에서 유니폼은 팬과 선수의 동질감을 이끌어내는데 경기장 밖에서는 반대예요.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는 강한 아이덴티티를 얻을 수 있죠.”

축구 관련 멀티숍 카포 풋볼 스토어 동대문점에 전시된 리폼 축구화. 윤동길 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다양한 정보가 포함된 옷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유니폼에는 구단 정보, 스폰서 로고, 선수 이름과 등 번호가 기본으로 들어가고 표어나 그래픽이 더해지기도 한다. 축구 관련 멀티숍 카포스토어의 유민호 차장은 유니폼을 “경기장과 경기장 밖이 연결되는 지점”이라고 설명한다. 예컨대 우승 팀은 다음 시즌 유니폼에 패치를 달 수 있는데, 이렇게 패치가 달린 유니폼을 경기장 밖 팬들이 사서 간직하는 식이다. 이런 “소장할 만한 디테일”에 매력을 느껴 응원하는 팀 외의 유니폼을 모으기도 한다. 유혜송이 말했다. “발렌시아의 20~21 시즌 홈 유니폼 패턴을 본 적 있나요? 유네스코에 등재된 발렌시아의 고딕 건축물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이강인 선수가 뛰었던 팀이죠.”

“기능성은 ‘넘사벽’”

유니폼은 특별하고 재미있는 옷차림으로서만 제 기능을 다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편해서” 입는 이들도 있다. “축구 유니폼이 가진 기능이 쾌적한 일상을 도와요. 운동하거나 산책할 때 유니폼을 입고 다니다가 나중에는 집에서 잘 때도 입었어요.” 페퍼로니서울의 안현태 대표는 일상에서 유니폼을 입는 이유를 기능성이라 답했다. 일반 티셔츠는 세탁을 할수록 줄어들기도 하고 목이 늘어나기도 하는 데 반해 폴리에스테르 재질의 스포츠 유니폼은 변형 없이 오래 입을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스포츠웨어로 탄생한 유니폼은 활동성이 좋을 수밖에 없다. 구기 종목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가 많은 축구 유니폼에는 마케팅과 과학기술의 경연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제 그 유니폼이 패션의 세계로 성큼 들어왔다.

풋볼웨어 브랜드 니벨크랙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전시된 축구 유니폼과 용품들. 니벨크랙 제공

유니폼 ‘패션’으로 소화하는 법

어떻게 입을까

① 평소와 같은 코디: ‘사커비’ 마케터 정인천은 유니폼의 독특한 패턴과 색감을 고려하지 않는다. 유니폼도 하나의 티셔츠라고 생각한다. 브라질 대표팀의 노란 유니폼을 입었다면 노란색 티셔츠를 떠올리며 코디를 하는 식. 스타일링에 부담을 가질수록 오히려 유니폼에 손이 안 간다.

② 상하의 모두 오버핏으로: 유니폼을 큰 치수로 입으면 운동복이 아닌 패션으로 보인다. 몸에 밀착되는 타이트한 복장의 요즘 축구선수와 구분이 되기 때문이다. 아예 1990년대의 유니폼을 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당시 축구선수는 넉넉한 핏의 옷을 입었다. 오버핏 상의에는 과감하게 큰 치수의 하의가 잘 어울린다.

③ 일상 아이템과 겹쳐 입기: 가수 혁오는 유니폼과 같은 색감의 줄무늬 티셔츠를 유니폼 안에 받쳐 입었다. 축구선수 출신 코치 정혜진은 검정 후디를 축구 저지 안에 겹쳐서 입는다. 모노톤의 후드 티셔츠나 간단한 줄무늬 같은 데일리 아이템을 활용하자. 보는 사람도 입는 사람도 덜 부담스럽다.

④ 스포티함을 덜어낼 것: “축구 저지를 입었다면 나머지는 유니폼과 동떨어진 아이템을 선택하세요.” 데일리룩 인플루언서 유혜송은 유니폼을 다양하게 표현한다. 미니스커트, 긴치마, 카고 바지, 재킷 등 의외의 아이템을 조합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유니폼으로 페미닌, 스트리트, 포멀 룩을 연출할 수 있다. 또한 원색의 유니폼을 일상에서 무난하게 입으려면 색을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신발은 팀 색상에 맞추고 하의는 소매나 칼라에 사용된 사이드 색깔에 맞춰 입으면 조화롭다”는 꿀팁.

⑤ 특이한 유니폼을 샅샅이 찾아본다: 세상에는 대표팀 유니폼만 있는 게 아니다. 작은 도시 팀의 유니폼도 있고 선수들이 훈련할 때 입는 트레이닝 키트도 있다. 무수히 많은 지난 시즌 유니폼도 있다. 사커비 마케터 정인천은 긴팔에 칼라가 있는 유니폼을 좋아한다. “데이비드 베컴이 그런 형태의 유니폼을 입었거든요. 칼라가 없다면 팔이라도 길어야 해요.”

어디서 살까

카페 니벨크랙: 니벨크랙은 축구 클럽과 선수 정신, 서포터 문화 등 축구장 안팎의 소재를 반영한 스트리트 웨어가 메인인 풋볼웨어 브랜드. 올해 6월 니벨크랙이 동교동에 카페를 열었다. 카페 니벨크랙에서는 커피를 마시며 축구 문화에서 영감을 얻은 의류, MD 상품, 아트워크, 매거진을 구경할 수 있다.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18길 31 1층

카포 풋볼 스토어 동대문점: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축구 멀티숍. 나이키, 아디다스, 푸마, 미즈노 등 스포츠 브랜드 제품을 다룬다. 유니폼과 축구화, 축구용품을 모두 판다. 동대문점 5층에는 전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현재는 풋볼 커뮤니티 ‘팀퍼스트’와 의류 업사이클링 브랜드 ‘굿뉴스인더모닝’이 협업한 유니폼이 전시 중이다. 서울 중구 을지로 282 을지로7가 카포빌딩

페퍼로니 서울: 2021년 서울을 기반으로 시작한 브랜드. ‘플레이 포 펀’(PLAY FOR FUN)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축구 문화를 소재로 한 제품을 만든다. 커뮤니티 또는 브랜드와 협업해 선보이는 위트 있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인스타그램 @pepperoni.seoul

클래식 풋볼 셔츠와 새터데이스풋볼 닷컴: 영국의 풋볼 웨어 온라인 숍. 공식 몰에서 찾기 어려운 유니폼이 모두 모여 있다. 1970년도의 유니폼이나 작은 구단의 트레이닝 키트, 5XL 사이즈 등 다양한 모양, 디자인, 재질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한장씩만 가지고 있는 빈티지 제품인 경우가 많아 마음에 들었다면 빠르게 구매 결정을 해야 한다. www.classicfootballshirts.co.uk, www.saturdaysfootball.com

글·사진 조서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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