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한장] "이젠 풍년도 무섭다"

신현종 기자 2022. 10. 2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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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에도 웃지 못하는 쌀농사
지난 18일 대전 유성구 한 들녘에서 농부가 벼 수확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신현종 기자

“위이잉, 위이잉”

지난 18일 대전 유성구 교촌동의 황금 들녘 사이로 콤바인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한 해 동안 재배한 벼를 수확하는 것이다. 그런데 논둑에서 이를 지켜보는 유영철(농업·54)씨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최근 들어 농민들의 시름이 크다. 올 한해 쌀값이 끝을 모르고 떨어진데다 이곳은 출수기에 비가 많이 오는 등 일기가 안 좋아 예년보다 수확량이 5~10% 줄었다. 그렇다고 농민들이 생산량이 많아지기만을 바랄 수도 없는 처지다. 수매가가 크게 하락해 지금은 작년 정도 선에 수매가가 매겨지기만을 희망하고 있다.”며 걱정 섞인 마음을 전했다.

삼순구식(三旬九食)이란 한 달에 아홉 끼니만 밥을 먹는다는 것으로 지독한 가난을 뜻한다. 이런 말이 오랫동안 전해지고 공감되는 건 우리에게 그만큼 배불리 먹지 못한 고된 세월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최근 전쟁이나 세계 시장의 불황 등으로 물가는 치솟고 있지만 유독 쌀값만은 내림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산지 쌀값은 20㎏당 4만 2522원(22년 8월15일 기준)으로 전년 동기(5만5630원) 대비 23.6%나 폭락해 45년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쌀값 폭락은 풍년이 든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쌀 소비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백미 생산량은 388만1601t으로 전년 대비 10.7%(37만5022t)가 늘었다. 반대로 1인당 쌀 소비량은 매년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정부도 쌀 재고 해소 방안이나 쌀 소비 확대 등 장기적인 수급 안정방안에 대해 고민한다. 하지만 넘쳐나는 곡식을 수매하는 데 많은 세금을 쏟아부어도 뚜렷한 해결책은 안된다. 정부는 쌀값 폭락을 막기 위해 수확기 대책으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물량인 45만t(톤)의 구곡과 신곡 매입을 발표했다.

지난 18일 대전 유성구 한 들녘에서 농부가 파란하늘 아래 황금빛으로 물든 벼를 수확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농부라면 당연히 흉년이 두렵지만, 풍년이 들어도 근심은 여전하다. 지난 19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쌀 초과 생산분을 정부가 사들여 농민 지원을 의무화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렇지만 이렇게 시장 격리가 의무화되면 쌀 초과 생산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쌀 과잉 생산구조의 고착화로 인한 재정부담, 쌀 민간시장 기능 저해, 미래 농업에 대한 투자재원 잠식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이젠 풍년도 걱정이다.

지난 18일 대전 유성구 한 들녘에서 농부가 파란하늘 아래 황금빛으로 물든 벼를 수확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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