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영향력 커지는 아시아 사회와 예술의 역할을 조망하다

김예진 2022. 10. 20.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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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 기획전 '구름 산책자'
아시아 작가 24개팀 작품 45점 선보여
패션 디자이너·건축가 다수 참여 눈길
클라우드의 세계 유영하고 떠다니듯
지속 가능한 미래·공존의 미래로 안내
인간을 초월해버린 인공지능에 지배당하는 디스토피아도, 기술을 무기로 더욱 막강해진 인류에게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 유토피아도 아니다. 기술과 인간, 가상과 현실이 대립하지 않고 적절하게 질서를 이룬, 그저 평화롭게 적응하며 사는 미래. 지금 세계가 목표해야 할 정답 같은 미래다. 리움미술관이 아시아에 뿌리를 둔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선보이고 있는 ‘구름 산책자(Cloud Walkers)’ 전시장 인상이 그렇다. 이번 전시에 참여자들이 상상한 지속 가능한 미래, 공존하는 미래다.
전시 전경. 리움미술관 제공
◆건축, 패션 디자이너 다수 참여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에 위치한 리움미술관이 하반기 기획전 ‘구름 산책자(Cloud Walkers)’를 통해 아시아 작가 24팀 작품 45점을 선보이고 있다. 디자이너, 건축가의 참여가 상당 비중을 차지해 눈에 띈다. 활동 분야가 겹쳐 정확히 분류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해도 최소 패션 디자이너가 3팀, 건축가가 5팀이다. 지난해 말 재개관한 리움을 이끌고 있는 이서현 리움운영위원장과 정구호 크리에이티브디렉터의 색깔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번 전시는 “리움이 처음으로 아시아 사회와 예술을 조망한 전시”라고 스스로 강조하는 전시지만 특별히 아시아성이 탐색되지는 않는다. 리움 측은 오히려 ‘아시아’라고 하면 떠올리는 ‘비서구’라는 딱지, 또는 기존의 지정학적 프레임에서 일부러 벗어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지정학적 관점을 덜고 자유로운 관점으로 접근하니 ‘비서구 아시아’들 역시, 전 세계 예술가들이 그렇듯 가장 고민하고 있는 것 역시 기후위기와 닥쳐올 새로운 세계였다는 것이다.

리움 측은 “지난 세기가 규정한 가치 체계와 문명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하는 시점에, 지속 가능한 미래가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고, 특히 세계 질서에 대한 아시아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기에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전시 제목의 ‘구름’은 대번에 지구나 하늘을 연상하게 된다. 하지만, 디지털 세계의 주요 환경이기도 한 ‘클라우드’도 뜻하는 중의적 표현이다. 여기에 디지털 세계에서만큼은 시·공간의 제약 없이 하이퍼링크를 타고 자유롭게 흘러다니는 인류와 예술가들을 일컬어 ‘산책자’라 칭했다.

예술가들이 그랬듯 관람객도 ‘구름 산책자’가 돼 클라우드의 세계, 혹은 지상 너머 하늘 구름의 세계를 비행하고, 유영하고, 떠다니듯 전시장으로 안내된다.
구마 겐고 어소시에이츠 ‘숨(SU:M)’
◆사려깊은 물질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작품은 하늘에서 지상으로 살포시 닿을 듯 내려온 설치 조각, 구마 겐고 어소시에이츠의 ‘숨(SU:M)’(2022)이다.

그는 전통 건축과 자연 친화적 재료를 재해석하고 혁신해 건축계 변화를 이끌고 있는 일본 작가이자 현대 건축 거장이다. 단단한 콘크리트로 대표되는 모더니즘 건축에서 멀리 벗어나 약하고 가벼운 재료들로 환경과 어우러지는 건축 세계를 선보여왔다. 대나무, 종이, 천 등을 주로 썼기에 ‘약한 건축’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이번 전시 입구에 설치된 그의 신작은 초대형 크기지만 구름처럼 가벼워보여, 관람객들이 통상의 사고, 고정된 인식을 깨보도록 유도하는 큼지막한 표지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천으로 된 작품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천은 실은 대기오염물질을 흡수하는 특수 기능을 가진 신소재 패브릭이다. 여기에 일본 전통 종이접기 방식인 ‘오리가미’를 접목해 패브릭의 공기 접촉면을 최대한 넓혔다. 가볍고 변형 가능해 어느 장소에서건 놓일 수 있는 조각, 환경적이고 기능적인 조각, 지속가능한 조각을 선보였다는 설명이다.

한국 에스티피엠제이 건축사사무소의 작품 ‘고요의 틈’(2022)은 의류, 가구, 마감재 등의 표피로 사용되던 직물인 펠트로 건축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펠트는 소리를 흡수하는 기능이 뛰어나고 따뜻한 결과 질감을 가진 재료인데, 이런 얇은 펠트를 한 장씩 차곡차곡 쌓아 마치 벽돌처럼 블록을 만들었고, 블록 196개를 쌓아 올려 작은 건물 같은 방을 세웠다. 접착제가 필요 없고 해체와 재사용이 쉬운 펠트 블록을 통해, 지속 가능한 건축 재료를 예술적 상상과 함께 풀어냈다.
도안타인하 ‘물 위의 대나무 집’
베트남에서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 작가 도안타인하는 베트남 남부 메콩강 삼각주 지역 주민을 위해 수상 가옥을 만들었다. ‘물 위의 대나무집’(2022)은 대나무에 재활용 페트병을 붙여 만든 집이다. 해수면이 1m 상승하면 수백만 저소득층이 사는 이곳 지역 35∼50%가 침수된다는 보고서에서 영감을 받아 주민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로 매뉴얼을 보고 직접 만들 수 있는 집을 고안한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의 자기 전통문화에서 차용한 상상

작품들 중에는 다국적 작가들이 모인 만큼, 다양한 아시아 전통 문화가 베어있다.

구마 겐고 작품에 오리가미가 녹아 있듯, 아지아오는 일본 전통 정원 양식을, 말레이시아 패션 디자이너 모토구오는 중국 명·청시대부터 이어져온 도교식 장례 풍습을 자신의 작업에 접목했다. 한국 작가 현남은 산수화나 분재에서 풍경을 축소하는 기예인 ‘축경’을 반영했다.

기획 의도와 주제가 가진 맥락 속에서도 독자적인 작품들만큼은 각각에 몰입할 수 있도록 전시되는 통상의 방식과 달리, 이번 전시는 여러 작품이 서로 포개져 있다. 전시 방식이 과감해보인다.
로런스 렉 ‘네펜테 존’
가령 에스티피엠제이 건축사사무소 ‘고요의 틈’ 안으로 들어가면 작가 김초엽의 SF 단편소설 세 편이 놓여있다. 도안타인하의 ‘물 위의 대나무집’ 안으로 들어가야 중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루 양의 영상 작업을 볼 수 있다. A.A.무라카미 ‘영원의 집 문턱에서’ 작품에서 나오는 안개는 마주하고 있는 아지아오의 조각작품에 닿을 때쯤 사라져 마치 하나의 연결된 작품처럼 보인다.

전시를 담당한 곽준영 수석큐레이터는 이처럼 작품들이 서로 뒤섞이고 교차하는 모습을 “상상을 증식하기 위한 풍경”이라고 말했다. 내년 1월8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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