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6만원 냈더니, 기사님 손엔 3만원..화물차 주선 '수수료 갑질'

유선희 2022. 10. 2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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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을 통해 소비자-화물기사 매칭하는 주선사 갑질
1톤 트럭, 소비자엔 10만원 받고 기사에겐 5만원
미리 돈 떼고 속이는 '선칼질'에 수수료 20~50%↑
중대형 화물차는 물론 1톤 규모의 소형 화물차량까지 앱을 통해 일감을 구하면서 기사와 소비자들을 연결하는 주선업체들이 떼는 과도한 수수료가 문제가 되고 있다. 부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최근 집에서 쓰던 소파를 부모님 댁으로 옮기려고 1톤 화물차를 불렀던 최아무개(35)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업체에 전화한 최씨는 서울 영등포구에서 은평구로 이송하는데 6만원의 견적을 받았다. 화물차에 물건을 싣고 부모님 댁에 도착한 최씨가 기사한테 “옮기는 것을 좀 도와달라”고 요청하자, 기사는 “단돈 4만원에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3층까지 옮겨 달라고 하냐”며 불평을 했다. 최씨는 “기사님과 대화 끝에 나는 6만원을 지불했지만, 업체에서 2만원을 먼저 떼고, 기사에겐 4만원짜리 일감이라고 소개한 걸 알았다”며 “기사는 4만원에서 또다시 수수료 20%(8천원)를 떼어 업체에 줘야 한다니, 결국 난 6만원을 냈지만, 기사가 받는 돈은 3만2천원에 불과한 셈이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중대형 화물차는 물론 1톤 규모의 소형 화물·용달 차량까지 ‘화물운송망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일감을 구하게 되면서, 화물차 기사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주선사(중개업체)들의 과도한 수수료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화물차 기사들은 “소비자 견적에서 수수료를 미리 떼고 일감을 앱에 올리는 ‘선 칼질’이 만연하면서 실질 수수료가 50%에 육박하는 데다 올라온 배달 물건과 실제 물건이 달라 울며겨자먹기로 ‘과적’까지 일삼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주선사들의 ‘갑질’에 분통을 터뜨린다.

20일 화물차 기사들과 화물자동차운송사업회 등의 말을 종합하면, 대부분의 화물기사는 월 2만5천원~3만원의 이용료를 납부하면서 ‘전국24시콜’ ‘원콜’ ‘전국화물콜’ 등 화물차 전용 앱에 가입해 일감을 구한다. 소비자로부터 일감을 받은 주선사가 견적·화물량·배달지역 등을 포함한 내역을 게시하면, 기사들이 ‘콜’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운임 14만에서 주선사가 수수료 9만원을 뗀 사례.

문제는 주선사가 떼는 수수료가 너무 과도하다는 데 있다. 8년째 1톤 화물기사로 일하고 있는 김흥규(61)씨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물건을 싣고 갈 때, 대부분은 22~23만원 정도로 앱에서 콜을 받는데, 실제로 소비자는 40만원이 넘는 돈을 냈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장거리 운송의 경우, 화물기사는 ‘인수증’을 받고 10~15일 후에 주선업체로부터 돈을 입금받는 형식이라 실제 소비자가 얼마를 냈는지 잘 모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가뜩이나 기름값이 폭등해 요즘에는 장거리를 포기하고 단거리 운송에 집중하고 있지만, 한 달 벌이가 13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이런 관행을 ‘선 칼질’이라고 부르는데, 암묵적인 주선 수수료 20% 외에 주선사가 선 칼질을 통해 떼어가는 비용까지 고려하면, 실질 수수료는 최고 50%를 넘는다는 것이 화물기사들의 주장이다.

주선사가 기사들과 일감의 매칭률을 높이기 위해 운송 물품의 규모를 실제보다 적게 게시하는 점도 문제다. 전국개인소형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관계자는 “1톤이라고 해서 갔는데, 실제 짐은 2톤 규모라 해도 단돈 몇만 원이 아쉬운 기사들 입장에서 운송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사례는 거의 없다”며 “본의 아니게 과적을 일삼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운송비 10만원에서 주선사가 수수료 4만원을 뗀 사례

이런 주선사 ‘횡포’에도 항의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과 화물기사들의 설명이다. 5년째 화물기사로 일하고 있다는 소아무개(59)씨는 “항의를 했다가는 바로 주선업체들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화물운송망 앱 접속을 금지당하기 때문에 감히 큰 소리를 낼 수 없다”고 호소했다.

국토교통부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지만 손을 놓고 있는 형국이다. 국토교통부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국토교통부는 “주선 수수료에 대해 화물운송 업계는 최고 50%를 초과한다고 주장하지만, 주선업계는 평균 수수료가 7%에 불과한데 여기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시장을 왜곡한다고 반박하는 등 이해 당사자 간 의견이 엇갈려 일률적인 상한제 도입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물차 운송 주선 사업자의 수수료를 대통령령으로 정해 제한하도록 하는 화물차운수사업법 개정안 등이 발의됐지만,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준호 의원은 “유가 상승으로 고통받는 45만 화물운송기사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부동산 중개 수수료’처럼 상한선을 정해 주선업체의 수수료 횡포를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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