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이 기적을 만든다'..iH 장애인 선수들의 도전[영상]

CBS노컷뉴스 주영민 기자,CBS노컷뉴스 박철웅 PD 2022. 10. 18. 05: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내 첫 골볼 리그..'역대급 경기' iH 선수단의 맹활약
10여년간 '안마사'로 생계 유지하며 '선수' 꿈 키우다 재기 성공
"골볼 선수 되고 싶어서"..다양한 직업 전전하다 기회 잡기도
시력 상실과 함께 잃은 축구선수의 꿈..골볼선수로 재기
'관심이라는 낮은 문턱'을 넘으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스포츠


"어느 대회보다 향상된 경기력을 보였고, 선수들의 열정이 쌀쌀한 날씨를 잊게 만들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정진완 회장이 지난 10일 끝난 국내 첫 골볼 리그전을 마치면서 한 말이다. 지난달 17일부터 이달 10일까지 3주간 '한국골볼의 성지'격인 서울 강동구 상일동 고덕사회체육센터에서 '2022 골볼리그전'이 열렸다. 골볼리그가 국내에서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골볼은 '시각장애인 고유 스포츠' 또는 '감각장애 스포츠의 꽃'으로 불리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포츠다. 한 팀은 3명의 선수로 구성되는데 장애 정도에 상관없이 모두 눈을 아이패치와 불투명 고글, 또는 안대로 완전히 가려 시각을 완전히 차단한 상황에서 8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1.25㎏의 골볼로 공수를 주고 받는 패럴림픽 정식종목이기도 하다. 손을 이용해 공을 상대방의 골대에 넣는다는 기본 규칙은 핸드볼 경기와 유사하다.

국내 첫 골볼 리그…'역대급 경기' iH 선수단의 맹활약


이번 리그전에서 단연 눈에 띈 건 창단 직후 리그전에 참가한 인천도시공사(iH) 골볼선수단의 활약이었다. 감독과 선수 3명 등 최소 인원으로 참가한 리그전에서 iH 선수단은 3위를 기록했다. 최종 성적은 4승 1무 4패. 대체 선수가 없어 부상 위험과 체력 부담이라는 이중고를 극복하고 낸 성과다.

특히 준결승전에서 붙은 전남과의 경기는 국내 골볼경기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명경기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기 결과는 10대9로 iH가 패배했지만 국내 경기 중 가장 박진감 넘치는 경기로 꼽을 정도의 경기가 나왔다.

양 팀은 전·후반 각 12분에, 연장 전·후반 각 3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지만 8대 8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결국 축구의 승부차기에 해당하는 엑스트라 스로(Extra Throw)까지 간 끝에 승부를 냈다. 국내 정식 경기에서 엑스트라 스로까지 간 경우는 12년 만에 처음이었다. 앞서 iH는 이번 리그에서 전남과 세 번 맞붙어 1승1무1패를 기록할 만큼 접전을 벌였다. 전남은 지난해 전국 시각장애인 골볼 통합대회에서 우승한 강팀이다.

iH(인천도시공사) 골볼선수들과 감독이 훈련 중 의견을 나누는 모습. 사진 왼쪽부터 김남오 선수, 조용민 선수, 김신 감독, 방청식 선수.

10여년간 '안마사'로 생계 유지하며 '선수' 꿈 키우다 재기 성공


최근 리그를 마친 iH 골볼선수단은 올해 6월 30일 iH는 김신 감독을 비롯한 김남오(32)·방청식(36)·조용민(27) 선수 등 4명과 정식 계약을 맺었다. 아직 정식 창단이 아닌 감독과 선수가 iH와 개별 채용 계약을 맺은 형태다. iH는 빠르면 내년, 늦어도 내후년까지 '골볼실업팀'을 창단할 계획이다.

iH 소속 선수로 정식 계약한 세 선수 모두 안마사 등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면서 골볼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고 꾸준히 연습하다가 계약에 성공했다.

주장 김남오씨는 미숙아망막증을 안고 태어난 선천성 장애인이다. 일곱 달 만에 세상에 나온 김씨는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광주 세광학교에서 골볼을 시작해 2009년 유소년 대표를 시작으로 국가대표도 지냈다. 그는 골볼을 처음 접한 이후 운동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주거지인 광주에 선수단이 없어 10년가량 인천과 광주를 오가며 골볼 경기에 참여했다. 사비를 들여 해외 경기와 타 지역 경기에 참석하는 등 골볼에 남다른 애정을 보인 그는 그 '꾸준함'을 바탕으로 국내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그러나 생계 문제가 그의 운동 행보를 가로막았다. 생계 때문에 국가대표 제의도 거절하며 '안마'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이번 계약을 통해 기회를 얻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운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된 김씨는 "단기적으로는 국가대표 합숙 훈련 참가, 장기적으로는 올림픽 금메달 획득을 목표로 삼고 운동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iH 인천도시공사 김남오 선수가 골볼경기 전 고글을 쓰는 모습.

"골볼 선수 되고 싶어서"…다양한 직업 전전하다 기회 잡기도


김씨와 마찬가지로 미숙아망막증을 안고 세상에 나온 방청식씨는 다행히 시력이 조금 남아 있었다. 조금 남은 시력을 바탕으로 전시 가이드, 사회복지사, 공기업 사무직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지만 그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골볼이었다. 운동만으로 생계가 불가능했던 그는 2010년 광저우 장애인 아시안게임 골볼 결승전에 출전한 경험이 있는 정상급 선수였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골볼 훈련을 하면서 운동의 끈을 놓지 않았다. 10년 정도 직장 생활을 했던 방씨에게 골볼팀 입단은 어려운 결정이었다. 주로 공공기관에서 근무했던 그에게 '겸직'은 금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결단을 내렸다.

방씨는 "많은 시각 장애인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과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다를 거라고 여긴다"며 "나 역시 운동을 좋아했지만 여건이 안됐기 때문에 다른 많은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iH와 정식 계약한 방씨는 앞으로 골볼실업팀이 더욱 많이 창단돼 많은 시각장애인이 운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골볼을 대중화'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실제 국내에서 골볼실업팀이 처음 창단한 건 2019년 1월 충청남도였다. 이후 전라남도, iH가 잇따라 선수단을 꾸렸다. 아직 프로 초기 단계다.

방씨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말처럼 위기 때 버티면서 열심히 성장하고 또다시 위기를 마주하면 극복해내는 게 중요하다"며 "모두들 좌절하더라도 슬기롭게 버티면서 기회를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10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하지 않은 방씨는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해 매일 웨이트 트레이닝과 유산소 운동을 병행하며 기초체력을 늘리고 있다.

iH 인천도시공사 방청식 골볼선수가 지난달 17일부터 이달 7일까지 서울 강동구 상일동 고덕사회체육센터에서 열린 '2022 골볼리그전' 경기 중 수비하는 모습.

시력 상실과 함께 잃은 축구선수의 꿈…골볼선수로 재기


팀내 공격을 맡고 있는 조용민씨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중학교 때 시력을 잃었다. 원래 한 쪽 눈이 안 좋았는데 나머지 눈도 점차 보이지 않게 됐다. 유전병을 뒤늦게 확인한 경우다. 그가 시력이 나빠지기 전까지 집중했던 건 축구였다. 장래희망이었던 축구선수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면서 무력감을 느낀 조씨는 골볼을 통해 이를 극복했다.

조씨는 "시력을 잃은 뒤 학교도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다"며 "가족들이 내 앞에서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뒤로는 몰래 눈물을 흘리는 걸 들었고 더욱 마음이 아팠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조씨는 골볼을 시작하면서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와 청소년 국제대회를 통해 성취감을 맛봤고 자존감도 회복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운동과 관련된 진학이 쉽지 않아 부천에서 안마사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에게 iH의 골볼선수단 창단 소식은 '기적'과 같았다.

그는 골볼의 매력을 "세 명이 호흡을 맞추면서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리를 듣고 하는 운동이기에 적막감이 흐르지만 그 고요함 사이로 서로 나누는 끈끈한 유대감이 이 운동을 놓지 않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iH 인천도시공사 조용민 골볼선수가 골볼 공격 훈련을 하는 모습.

'관심이라는 낮은 문턱'을 넘어서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스포츠


iH 골볼선수단 김신 감독은 골볼을 '태평양 같은 스포츠'라고 비유했다. 태평양은 평소 '넓고 평화로운 잔잔한 바다'를 의미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늘 태풍과 파도가 끊이지 않는다. 골볼도 겉으로 보면 '조용함'을 유지해야 하지만 공격과 수비 장면을 보면 뛰고 넘어지는 일이 빈번한 매우 격렬한 운동이다.

김 감독은 "아직 선수단을 정식 창단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선수들이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국제대회에서 활약하는 날을 꿈꾸고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성적 향상이 목표지만 장기적으로는 골볼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데 어울리는 날을 꿈꾼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 종목은 기본적으로 소통을 제일 중요한 덕목으로 여긴다"며 "골볼도 선수와 관객이 고요함 속에서도 서로 소통하고 그 과정에서 좋은 결과를 내면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종목인 만큼 '관심'이라는 작은 문턱을 넘는다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있다"고 강조했다.

iH 인천도시공사 골볼선수들이 지난달 17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서울 강동구 상일동 고덕사회체육센터에서 열린 '2022 골볼리그전' 경기 중 작전회의를 하는 모습.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 이메일 :jebo@cbs.co.kr
  • 카카오톡 :@노컷뉴스
  • 사이트 :https://url.kr/b71afn

CBS노컷뉴스 주영민 기자 ymchu@cbs.co.kr

▶ 기자와 카톡 채팅하기▶ 노컷뉴스 영상 구독하기

Copyright ©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