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보는 국제갤러리"..이번엔 '기하학적 추상' 대가 이승조 [아트마켓 사용설명서]

"기차 여행 중이었다. 눈을 감고 잠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얼핏 무언가 망막 속을 스쳐가는 게 있었다. 나는 퍼뜩 눈을 떴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마치 첫인상이 강렬한 사람에 대한 못 잊음과도 같은, 그 미묘한 감동에 휩싸여 집에 돌아온 즉시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마음에 남은 이미지를 조작한 결과 오늘의 파이프적인 그림을 완성했다."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전시장(K1‧K2‧K3)에서는 이승조의 개인전 'LEE SEUNG JIO'가 진행 중이다. 국제갤러리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이번 이승조 개인전은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을 구축하는 데 평생을 바친 화백의 주요 작품 30여 점을 소개한다. 지난달 1일 시작된 이번 전시는 이달 30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194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난 이승조는 해방 직후 가족과 함께 월남해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반을 거치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고, 1960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1962년에는 권영우, 서승원 등과 함께 기존의 미술 제도와 기득권에 반기를 든 전위그룹 '오리진'을 결성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승조는 근원적인 것으로의 환원을 모색하며 자신의 조형 언어를 만들어 가던 중 1967년 최초의 '핵' 연작을 발표했다. 파이프 형상이 처음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4개월 후 핵 연작의 열 번째 작품을 통해서였다.

엄격한 질서 안에서 단순한 형태와 색조 변이로써 시각적 환상을 만들어내는 파이프 형상은 곧 이승조의 주요한 언어가 됐다. 파이프 형상이 등장한 1968년은 작가에게 기념비적인 해였다. 제1회 '동아국제미술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는 문화공보부장관상을 받으며 서양화 부문의 최고상이 추상화 작품에 수여되는 국전 역대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이후 1971년까지 연달아 4회의 국전에서 수상하며 "상을 타기도 어렵지만 안 타는 것이 더 어렵다"는 어록을 남겼다.
이번에 국제갤러리에 전시된 작품들 역시 모두 핵 연작이다. 1968년 초기 작품부터 1990년에 이르는 비교적 최신 작까지 한자리에 모아놨다. 그가 탐구한 것은 기하학적 요소를 이용해 표현한 추상적 감상으로, 파이프가 쌓여 있는 모습이나 컴퓨터그래픽 장면, 어느 공장 시설의 일부처럼 보이긴 하지만 구체적인 물체를 표현한 것은 아니다.
다만 파이프가 어떤 추상적인 개념과 감상을 표현하는 요소로 등장할 수 있게 된 것은 기계의 탄생으로 바뀐 문명이 현대인의 지각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 아닐까. 기계적 형상인 파이프를 등장시켜 조형의 기본원리인 규칙적인 반복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질서를 통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파이프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 문명의 발달로 역동적인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심연이 아니었을까.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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