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사랑해서 '가지 않을 결심'

2022. 10. 14. 17:2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해외여행 예능 부활과 '지속가능한' 여행법
“하와이를 사랑하게 된 나는 결심했던 것이다. 하와이에 되도록 가지 않겠다고. 제주도를 사랑하면 제주도에 너무 자주 가서는 안 되듯이. 하와이로 은퇴하겠다는 농담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이 여행 책을 쓰며 어떤 장소에 다시 간다면, 하고 여러 번 썼지만 앞으로의 나는 별로 여행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하와이가 아닌 어디라도 여행의 기회를 아직 더 여행해야 할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싶다. 찾아낸 보물들을 충분히 품고 있으므로 비행기를 덜 타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한다.”(〈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정세랑·위즈덤하우스)

지난 6월 입국자격리면제와 국제편 항공편 증설 등의 시행으로 인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이 붐비고 있다. / 김창길 기자


2020년, 고금숙 알맹상점 대표는 앞으로 최소 3년 동안은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는 새해 다짐을 했다. 고 대표는 스스로를 ‘해외여행을 떠나는 중독자’라고 할 만큼 여행을 좋아했다. 여행이 주는 생생한 삶의 순간이 모여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고 대표가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고 결심한 건 2019년 유럽의 제로 웨이스트 도시 ‘카판노리’에 다녀온 후다. 서울에서 이탈리아까지 왕복 비행기의 1인당 탄소배출량은 800kg. 2인 가구인 고 대표의 집에서 1년간 배출한 탄소량과 같았다. “그러니까 목욕하고 밥해 먹고 인터넷에 연결하거나 난방 에어컨 등을 틀며 여자 2명의 삶을 떠받친, 전기·수도·도시가스의 모든 에너지가 항공여행 한방에 사라졌다는 뜻이다.” 결심대로 고 대표는 지금까지 비행기를 타지 않고 있다. 물론 코로나19로 의지와 상관없이 발이 묶이기도 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지 않는 기간을 2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가끔 여행이 주는 정서가 그리울 땐 여행책을 읽었다. 최근에는 다음 세대, 혹은 여행이 절박한 누군가에게 여행할 기회를 양보하겠다는 정세랑 작가의 글에 공감했다. 베트남에 가고 싶으면 베트남 여행책을 보고 베트남 음식점을 갔다. 카우치 서핑으로 한국을 찾은 해외여행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고 대표는 “물론 가서 보는 것만큼 여행하는 기분은 안 난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삶에 거리를 두다보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정말 너무 여행이 가고 싶을 때는 언젠가 오랫동안 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느리지만 깊이 있는 여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꼭 가고 싶다는 마음이 다스려진다면, 다른 여행을 위해 아껴두는 마음도 괜찮은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잠겨 있던 해외여행의 빗장이 풀렸다. 지난 10월 1일부터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입국자가 받아야 하는 코로나19 유전자 증폭(PCR) 검사가 폐지됐다. 그보다 앞선 9월 3일에는 입국 전 출발국에서 음성확인서를 받아 입국 시 제출해야 하는 의무가 사라졌다. 해외여행 시 부과하던 방역수칙이 사라지면서, 방송사들이 앞다퉈 해외여행 예능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9월 28일 종영한 tvN 〈텐트 밖은 유럽〉은 유해진, 진선규, 박지환, 윤균상 4명의 출연자가 8박9일 동안 스위스, 이탈리아의 캠핑장을 다니는 여정을 담았다. 오는 10월 27일 첫 방송하는 SBS 〈찐 친 이상 출발, 딱 한 번 간다면〉은 배우 이규형, 이상이, 이유영, 임지연, 엑소의 수호, 차서원 등이 모여 호주 퀸즐랜드를 여행하는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 코로나19로 종영됐던 KBS 〈배틀트립〉도 2년 6개월 만에 재개된다. tvN 〈꽃보다 할배〉, JTBC 〈뭉쳐야 뜬다〉, tvN 〈짠내투어〉, 올리브 〈원나잇푸드트립〉 등 해외여행 예능 프로그램이 봇물을 이뤘던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방송의 포맷과 출연진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비행기를 타고, 관광지를 구경하고, 낯선 곳에서 헤매기도 하고, 짜릿한 액티비티를 경험하고, 출연진들끼리 추억을 쌓는 여행 이야기는 코로나19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해외여행 예능 프로그램은 실제 해외여행에도 영향을 끼친다. ‘여행 예능 TV 프로그램을 통한 관광지 노출이 방문 관광객 수에 미치는 영향’(이수은·강창희, 2018)에 따르면 인기를 끌었던 tvN ‘꽃보다’ 시리즈에 노출된 해외 관광지를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 수는 방영 이후 평균 52.8% 정도 증가했다. 방송 상영에 따라 신규로 발생한 관광객 수의 증가분으로 분석됐다.

기후위기 시대의 여행

코로나19를 경험하고 기후위기를 겪는 오늘날,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여행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의 다른 이야기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해외여행은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하는 활동이다. 2019년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는 관광의 교통 영역에서만 전지구 배출량의 약 5%에 달하는 탄소가 배출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비행기의 탄소 배출이 가장 심각했다. 2014년 유럽환경청(EEA)에 따르면, 승객 1명이 1km 이동하는 동안 비행기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285g이었다. 버스(68g)의 4배, 열차(14g)의 20배에 달한다. 교통 외 일반적인 호텔, 리조트 등 관광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의 규모도 만만치 않다. 2012년 발표된 논문 ‘관광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에 관한 연구’(김성진)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형 호텔 및 리조트 3개소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매출액 100만원 당 각각 144.0kgCO₂eq, 427.2kgCO₂eq, 338.6kgCO₂eq로, 반월산업단지의 기계(178kgCO₂eq), 비금속(124kgCO₂eq), 석유화학(30kgCO₂eq), 전기전자(82kgCO₂eq)의 매출액 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훌쩍 넘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산업 분야와 마찬가지로 여행에서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는 노력이 시급하다는 의미다.

관광학술지 ‘Journal of Tourism Futures’(2021)에 수록된 ‘여행과 기후위기: 코로나19의 영향과 변화를 촉진하는 이야기의 힘(Travel and the climate crisis: exploring COVID-19 impacts and the power of stories to encourage change, Daniel William Mackenzie Wright)’은 기후위기 시대에 대응하는 새로운 여행의 모습을 설명한다. “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여행하지 않고도 세계 어느 곳에서나 회의에 참여할 수 있다. 항공 여행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드물게 사용되며 매우 비싸다. 일은 이제 점점 더 탈중앙화되고 있으며 어디서나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며칠이 아닌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지속되는 해외여행인 ‘슬로우케이션’을 계획한다.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이 유럽을 방문하고 싶다면 몇 달 이상 머물면서 현지에서 탄소배출이 0인 교통수단을 사용할 것이다.” 비행기보다 기차, 단기보다 장기 여행, 회의는 온라인으로 대체되는 식이다.

논문은 미래 여행의 모습을 그리며, 지금 중점을 둬야 할 새로운 여행의 방식에 주목한다. “지역이나 국내 여행을 좀더 많이 이야기하고, 해외여행은 장기여행에 중점을 둬야 한다. 지역사회는 지역 주민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휴일에 더 높은 수준의 문화적 풍요로움을 제공해야 한다.” 탄소 배출 감축에 방점을 찍은 여행으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고금숙 대표는 “짧은 일정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든가, 국내여행의 경우 기차편이 있는데도 비행기를 타는 일이 창피한 행동이라는 여론이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순애 제주녹색당 공동위원장은 “여행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의미가 여전히 있지만 이 과정에서 막대한 탄소 배출이 일어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방식을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다”라며 “여행의 욕구를 우리 가까이에 있는 문화, 내가 사는 지역, 내 주변의 삶의 모습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를 넘나들려는 욕구는 이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9월 28일 종영한 tvN <텐트 밖은 유럽>. 엔데믹이 가시화되면서 다수의 해외여행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을 준비 중이다. / tvN


마일리지 대신 세금을?

여행의 인식 변화와 함께 정책의 변화도 필요하다. 프랑스는 지난해 2시간 30분 이내 기차로 이동할 수 있는 노선에서의 국내선 운항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스웨덴은 지난 4월 국내선, 단거리 여객기가 많다는 이유로 자국 내 3번째 규모의 공항 ‘스톡홀름 브롬바’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오스트리아도 지난해부터 3시간 미만 거리의 국내선 항공편 이용을 금지했다. 비행기 타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스웨덴의 해시태그 플뤼그스캄(#flygskam)은 널리 퍼져나갔다.

고금숙 대표는 신공항 건설 대신 KTX나 버스 등에 투자하고 탄소 배출이 적은 교통수단을 이용한 사람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고 대표는 “평일의 경우 KTX보다 비행기가 요금이 더 저렴할 때가 있다. 단거리 비행은 극단적으로 비효율적인 에너지 소비다. 그럼에도 적자가 날 게 뻔한 공항을 새로 짓고 KTX보다 비행기를 선택하게 하는 구조는 문제가 있다”며 “신공항을 지을 돈으로 육로 교통에 투자하고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라고 말했다.

박훈 기후변화행동연구소 편집위원회 위원장은 비행기를 자주 타는 사람들에게 누진세를 부과하자는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의 제안을 소개했다. ICCT는 1년 동안 비행기를 2번 이상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물리자고 제안했다. 두 번째 비행기 이용부터 9달러를 과세하고, 횟수가 늘어날수록 과세액이 점점 증가해 20번째 비행에는 177달러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이다. ICCT는 이 세수로 화석연료에서 지속가능한 항공연료로의 전환에 충분한 자금을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전 세계 소득 상위 10%의 소득자가 내는 세금이 세수의 90%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1년 발간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는 향후 수년간 온실가스가 획기적으로 감축되지 않는다면, 2030년을 전후해서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이 1.5도를 넘어 기후위기가 본격적으로 일어나리라고 전망했다. 박훈 위원장은 “이 같은 추세라면 사실 1.5도 상승까지는 몇 년 안 남았다”며 “최근 연구에 따르면 1.5도가 올라가면 산호초는 99%가 소멸된다. 여행 가서 스노클링을 해도 볼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프스의 만년설이 녹아내리고, 해수면이 상승해 해수욕장이 사라지고, 산호초가 파괴되고 빈번한 산불로 멸종 속도가 빨라진다. 다음 세대에게 어떤 여행을 물려줄 수 있을까. 변화하지 않는다면, 여행은 극소수의 특권층만 향유할 수 있거나 더 이상 인간에게 가능한 활동이 아닐 수도 있다.

※참고문헌 〈탄소 중립을 위한 노력, 관광산업의 피할 수 없는 책임이자 과제〉(김송이 상지대학교 관광개발학과 교수, 웹진 문화관광, 2021년 11월)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

인기 무료만화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