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머리카락 20분의1 두께 '동박' 77km까지 안 끊기고 생산

안태호 2022. 10. 1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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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국내 1위 동박 기업 SK넥실리스 정읍공장 가보니
세계 최초 4㎛ 두께 동박 양산
연내 북미 투자지역 확정
연산 25만2천톤 목표
SK넥실리스 직원들이 정읍공장에서 생산된 동박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SKC 제공

지난 11일 에스케이(SK)넥실리스 정읍공장. 지름이 2.7m에 달하는 거대한 드럼이 회전하며 6㎛(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두께의 얇은 동박(구리 막)을 ‘떠내고’ 있다. 얇은 구리 막을 만든다고 하면, 구리를 압축해 얇게 만들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방식을 쓴다. ‘도금’ 기술을 사용한 ‘제박 방식’이다. 동박을 ‘떠내고 있다’고 표현한 이유다. 구리를 녹인 용액을 금속 표면에 달라붙게 한 다음 굳혀 떼어내는 방법이다.

동박은 리튬이온 배터리에 들어가는 얇은 구리막을 말한다. 전기차 필수 소재인 음극재를 지탱하고 전류가 흐르게 한다. 전기차 시장 성장이 가속화하면서 동박을 생산하는 업체들도 주목받고 있다. 에스케이(SK)넥실리스는 세계 최대 동박 생산 기업이다. 에스케이 화학 계열사 에스케이시(SKC) 자회사(지분 100% 보유)다. 국내 최초로 피이티(PET)필름을 개발해 비디오테이프 제조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뒀던 에스케이시가 2020년 전략적으로 인수에 나섰다.

동박 제조 과정. SKC 제공

동박 생산 과정은 물레방아를 떠올리게 한다. 구리를 녹인 용액이 담긴 큰 상자 안에 드럼(물레)을 아래가 잠기도록 넣고 회전시킨다. 이때 전기를 흐르게 하면 용액에 녹아있던 구리가 드럼에 붙어 고체막을 형성한다. 드럼에 붙어있던 동박은 곧바로 떼어져 다른 롤에 감긴다. 일반적인 도금이라면 금속 표면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지만, 드럼 표면은 티타늄이라 도금된 금속이 달라붙지 않는다. 동박은 드럼 속도와 전류의 세기에 따라 두께가 달라진다. 드럼을 천천히 돌리면서 전류를 높이면 동박은 두꺼워지고, 드럼을 빨리 돌리면서 전류를 약하게 하면 얇아진다.

이런 방식으로 머리카락 굵기의 20분의 1인 6마이크로미터 두께로 1.4m 넓이의 동박을 최대 77㎞까지 끊기지 않고 생산해낼 수 있다. 77㎞를 생산하는 데는 3박4일이 걸린다. 전상현 생산본부장은 “얼마나 얇고 길고 넓게 생산하느냐가 경쟁력을 결정한다. 특히 길게 생산할수록 고객사가 롤을 갈아 끼우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인력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에스케이넥실리스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동박 생산 기술을 갖고 있다. 2019년 세계 최초로 4마이크로미터 두께 동박 양산에 성공했다. 머리카락 30분의 1 두께다. 동박이 얇을수록 배터리 용량을 더 늘릴 수 있다.

별도로 마련된 체험 공간에서 4마이크로미터 동박을 직접 만져봤다. 금속으로 된 아주 얇은 비닐을 만지는 느낌이었다. 끄트머리를 잡고 살짝 힘을 주자 찢어졌다. 동박 대량 생산이 쉽지 않은 이유다. 공장 안내를 맡은 김동우 동박연구소장은 “동박을 감는 롤의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동박이 우그러지거나 찢어진다. 롤 공정에 특화된 업체가 아니면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SK넥실리스 정읍공장 전경. SKC 제공

동박 수요는 전기차 시장 성장에 따라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에스엔이(SNE)리서치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용 동박 수요는 2022년 37만3천톤에서 2025년 74만8천톤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에스케이넥실리스는 세계 수요의 22%를 공급하고 있다. 1위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폴란드에서 새 공장 착공에 나섰고, 연내 북미 투자처를 확정할 계획이다. 북미 공장까지 설립되면 이 회사의 동박 생산량은 현재 5만2천톤에서 25만2천톤으로 늘어난다.

이재홍 에스케이넥실리스 사장은 공장 견학을 마친 뒤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생산 물량의 95%가 세계 5위 내 배터리 제조업체에 공급되고, 신규 고객들도 공장을 많이 방문하고 있다”며 “인플레이션 등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투자금액이 일부 증가할 가능성이 있지만 예정된 투자를 변경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롯데그룹이 2조7천억원을 들여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해, 에스케이시의 강력한 동박 경쟁자로 떠올랐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일진그룹 계열 동박 생산업체이다. 박원철 에스케이시 사장은 “동박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롯데그룹이 동박 사업에 진출하면 국내 배터리 제조 3사에 안정적으로 동박을 공급할 수 있어, 국내 배터리 업계 전체의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새로운 플레이어가 들어와 적극적으로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해 환영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정읍/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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