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정관자득(靜觀自得)

2022. 10. 1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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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하루에 시작한 공직의 길을 한 세대의 세월이 흐른 8월 마지막 날에 마쳤다. 사무실에 작별을 고하고 들고나온 짐을 집에 떨궈 놓고서 양복을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가까운 후배가 퇴임 기념으로 선물한 평범한 개량복이지만 마치 온몸이 숨 쉬듯이 푸근한 착용감이었다. 이내 선글라스에 중절모마저 걸치고 잔서(殘暑)의 기운이 아직 그득한 시청 앞 광장까지 나와 세종로를 향해 걸었다.

관료의 내음을 떨쳐버리기 위한 의식적 행색이기도 하였기에 누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나 아닌지 어색한 불안감이 뒷덜미를 계속 당겼다. 그러나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바쁜 걸음들뿐이었고, 이제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는 자기암시로 주위의 모습이 점차 선연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십 년 동안 지나다녀 너무나도 익숙한 거리라고 여겼건만 찬찬히 둘러보니 전혀 새로운 느낌과 형태로 다가왔다. 그때 그 골목길은 오늘의 큰길로 바뀌었고, 인파의 율동 너머 빌딩숲 사이로 인왕과 북악의 스카이라인은 달라져 있었다. 누가, 무엇이 바뀌었다는 것인지, 세월의 이치가 이런 것인지 갑자기 생각이 착잡해졌다.

그 이후 소위 '전관예우' 관행을 배격하겠다는 명분을 겉으로 내세우기도 하였지만, 실제로는 스스로의 뜻에 따라 아무 거리낌 없는 일상을 보내며 또 다른 삶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어졌다. 조직 논리에 움직이는 기속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기에 몇몇 영입 제의를 모두 거절하고 개인 사무소를 열었던 것이 수개월이나 지나 해를 넘긴 정월에 들어서였다.

신년에 새로운 삶의 전기를 맞는 표지를 남기고자 악필이나마 붓을 들었다. 전한시대 왕포(王褒)의 글로 내려온 "용흥이치운(龍興而致雲)"이라는 구절이다. 배움의 부족함에도 한학의 티를 내겠다기보다는, 일본 근세의 화가 요코야마 다이칸(橫山大觀)이 남긴 대작의 이미지대로 용이 몸을 일으켜 구름을 일구는 형상을 마음만이라도 좇아보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그 이래 매년 입춘 때가 되면 한시나 명구를 제재로 삼은 글을 한 폭씩 써오다가, 중국 정주학의 비조인 정호(程顥)의 널리 알려진 시 '추일우성(秋日偶成)'에서 한 구절을 떼어내기에 이르렀다. "만물정관개자득(萬物靜觀皆自得)"이란 글이다. '만물을 조용히 살펴보면 그 이치가 스스로 깨우쳐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당시 몸 상태가 매우 안 좋았기에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임서하였던 것이다. 병원 신세까지 지며 홀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동안, 매일 지나치는 사소하고 작은 사물이나 사상(事象)도 잘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작용하는 자연의 의지를 발견하게 된다는 소박한 깨우침이 서서히 다가왔다.

그리고 그 '정관'의 깊은 뜻은 하필 같은 무렵, 5대7대5의 운율이 살아 있는 17자의 짧은 시 하이쿠(俳句)를 완성시킨 마쓰오 바쇼(松尾芭蕉)의 작품 중 한 편에서 다시 찾아볼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냉이꽃 피어 있네/울타리 아래."

우연스러운 이룸, '우성(偶成)'의 시사가 마음과 몸을 옥죄면서, 공직에서 물러난 날 오후 서울의 도심 풍경과 조우해 순간적으로 겪었던 기억으로 되살아났다.

[김규헌 큐렉스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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